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호박씨 까다 어원, 유래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인 호박은 우리가 매우 사랑하는 채소 중 하나지만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760년 무렵에 이익(李瀷)이 지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의하면 그때로부터 대략 100년이 좀 넘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허균(許筠)은 1618년에 지은 한정록(閑情錄)에서 박(瓠)을 심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호박(南瓜)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추정해 보면 호박은 임진왜란이 끝난 16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호박은 키우기가 매우 쉬운 데다가 잎, 줄기에서부터 열매와 그 속의 씨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사랑하는 채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호박씨에는 불포화 지방산, 비타민E, 마그네슘, 베타카로틴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건강식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말 속담에 ‘뒤로 호박씨 깐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것은 지금도 자주 쓰이고 있는 말 중의 하나이다.
이 표현은 ‘뒤+호박씨+까다’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뒤’라는 말로 인해 여러 가지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표현은 원래 ‘뒤로 호박씨 깐다’였는데, 근래에 들어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로 바뀌면서 온갖 추측성 해석을 낳고 있다. 뒷구멍을 엉덩이, 혹은 항문으로 보아서, 가난한 사람들이 호박씨를 껍질째로 먹은 뒤에 소화되지 않고 나오는 호박씨 껍질이 있기 때문에 이 표현이 생겼다고도 하고, 옛날에 가난한 선비가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부인이 무엇인가를 뒤로 숨기는 것을 보고 추궁해 보니 호박씨여서 이런 말이 생겼다는 등 다분히 주관적인 해설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오해는 ‘호박씨’의 성질과 ‘까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에서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까다’는 어떤 물질의 껍질 따위를 벗겨냄으로써 속에 있는 알맹이를 취하기 위한 행위다. 그러므로 뒤로 숨겼다거나 소화되지 않고 나오는 것이라는 방식의 설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호박씨를 껍질째 씹어서 삼켰는데, 그것이 그대로 배출될 리도 없을뿐더러 어떤 방법으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 또한 호박씨를 뒤로 숨기는 행위와 까는 것은 어떤 관련도 없으니, 이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먹기 위해 호박씨를 까는 것이 어떤 행위를 말하는 것인지를 제대로 알면 이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쉬워진다.
호박씨는 약간 길쭉한 타원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세로 길이가 길고 가로 길이는 짧으면서 갸름하면서 약간 통통한 모습인데, 겉껍질 안에는 초록색에 가까운 색깔의 작은 씨가 들어 있다. 이것을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겉껍질을 까야 하는데, 이 과정이 상당히 어렵다. 지금이야 호박씨 껍질 까는 기계도 있고, 아예 까서 파는 것도 있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거의 모든 가정에서 손으로 하나씩 호박씨를 까서 먹었다. 농촌은 두말할 것도 없고, 아파트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도회지에서도 뜰 안에 호박을 심어 키워서 그 열매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호박씨를 까서 먹기도 하고, 다가오는 명절이나 제사 등에 쓰기 위해 저장해두기도 했었다.
까는 방법을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주려는 방법의 하나로 우리 선조들은 호박씨의 모양을 바탕으로 앞과 뒤를 구분하여 이름을 붙인 다음 그것을 사용하여 설명했다. 호박씨 모양을 보면 길이가 긴 세로 방향의 한쪽은 뾰족하면서 끝이 약간 벌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봄에 움이 돋을 때 그 부분이 벌어지면서 생명이 나오는 곳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호박씨의 뾰족한 부분을 앞이라 하고, 상대적으로 뭉툭한 모양의 반대쪽 부분을 뒤라고 이름 붙였다. 얼핏 보면 세로와 가로가 각각 같은 모양의 타원형인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앞과 뒤를 구분하여 이름 붙인 것은 매우 현명한 처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명칭을 정해 놓은 다음에 우리 선조들은 호박씨를 깔 때는 반드시 앞에서 까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뒤로 까면 절대로 안 된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뒤로 까면 안 된다는 말을 반드시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겉껍질이 잘 까지지 않는 것을 뿐 아니라 안에 있는 씨가 형편없이 부서져서 먹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초록색의 호박씨는 아주 연약한 데다가 크기가 매우 작아서 그 모양을 유지한 상태가 아니면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그래서 뒤로 까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반드시 붙였다.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 뒤로 호박씨를 까는, 뒤로 호박씨 깐다 등의 표현이었다. 과거에는 뒤로 호박씨를 까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사기성이 아주 농후한 행위를 하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렇게 되면서부터 뒤로 호박씨 깐다는 표현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겉과 속이 다른 말과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되었다.
그러다가 근래에 들어서는 뒷구멍, 밑, 밑구멍, 뒤로 등이 변형된 형태로 붙으면서 점잖지 못한 말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되면서 그 말의 합리성을 강화하기 위해 그것에 맞추어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면서 위에서 살펴본 다양한 주장들이 난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직설적 표현을 선호하는 사회로 바뀌면서 언어의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지 원래의 말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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