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춘향’인가? ‘억지춘양’인가?
지금도 흔히 쓰는 말 중에 ‘억지춘향’, 혹은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있다. 두 가지가 혼용되어 쓰이는데, 어느 것이 원조인지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억지춘향은 있어도, 억지춘양은 없다는 것이다. 대사전에서는 억지춘향의 뜻에 대하여, ‘억지로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어떤 일이 억지로 겨우 이루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 표현은 자기 뜻과는 관계없이 강요 때문에 무슨 일인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자료를 찾아보면 20세기 초반부터 ‘억지춘향’이란 표현이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록상으로는 세상의 일을 새로운 소식으로 전하는 신문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보다는 훨씬 오래전부터 일반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 내용을 보자.
“朝鮮文士를 맛나라면 新聞社로 가보라. 格에 맛지 안는 地方部社會部, 經濟部椅子에 턱턱 걸어 안저서 억지春香의 붓대勞働을 머리골치가 띙하게 終日하고 잇다. 저녁에는 화ㅅ김에 요리집에서 밤을 새운다”(1929년 10월 30일, 동아일보, 最近見聞 方仁根)
“이러케 억지春香을 꾸며노타싶이한 K君이 機械的으로움즉여야할 拘束된 店員生活에 調和되지안흘것은 定한 理致다”(1937년 7월 22일, 동아일보, 店頭에서 본 世相, 梁基哲)
“삼단 같은 머리채를 느러트리든 옛 시절로 거슬러 올나가도 못쓰겟지만, 노란머리 아닌 털을 억지춘향으로 구비치게 한들 어쩔거시여"(1949년 4월 28일, 동아일보, 휴지통)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억지춘향이란 말은 춘향전에서 비롯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변 사또가 춘향에게 강요하여 억지로 수청을 들도록 하려 했다는 춘향전의 내용이 널리 알려져 유행하면서 이런 표현이 생겼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국어대사전에서는 ‘억지춘향’만을 싣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억지춘양’이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의 영암선 철도 춘양역이나 춘양목에서 유래했다고 역설한다. 이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춘양이란 지명의 역사적 유래를 먼저 살펴보고, 철도부설의 역사를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
춘양은 경상도 안동도호부에 소속되어 있던 속현으로, 도호부에서 북쪽으로 120여 리 떨어진 곳에 있다. 본래 이름은 가야향(加也鄕)이었는데, 이곳 출신인 金仁月이 공을 세운 관계로 고려 충렬왕 때 현(縣)으로 승격되어 春陽縣으로 되었다. 鄕은 部曲과 더불어 행정의 최하위 단위로 신라 때부터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所, 莊, 處 등으로 확대되었다가 조선 초기에 대부분 사라졌다. 향과 부곡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일반 백성으로 주로 농업에 종사하면서 租, 布, 役의 세 가지를 부담했다. 향과 부곡 등은 한때 천민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나라의 세금을 부담하는 중심 지방 조직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사람들은 良人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춘양이란 이름의 역사는 고려말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신라나 고려 등의 시대에 아주 후미진 변방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억지춘향’이 아니라 ‘억지춘양’이라고 하는 이 지역 사람들에 의하면, 세 가지 유래가 존재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첫째, 이 지역에는 예로부터 ‘억지춘양’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노래가 전래해 오고 있으므로 ‘억지춘양’이 맞다는 것이다. “왔네 왔네 나 여기 왔네 / 억지 춘양 나 여기 왔네 / 햇밥 고기 배부르게 먹고 / 떠나려니 생각나네 / 햇밥 고기 생각나네 / 울고 왔던 억지 춘양 / 떠나려 하니 생각나네…” 매우 외진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한 번 시집을 오면 나가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런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고 한다. 노래가 있는 것은 맞지만 채집하던 시기에 ‘억지춘양’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예부터 나무 중의 왕이라 일컬어지는 소나무가 이 지역에서 났는데, 이것을 춘양목이라 했는데, 다른 지역에서 나온 소나무를 파는 사람들도 모두 춘양목이라고 우긴 데에서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억지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영주에서 철암까지 잇는 철도 공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되었다 중단된 이후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에 공사를 재개했는데, 그 당시에 이 지역 출신으로 자유당 제3대 국회의원이자 자유당 원내총무였던 정문흠(鄭文欽,1892 ~ 1976)이 억지로 노선을 변경하여 Ω자 형태로 만들어서 춘양역을 설치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억지로 춘양역을 만들었다고 하여 ‘억지춘양’이란 말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도 부설 역사를 모두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내성-춘양 간 철도부설 계획에 이미 서 있었기 때문에 춘양면 소재지를 경유하지 않고 법전과 녹동으로 직행하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다만 ‘춘양역(春陽驛)’은 이미 경남 삼랑진에서 광주 송정역까지 가는 경전선에 있어서 사용할 수 없었음에도 1955년 6월28일 교통부고시 제416호로 「7월 1일부터 영암선 ‘춘양역’ 영업을 개시한다.」라는 발표를 하였고, 바로 다음 날인 6월29일 교통부고시 제417호로 수 십 년간 춘양역으로 이용되던 「경전선 춘양역을 7월 1일부터 ‘석정리역’으로 개정한다.」라는 고시를 한 것에 대하여 춘양역 이름을 억지로 변경하고, 또 억지로 사용하게 된 것을 탓하는 의미로 ‘억지춘양’이라 했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어쩌면 그 국회의원이 다른 지역의 이름을 없애고, 봉화의 춘양역을 살려낸 정도의 힘은 발휘했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억지춘향’과 ‘억지춘양’ 중 어느 것을 선호할 것인가는 개인적인 판단에 맡겨야 하겠지만, 역사적 사실로 볼 때는 ‘억지춘향’이 정통이며, ‘억지춘양’은 사회적 풍속으로 인해 訛傳되면서 생겨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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