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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 나타난 자본주의의 본질

by 竹溪(죽계) 2016.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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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서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본질

 

주차장, 주방, 식당, 화장실, 서재라는 다섯 개의 공간과 요리사, 도둑, 도둑의 아내, 아내의 정부라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재미, 서사(敍事), 스피드 등과는 아주 거리가 먼 작품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의 의미와 인물의 캐릭터가 갖는 의미, 색채, 조명, 카메라의 이동, 풍자성 등이다.

 

이 영화에서 줄거리는 별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화려한 모양을 갖춘 식당의 주방에는 프랑스에서 초빙되어온 유명한 요리사 리차드가 있고, 식당에는 먹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자부하면서 식욕을 충족시키고 쾌락을 추구하면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도둑 알버트와 그의 부인 조지나가 있으며, 식당 한쪽 구석에는 늘 책을 보고 있는 유태계 사람으로 그녀의 정부인 마이클이 있다.

 

주인인 알버트에게 커다란 불만을 가지고 있는 요리사는 사랑에 빠진 조지나와 마이클의 불륜을 돕는다. 이를 눈치 챈 알버트는 마이클을 그의 서재에서 잡아다가 죽이는데, 연인을 잃어버린 조지나는 마이클의 시신을 요리한 후 알버트로 하여금 그의 성기를 먹게 한 후 총으로 쏴서 죽인다.

 

서사를 중심으로 이 영화를 보면 하나의 식당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불륜, 그리고 복수 정도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지루하며, 가벼운 느낌이 들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다른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한 다양하면서도 특수한 장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며, 그것을 제대로 읽어내지 않고서는 작품의 진면목을 보기 어려운 상태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영화에서 치밀하게 배치한 여러 장치들이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시도를 해보도록 하자.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섯 개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다. 작품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공간은 식당의 외부 세계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주자창이다. 주차장은 청색으로 표현되는데, 자연과 사람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 재료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곳으로 희망을 나타내지만 갈등과 폭력이 난무하는 거친 공간이다.

 

그 다음은 녹색으로 표현되는 주방의 공간이다. 주방은 바깥의 세계에서 들어온 거칠고 활용하기 어려운 모든 것들을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소비할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자인 요리사가 있다.

 

세 번째 공간은 붉은 색으로 표현되는 식당의 내부 공간이다. 붉은 색과 검은 색을 대비시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식당의 내부는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음식과 술 등을 중심으로 하는 온갖 상품들이 도둑으로 묘사되는 주인과 손님들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온갖 탐욕을 만족시켜주면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화려하면서 미쳐 돌아가는 이 공간과는 약간, 아니면 전혀 어울리지 못하거나 않는 두 인물이 함께 있다. 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도둑과 함께 살기는 하지만 변태성욕과 폭력에 시달리면서 탈출을 꿈꾸는 미모의 아내이며, 또 한 사람은 식당에 오는 손님이지만 다른 사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한쪽 구석에 앉아 책만 보는 창백한 지식인인 마이클이다.

 

등장인물의 비중이나 중요도 등으로 보아 식당 내부가 이 영화에서 중심 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고 해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원초적 욕망을 해결해주는 곳이며, 모든 것을 집어삼켜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 내놓는 곳이 바로 이 공간이 된다.

 

그런데,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욕망이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내인 조지아는 강렬한 성욕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변태성욕자이며, 성불구자인 남편에게서는 아무런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 또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책을 주로 읽고 있는 마이클 역시 이 공간에서는 어떤 지적, 성적 욕구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러한 불균형으로 인해 두 개의 공간이 더 필요하게 되는데, 화장실과 서재가 바로 그것이다. 백색으로 표현되는 화장실은 위로 먹은 것을 아래로 배설하는 곳이지만 조지나와 마이클에게는 아래로 들어오고 나가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소비의 이면 공간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순수의 공간이기도 한 곳이다.

 

마이클이 머물면서 공부하며, 알버트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는 서재는 자주색으로 표현되는데, 이곳은 이상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 이 공간은 알버트 같은 도둑에게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곳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알버트는 프랑스 혁명사에 대한 책을 마이클의 입에 쑤셔 넣어서 죽인다.

 

이제 이 다섯 개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중심에 있는 식당 내부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식당 내부는 한 쪽으로는 주차장, 주방과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화장실, 서재와 연결되어 있다. 이 공간은 주차장과 주방을 통해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나 수용하고, 화장실과 서재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것은 거부한다.

 

