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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일상/2023

여름에 읽는 시

by 竹溪(죽계) 202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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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을 노래한 시는 아니지만 더운 날씨에 볼 수 있는 풍광을 통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을 잘 느낄 수 있는 시가 있다. 4세기 말 5세기 초의 사람이면서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연명(陶淵明)의 사시(四時)가 그것이다.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秋月揚明輝 冬嶺秀高松
봄의 물은 온 사방의 연못에 가득한데, 여름의 구름에는 기이한 봉우리가 많네
가을 달은 높이 솟아 휘영청 밝았는데, 겨울 고갯마루에 소나무 홀로 빼어났네

이 시는 참으로 절묘하다. 네 개의 句로 되어 있는 絶句인데, 각 구절은 한 편의 그림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봄물이 사방에 가득 찼다는 것은, 생명의 탄생과 부활이 가능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근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얼음이 되어 만물을 죽여서 감추었던 물이 봄이 되면 녹아 온 사방에 가득 차서 만물을 살려낸다는 것이다. 여름의 구름은 뜨거운 불로 인해 생기가 충만해져서 만물을 키워내므로 그 기운이 구름처럼 무성하게 뻗쳐서 하늘로 올라가 천태만상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달은 찬 기운인 금(金)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밝으면 만물을 거두어 시들게 함과 동시에 새로운 결실을 만들어내면서 겨울을 준비한다. 자연의 오묘함이 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죽음으로 돌아가지만, 생명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으니 소나무 속에 물로 남아 새로운 봄을 기다린다. 이것이 바로 사계절의 절묘함이다. 스무 개의 글자를 통해 자연의 위대함을 담아내고 있으니 대단한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름 #도연명 #사시 #四時 #뭉게구름 #여름구름 #시의묘미 #陶淵明 #歸去來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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