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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寸鐵殺人

정도전과 북곽선생

by 竹溪(죽계) 2019.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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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북곽선생

 

장자방(張良)은 한 고조를 이용했고(房用漢高), 호랑이는 북곽선생을 포기(虎棄北郭)했다. 앞의 것은 조선을 세우고 나라의 기틀을 잡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정도전(鄭道傳)이 한 말이고, 뒤의 표현은 조선 후기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소설인 호질(虎叱)에 나오는 내용을 축약한 말이다.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기록과 인물을 21세기에 다시 떠 올리는 이유는 이러한 현상이 지금도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면서 세상을 바꾼 존재였으나 오만과 자만으로 일관한 나머지 이방원에 의해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북곽선생은 비록 소설 속에만 있는 가상의 존재이지만 조선시대 사대부의 위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큰 뜻을 가졌지만 처참한 죽음으로 끝난 정도전의 삶과 호랑이의 먹이가 되는 것은 면했지만 똥통에 빠져서 내부의 더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북곽선생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정도전을 보자. 정도전과 장량은 하나의 나라를 세우고 기반을 잡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하고 난 후 두 사람의 삶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권력은 나누어질 수 없다는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장량은 어떤 작위도 받지 않고 물러나 성명을 보전했고, 야망과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던 정도전은 절대로 나눌 수 없는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장량이란 존재는 한 나라 창업삼걸이라는 역사와 적송자를 따라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로 남았지만 정도전이란 존재는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이었지만 반역자라는 오욕의 굴레를 쓴 기록으로 남았다. 이것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할 수 없는 진실로 되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정도전의 삶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것은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야망과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망과 욕심의 크기는 끝이 없어서 한 번 가지기 시작하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는 내려놓는 것이 매우 어려운데, 정도전 역시 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교훈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으니 세상을 바꾸어 정의로운 법을 실현하겠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태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어서 저절로 한 숨이 나오도록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야망과 욕심을 가질 수는 있고, 또한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었다면 자신과 가족부터 철저하게 다스리면서(修身齊家) 사회적 지탄을 받을 수 있는 흠결은 만들지 않도록 극도도 주의하는 삶을 살았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역사와 현실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할 말을 잃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해지면서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참으로 슬프다. 매우 슬프다.

 

다음으로는 북곽선생을 보자. 조선시대 최고의 인격자로 손꼽히는 그는 가장 청렴한 선비로 칭송받는 존재이다. 실제로는 위선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세상을 속이며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 부유하고 윤택한 생활을 영위했는데, 뜻하지 않게 호랑이에게 발각되어 최고의 망신을 당하는 사람이 바로 북곽선생이다. 그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계기를 마련한 존재는 수절과부로 나라에서 열녀문(烈女門)을 하사받았지만 아버지가 각각 다른 아들 셋과 함께 살고 있는 동리자(東里子)라는 여인이며, 어머니였다. 사회적으로 칭송받는 찬란한 휘장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편법과 불법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면서 열녀문까지 받는 치밀함과 계략을 가진 그녀의 자식에 의해 북곽선생의 정체가 탄로나게 된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자식을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위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어 다른 사람의 삶을 짓밟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역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호질에서 동리자라는 어머니가 보여준 이러한 행동은 결국 사회적으로 숭배의 대상이었던 북곽선생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주는 계기가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똥통에 빠져서 구린내를 풍기는 덕분에 호랑이의 먹이가 되는 것을 면하고 들판에 일하러 나온 농부에게는 거짓말을 하면서 유유히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북곽선생을 보면 그렇게 살면 그래도 살아지기는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상념은 아닐 것이다.

 

만약 이 시대, 이 시간에 정도전이나 북곽선생의 삶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야망과 욕심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고 세상과 싸우다가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정체가 탄로 나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삶을 사는 것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말이다. 세상과 사람들은 평소에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산군(山君)인 호랑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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