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먹은 벙어리의 유래
고려대학교에서 펴낸 한국어 대사전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란 표현에 대해, “속에 있는 생각을 겉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또한 표준 국어 대사전에서는, “속에 있는 생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풀이하고 있다.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은 이해가 되는데,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은 수긍하기 어렵다. 이 표현이 쓰이는 상황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보면 놀리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다.
‘꿀 먹은 벙어리’라는 표현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해야 할 상황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 혹은 애정을 드러내기 위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은 일이 있어서 기쁨을 말로 표현해도 좋을 것 같은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든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싫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든가 하는 상황에서 말하지 않는 사람을 아끼는 주변의 사람들이 주로 이 표현을 써서 상대방을 격려하거나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이 표현이 지닌 의미가 사전에서 말하는 것 이상의 어떤 뜻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표현은 꿀+먹음+벙어리가 결합한 방식으로 되어 있다. 꿀은 맛있는 것, 변하지 않는 것, 썩어 없어지지 않는 것 등의 의미를 지니고, 먹는다는 것은 외부에 있던 것을 입으로 삼켜서 몸속에 넣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몸 안에 넣었다는 사실은, 몸속에 넣은 무엇인가가 자기 것으로 되었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러한 행위를 통해 만족, 기쁨 등의 느낌이 들 수 있다. 즉, 꿀을 먹은 사람은 그 달콤함으로 인해 대단한 만족감을 마음속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벙어리는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주 맛있는 꿀을 먹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니 매우 답답한 상황이다. 그렇기는 해도 벙어리가 꿀의 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말을 하는 사람보다 꿀의 진정한 맛이나 성질을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표현이 바로 “꿀 먹은 벙어리‘라고 할 수 있다. 즉, 상당히 깊은 뜻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꿀 먹은 벙어리’라는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꿀에 대해 살펴보자.
꽃에 있는 당분을 먹은 벌이 자신의 소화액을 섞어서 다시 뱉어낸 것이 꿀이다. 당도가 매우 높은 꿀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썩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패균이 침투하더라도 높은 당도에 의한 삼투 작용으로 인해 수분을 모두 빼앗긴 세균은 말라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썩어 없어지지 않는(不朽) 성질로 인해 꿀은 진리(眞理), 경전(經典), 진실(眞實) 등을 나타내는 비유로 활용된다. 특히 불교에서는 불경이나 참선을 통한 깨달음(禪)을 비유하여 나타내는 것으로 쓰기도 하는데, ’꿀 먹은 벙어리‘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11세기 중국의 승려였던 회심(懷深, 1077-1132)의 어록에 이런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불교 공부를 하는 승려(學僧)가 회심에게 질문한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학승이 묻기를, 깨달음을 얻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하자 대답하기를,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그 느낌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것은 마치 꿀 먹은 벙어리와 같다(像啞子吃蜜)고 설명한다. 학승은 다시 묻는다.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말로 설명을 잘한다면 그것도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회심이 대답한다. 그것은 마치 앵무새가 말을 흉내 내서 하는 것(鸚鵡學舌)과 같으니 깨달음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 바로 ’꿀 먹은 벙어리와 말하는 앵무새(啞子吃蜜與鸚鵡學舌)’라는 헐후어(歇後語)이다. 헐후어는 앞과 뒤의 것이 결합하여 완성되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기본인데, 실제로는 핵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앞의 것만 말하고 뒤의 것은 생략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우리말에서는 속담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라는 표현은 그래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는 뒷부분의 내용이 생략되어 있으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라는 속담은 아주 무식하다는 뒤의 내용이 생략되는 따위의 방식이 그것이다.
‘꿀 먹은 벙어리’ 역시 뒤의 ‘말하는 앵무새’가 생략되어 있는 표현이다. 비록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앵무새처럼 엉터리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속담이 바로 이것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해 진실을 알고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서 입을 닫고 있는 상태, 매우 큰 기쁨이나 슬픔을 속에 가지고 있지만 너무 벅차거나 슬퍼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말하지 않는 상태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데 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안타까운 나머지 누군가가 다그치거나 재촉하는 의미에서 ‘꿀 먹은 벙어리 같이(처럼)’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꿀 먹은 벙어리’, ‘벙어리 냉가슴’ 등은 모두 가슴 속에 담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지만 함부로 내뱉아 말로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의 심정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면서 그 속에 참된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깊은 의미가 있으면서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와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기발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의세계 > 재미있는 우리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통나다 어원 (0) | 2025.03.24 |
---|---|
뒤로 호박씨 깐다 유래, 어원 (0) | 2025.03.21 |
쥐 죽은 듯 유래, 어원 (0) | 2025.03.02 |
부질없다 어원 (0) | 2025.02.12 |
짐승 어원 (0) | 2025.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