왜냐하면 식당 내부 공간은 소비만을 전지전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서만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을 본질적 성격으로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하도록 함으로써 탐욕과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존재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칠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외부 세계의 것들을 소비할 수 있으는 것이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기술자만 필요하고 나머지는 용납될 수 없다. 재료를 확보하기 위한 폭력과 거친 재료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기술자이며, 노동자인 요리사가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되고, 그들이 머무는 공간 또한 중요한 곳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 번째로 살펴보아야 공간으로 주방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방이라는 공간이 식당을 존재하게 만드는 핵심이기 때문에 알버트는 아주 비싼 월급을 주면서 일류의 요리사를 초빙해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주방은 일터, 혹은 노동행위가 일어나는 현장이 되며, 요리사는 노동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노동자가 없으면 세상은 돌아가기 어렵지만 자본가에 의해 언제나 착취당하면서 무시당하는 존재가 바로 그들인데, 요리사를 통해 이런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식당의 주인인 알버트가 요리사를 고용해서 부리는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주인의 권력은 주방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나 먹어치우는 식당 내부에서는 알버트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지만 주방의 리처드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거친 사물을 순치(馴致)시켜 인간이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핵심 기술을 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공간은 주차장이다. 주차장은 외부 세계에서 온 모든 것들이 모이면서 주방에 재료를 공급하는 공간이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칠고 딱딱해서 폭력이나 강탈 같은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는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이 공간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없으면 원초적인 재료를 확보할 수가 없어서 주방의 공간을 통한 화려한 변신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원재료의 공급이 없다면 식당으로 표현되는 화려한 자본주의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네 번째로 살펴야 할 공간은 흰색으로 그려지는 화장실이다.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화장실은 위로 먹은 것을 배설하는 아주 더러운 공간으로 별로 쓸모없는 곳이 된다. 그러나 이 공간은 그의 아내와 정부에게는 식당에서는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사랑을 가능하도록 하는 곳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이미지인 흰색으로 나타난다. 이 공간은 조지나와 마이클이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곳으로 그려진다.

 

다섯 번째 공간인 서재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쾌락과 권력만을 보이도록 함으로써 의미 있는 생각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힘을 가진 자본주의의 영역을 벗어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마이클과 같은 이상주의자들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서재는 그런 공간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조지나가 연결됨으로 인해 파괴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으면서 마이클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바탕으로 이제부터는 등장인물 캐릭터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영화의 제목에서 도둑으로 표현되는 알버트는 자본주의를 만들고 포장하며, 그것이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주체라고 믿고 있는 자본가이다. 그는 자본을 힘의 지렛대로 이용하여 권력을 휘두르고, 탐욕을 충족시키며, 무자비한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도둑이지만 그의 양 편에는 마음대로 안 되는 두 존재가 있으니 바로 요리사로 대표되는 노동자와 아내로 대변되는 정치가이다. 요리사가 요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식당은 돌아갈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망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에 도둑은 많은 투자를 해서라도 그를 잡을 수밖에 없다.

 

또한 아내로 나타나는 정치가는 자본가와 동반자 관계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기는 집단으로 도둑이 가질 수 없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정치가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아내가 가지는 욕망의 중심에 사랑으로 포장한 성욕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정치가의 본색을 아주 잘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사 같은 책을 주로 읽고 있는 마이클은 이념으로 똘똘 뭉친 존재이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질은 철저하게 정치적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당에 와서 요리를 먹기 보다는 도둑의 아내가 갈망하는 이념을 추구하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그녀와 연결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세 번째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미장센을 이루고 있는 여러 장치들이다.

 

이 작품에서 카메라는 아래위로 움직이는 것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수평적으로만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동하는 차례 역시 주차장, 주방, 식당, 화장실, 서재의 순서이다. 카메라는 수평으로 이동하지만 등장인물은 수직적인 점이 흥미롭다. 카메라의 수평이동은 자본주의 사회의 도입, 가공, 판매, 소비, 재생산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높은 곳을 지향하는 사상이나 숭고한 사랑 따위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알버트에게 들킨 마이클과 조지나가 서재로 가서 숨지만 금방 발각됨과 동시에 서재의 약간 높은 곳에 있었던 마이클은 아래로 끌려내려와 죽임을 당한다.

 

카메라의 이동 방향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바로 등장인물의 관계이다. 이들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든 이면적으로든 힘과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수직관계이다. 요리사와 도둑의 관계, 아내와 도둑의 관계, 도둑과 마이클의 관계 등은 표면과 이면 모두 수직 관계이다.

 

이들의 관계는 아주 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캐릭터의 성향으로 볼 때 요리사와 도둑의 관계는 필연적이며, 도둑의 아내와 그녀의 정부가 맺는 관계 역시 필연적이지만 도둑과 아내가 맺는 관계는 수의적(隨意的)이라는 점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색채다. 청색, 붉은 색, 흰색, 녹색, 자주색 등은 모두 해당 공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상태와 의미를 나타낸다. 특히 붉은 색과 검은 색의 앙상블은 자본가와 그에 딸려 있는 존재들의 심리상태와 권력에 대한 욕망, 탐욕 등을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또 한 가지 덧붙여야할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치와 행위들이 풍자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둑과 추종자들의 행동, 아내의 욕망과 행위, 마이클의 행위와 이념, 삶을 위해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요리사의 상태 등과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강렬한 색채, 매일 매일 바뀌는 식당의 메뉴표, 요리사, 아내, 종업원 등이 합심하여 마이클의 시신을 요리하여 알버트로 하여금 먹게 한 후 죽여서 복수하는 것 등이 모두 풍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에 자본가로 대변되는 도둑인 알버트를 죽이는 것이 과연 혁명인가 하는 점인데, 참으로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이념을 죽였으니 그러한 행동을 한 상대방도 죽여야 하는 것이 과연 혁명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이 혁명인지가 헛갈리는 장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추악함을 거부할 생각은 있을지 몰라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와 실천이 가능할지에 대해 풍자적으로 묻고 있는 영화가 바로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녀의 정부라는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모든 결론과 결정은 감상자 개인의 몫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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