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의 유적들(2) 無無臺
수성동 계곡에서 북악스카이웨이로 이어지는 인왕산로 쪽으로 올라가서 자하문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無無臺라는 팻말이 보인다. 누군가가 바위에 새겨놓은 말에 의하면, 아무것도 없다로 해석되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란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아래에 오직 아름다움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붙여 놓았다. 그런데도 이런 설명은 무무대라는 말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나 이해를 돕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것은 無無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야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無無는 직역하면, ‘없는 것이 없다.’ 정도로 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깊은 뜻이 있다. 이 표현은 ‘없는 것 자체가 없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만물이 생겨나기 이전의 카오스, 혹은 혼돈상태를 지칭한다. 莊子에 의해 확립된 이 말의 개념은, 무엇인가가 있는 상태(有)와 없는 상태(無) 보다 한층 원초적인 것으로 無와 有가 생겨나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킨다. 즉, 有無의 이전이 無無有이고, 그보다 더 이전이 無無無이다.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멈추는데, 멈춤 역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카오스인 無無의 상태가 된 후에야 비로소 평등하게 된다는 것이다.
無無의 상태는 모든 것-있는 것, 없는 것 등의 모든 것-을 만들어내기 이전이지만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부가 나름의 질서에 의해 혼돈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지칭한다. 바다 위에 나타나는 거품을 예로들어보자. 하나의 거품은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바다로 들어가면 저절로 없어져서 보이지 않는다. 바다는 원래 生과 滅이 없으니 有無이기도 하지만 또한 유무 자체가 없는 無無有이기도 하다. 참으로 어려운 말이지만 無無의 뜻은 이렇게 이해를 해야만 인왕산 무무대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선인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을 이끌어간 사대부들이 이런 명칭을 붙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분들이 가졌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생각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보는 한양의 풍광을 無無라고 표현한 것은 사대문 안에 있는 조선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성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자신들의 정치력에 의해 그것을 펼쳐나가겠다는 포부를 이 이름에 넣은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시작을 보여주는 한양 도성은 모든 것이 녹아 있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로 생각하여 그것에서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을 아주 잘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무무대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보면 빽빽한 건물만 보이지만 북악산과 남산, 한강 사이에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던 선조들의 지혜를 이해하면서 마음으로 본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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