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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우리문학현장기행

치술령의 망부석 설화

by 竹溪(죽계) 2005.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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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술령(致述嶺)의 망부석설화(望夫石說話)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망부석설화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것으로는 죽은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굳어서 돌이 되었다는 것이라 하겠다.


 망부석설화에 등장하는 주요 화소로는 남편의 죽음, 아내, 돌, 새, 신모(神母) 등이다. 남편의 죽음은 사건의 시작이요, 아내가 죽어서 돌로 굳어지는 것은 사건의 발전과정이며 해결이다. 그리고 새가 되었고, 신이 되었다는 것으로 그 끝을 맺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망부석 설화가 미담에 대한 단순한 존경이나 그리움의 대상화, 혹은 사랑의 승화 정도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게 된다. 망부석설화가 궁극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의 탄생이다.


 신이 일정한 의식을 통하여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을 `신화'라고 한다면, 인간이 일정한 의식을 통하여 신이 되는 것이 바로 `망부석설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는 남성이 주인공이 되고, 망부석설화는 여성이 주인공이 된다. 하늘과 땅의 결합을 통한 신의 탄생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신화와 망부석설화이다. 이러한 망부석설화는 아주 흥미 있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신화의 주인공은 왕이 되어 정치적인 우두머리가 된다면, 망부석설화의 주인공은 산신이 되어 정신적 우두머리로서 민간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이야기로 그 의미를 자리 매김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는 <삼국유사>등에 전해지는 박제상 부인의 `치술신모이야기'를 들 수 있다.


 “박제상은 신라시조 혁거세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勿品)이다. 제상이 벼슬길에 나가 삽량주간이 되었는데, 고구려와 일본에 인질로 보냈던 보해(寶海)와 미해(美海)를 보고 싶어하는 눌지왕이 왕자들을 데려오도록 명하였다. 이에 제상은 고구려에 사신으로 들어가 왕을 설득하여 보해를 모시고 돌아왔다. 그러자 눌지왕은 대단히 기뻐하면서도 왜국에 가 있는 미해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이에 제상은 집에도 들르지 않고 율포(栗浦)에 나가 왜국으로 갔다. 그의 아내가 포구로 달려갔으나 이미 배는 떠나간 뒤였다. 왜왕에게 신임을 얻은 박제상은 그들을 안심시킨 다음 안개 낀 날을 택해 미해를 신라로 탈출시키고 자신은 남아 스스로 붙잡히게 되었다. 온갖 회유와 고문으로 왜왕은 자신의 신하가 될 것을 권했으나, 신라의 개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가 될 수 없다는 박제상의 말에 불태워 죽이고 만다. 왜인들이 박제상을 고문할 때 갈대 위를 걷게 했는데, 갈대에 있는 거뭇거뭇한 빛은 그의 피가 묻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박제상의 부인은 세 딸을 데리고 왜국이 보이는 치술령에 올라서 울다가 굳어져 돌이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망부석이다. 세 딸 중 두 딸도 함께 죽어서 혼백이 모두 새가 되었는데, 이들의 혼백이 날아오른 곳은 비조(飛鳥)라는 지명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그리고 산으로 날아간 혼백은 국수봉 아래에 있는 바위에 숨었다고 하여 이곳을 은을암(隱乙岩)이라 한다. 또한 사람들이 부인을 달래 내려오게 하려고 하자 다리를 버티면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하여 그곳을 벌지지라 한다.”


 치술령 부근은 박제상과 망부석설화 유적지로 가득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제상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치산서원을 지었고, 부인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서는 치술신당을 지었다. 치술령에 있는 박제상유적과 망부석을 답사해보는 것은 민간신앙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된 망부석설화의 의미를 직접 체험해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