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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일상/2023

온달이 전사한 곳은?

by 竹溪(죽계)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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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이 전사한 곳은 어디인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590년에 전사함으로써 비극으로 끝난다. 고구려의 장군이었던 온달이 전사한 곳에 대한 기록에는 阿旦城, 阿朝城, 阿且城 등으로 나온다. 아단성, 혹은 아조성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서울의 아차산이라는 주장과 단양 영춘의 온달산성이 있는 곳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두 곳 다 전설이 서려 있는 증거물이 존재하는데, 이것들은 후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기록에 나타나는 증거를 중심으로 온달이 죽은 장소를 파악해 볼 수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충북 단양군 영춘면의 공간이 온달의 죽음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영춘면의 옛 지명이고, 다른 하나는 죽령과 계립령(鷄立嶺) 사이에 있는 땅을 회복하려 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의 기록에, 영춘현(永春縣)은 본래 고구려의 을아차현(乙阿且縣)인데, 신라에서 자춘현(子春縣)으로 고쳤다고 했다. 또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본래 고구려 을아조현(乙阿朝縣)이었는데, 신라가 자춘(子春)으로 고쳤다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본래 고구려의 을아단현(乙阿旦縣)이었는데, 신라에서 자춘으로 고쳤다고 했다. 이런 여러 기록들로 볼 때 아단성은 충청북도 단양의 영춘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온달과 관련된 모든 기록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이 계립령과 죽령 사이의 땅인데, 이 공간 역시 지금의 서울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계립령은 마골재라고도 하는데, 문경 새재와 수안보 사이에 있다. 죽령은 소백산의 연화봉 서쪽에 있는 고개다. 온달은 이 사이에 있는 땅을 되찾겠다며 전쟁터에 나갔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온달이 죽은 곳은 서울의 아차산이 될 수가 없다.

 

이것은 사족이지만, 서울의 아차산에는 평강공주 통곡바위, 온달 주먹바위, 온달샘 등의 유적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영춘에는 온달이 쌓았다는 온달산성, 성 쌓을 돌을 확보하기 위해 평강공주가 앞치마로 돌을 빼내서 생겼다는 온달동굴, 신라군을 감시했다는 군간머리(군간나루), 병사들과 윷놀이를 했다는 윷판 바위, 신라군에 포위되었을 때 숨어서 위기를 면했다는 면위실마을 등의 유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가을이 무르익는 계절에 국문과 동창들과 아차산성이 있는 아차산과 용마산을 올랐다. 가을의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서 풍광은 좋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차산은 온달의 죽음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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