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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寸鐵殺人

이분법의 나라

by 竹溪(죽계)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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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의 나라

뉴제주일보,승인, 2021.09.08 19:38

손종흠 전 한국방송대 제주지역대학장·논설위원

현재 우리나라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분법의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어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분법이란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이 선이라면, 다른 것은 모두 악으로 보고 배척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순율에 기반을 두고 있는 데다가 주관적, 배타적, 적대적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자신의 기준이나 원칙에 맞지 않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심판돼야 할 적으로 취급되므로 중도나 중간 같은 것은 없다.

20세기는 이분법의 이념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냉전과 독재의 시대였다. 우리나라는 제국주의자의 침략, 남북의 분단, 군부독재 등을 거치면서 나와 적이 대립하고 갈등하며, 서로를 응징하면서 피를 흘리는 잔인한 이분법의 세상을 겪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피땀 어린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와 자유를 쟁취했다고 믿었던 지금의 사회에서 그보다 더한 이분법의 세상을 경험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귀던 남녀가 뜻이 맞지 않으면 무자비한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까지 하고, 자신을 불편하게 하면 부모나 조부모일지라도 거리낌 없이 죽이며, 정치적 이념에 맞지 않는 사람은 부정의 프레임을 씌워 무자비한 공격을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상대에게 무조건 배타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되면 다른 것은 일절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성과 타협은 사라지고 끝없는 갈등과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 편이 아니면 그것이 무엇이든 사라져야 하고, 묻지 마 한풀이 성향을 강하게 보이면서 자신의 이익과 상반되는 모든 것들은 개혁의 대상으로 보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탄압한다. 이러한 행위는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고위공직자와 정치인 그룹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데, 나라 전체를 두 쪽으로 나누어 놓음과 동시에 일반 국민의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나다. 이번 정부 내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들었던 것은 ㅇㅇ개혁이었는데, 검찰개혁, 부동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등등이 그것이다.

개혁이란 낡고 잘못된 것을 새롭고 발전적인 것으로 고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국회가 주도하는 모든 개혁은 집권당과 정부의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역행하는 것을 자신들의 생각에 맞도록 만들고 복종시키는 방향으로 행해지고 있어서 국민에게 인정과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를 꿋꿋하게 꾸려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언론중재법은 전 세계적인 쟁점이 되어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당했을 뿐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과 공정의 기준에도 맞지 않는 최대의 악법이라 할 수 있다. 언론계뿐 아니라 그들과 이념이 같았던 사람들도 반대하는 데다 세계 기자협회와 유엔에서까지 우려를 표하면서 정부의 답변을 요구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오랫동안 쌓아왔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라는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념에 매몰된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대상 전체를 둘로 나누어 생각하는 이분법은 대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상대를 인정하며 함께 하려는 방법으로 개발된 이론임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지금과 같이 무조건 피를 흘려야 하는 대립과 갈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무의미한 분열과 싸움으로 나라 전체가 두 쪽으로 나누어진 작금의 상황에서 정치인을 비롯한 국가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은 이념에 현실을 맞추려는 편파적이고 파당적인 이분법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 모든 국민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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