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죽은 듯이 유래, 어원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거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매우 조용한 상태를 지칭해서 ‘쥐 죽은 듯’, 혹은 ‘쥐 죽은 것처럼’ 등으로 말한다. 이 표현에는 어려운 말이 전혀 없으므로 그냥 쥐가 죽어서 조용한 것이라는 정도로 이해하고 넘기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아주 조용한 상태를 말할 때 하필이면 쥐, 그것도 죽은 쥐를 대상으로 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도대체 과거 우리 민족의 삶에서 쥐가 어떤 의미였길래 그것이 죽은 상태를 대상으로 하여 아주 조용한 상태를 강조하는 말로 만들었을까 하는 점을 이해하면 이런 의문은 풀릴 것으로 생각된다.
낮이 사람의 시간이라면 밤은 쥐의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밤이 되어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어김없이 온 사방에서 나타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쥐다. 먹이를 놓고 싸우는 소리, 가족이나 동료를 부르는 소리, 음식을 훔치러 갔다가 미끄러져서 떨어지는 소리, 사람이 놓은 덫에 걸려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듯한 소리 등 매우 다양하면서도 요란한 소리를 내는 존재가 바로 쥐인 것이다. 요즘은 아파트 같은 주택이 일반화되면서 그런 폐단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만 해도 쥐 우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밤에 쥐 우는 소리는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할 만큼 날카롭고 시끄럽다. 그래서 사람들은 쥐를 매우 싫어하면서 기회만 되면 죽이려고 시도하게 된다. 쥐는 천적뿐 아니라 사람과도 전쟁 하다시피 하면서 살아가야 하므로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포유류의 일종인 쥐는 입의 아래위에 앞니 한 쌍씩을 가지고 있어서 설치류(齧齒類)라고 한다. 설치류는 앞니를 생존의 핵심 수단으로 사용하는 동물인데,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는 지구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만큼 쥐는 생존 능력이 탁월하다. 생존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거의 함께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인간에 의해 보호까지 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동물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진 존재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쥐와 인간의 관계는 다른 어떤 존재보다 밀접하며 그 역사 또한 길다고 할 수 있다. 쥐가 인간의 주변에 사는 핵심적인 이유는 먹이를 얻기 쉬워서이기도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이 쥐를 보호하는 수호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다 큰 쥐는 집주변에 구멍을 파 그 속에서 주로 생활하는데, 새끼를 가졌을 때는 사람이 사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쥐의 천적은 고양이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여우, 족제비, 담비, 뱀, 너구리, 오소리, 삵, 올빼미, 왜가리, 황조롱이, 부엉이, 스라소니, 붉은배새매, 말똥가리, 개, 산달, 솔개, 해오라기, 눈표범 등 상당히 많다. 다른 천적은 바깥에서 활동할 때를 노리기 때문에 조심하면 피할 수 있지만 쥐구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사냥하는 뱀은 피하기가 매우 어려운 존재이다. 그래도 다 큰 쥐는 뱀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지만 움직임이 재빠르지 못한 새끼는 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새끼가 살아남지 못하면 종족을 이어갈 수 없으므로 새끼를 가지면 쥐는 사람이 사는 가옥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둥지를 튼다. 쥐가 둥지를 트는 곳은 물고기 등처럼 만들어놓은 지붕의 서까래의 아래쪽에 반자를 만들어대서 평평하게 만들어놓은 천장 부분이다. 뱀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천적도 사람이 사는 집안까지는 들어오지 못한다는 점을 노리고 새끼를 가장 안전하게 키워낼 수 있는 공간으로 이곳을 택하는 것이다. 여러 마리 새끼가 태어나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운동도 하면서 놀기도 해야 하는데, 평평하게 만들어놓은 반자가 바로 이 녀석들의 운동장이 된다. 밤에 주로 움직이는 야행성 동물이 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천정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새끼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막대기 같은 것으로 반자를 툭툭 치면 잠시 조용하다가 금방 다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오락가락하곤 한다.
새끼뿐 아니라 큰 쥐는 집 밖에서 시끄럽게 하는데, 안팎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서 우리의 신경을 긁어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정한 주기로 쥐를 잡으려고 시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짜를 정해 마을 단위로, 혹은 전국적으로 같은 날짜에 약을 놓아서 쥐를 잡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그래도 쥐는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으니, 지금도 쥐가 우리 주변에 많다는 현실이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쥐약을 놓을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하는데, 밤이 되어 집에서 키우는 가축이 모두 잠든 후의 시간에 해야 하고, 해가 뜨기 전에 반드시 거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축이 먹고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쥐약을 놓은 다음 날 아침 일찍 나가보면 집 주변이나 동네 골목 등에 쥐 죽은 시체가 즐비하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얼마 정도의 쥐를 잡고 나면 그때부터 당분간은 밤이 아주 조용하다. 전기가 없었던 시대에는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인데, 오직 들리는 소리는 아주 시끄러운 쥐 소리뿐이었다가 이것이 사라지니 모두의 마음이 편안하고 한적한 상태로 된다. 그야말로 쥐 죽은 듯 적막한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현상을 생활 속의 언어로 활용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 상태 등을 비유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쥐 죽은 듯 널브러졌다’, ‘쥐 죽은 듯이 있다’ 등의 표현을 만들어냈다. 비록 혐오의 대상일지라도 풍부하면서도 상황에 가장 잘 맞는 말로 표현하기 위해 생활 속의 현상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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