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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세계/기생이야기

[스크랩] 藝壇一百人 1회- 비봉(飛鳳)

by 竹溪(죽계) 201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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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1회)

비봉(飛鳳)

 

고향은 경상남도 마산포요, 본명은 임경자(林敬子)라.

 

부산으로 이사하여 초량 사립여학교에서 공부하더니 우연한 인연으로 그 곳 학교 교사로 있는 한용구(韓容求)와 결혼하여 6개월을 금슬이 상합(相合)하게 지냈으나 여자의 일생에는 여러 가지의 운명이 무시로 왕래하는 것이라

 

나이 16세에 이르매 경자로 하여금 정랑을 이별하고 내지 광도현(廣島縣)으로 가서 학교에도 다녀보고 노류장화의 아름다운 이름도 나타내어 보았으며 그리저리 지은 것이 자연이 내지 언어를 유창히 통할 뿐 아니라 내지 의복에 가무를 할 때에는 내지 여자나 조금도 다른 곳이 업는 중,

 

더욱 잘하는 것은 ‘이소모시 기절(磯節) 사노부시’ 등이요, 금년은 18세인데, 고국으로 돌아온 후, 고향 마산에서 부모를 받들고 다시 한가한 날을 보내다가 미진한 세연이 그저 남았던지 서남순(徐南淳)과 한가지로 경성 남부 곡교에서 비봉이라 개명하고 기생 노릇을 시작하니,

 

내지와 조선의 가무가 능통한 까닭으로 연회석에 비봉이 참예치 아니하는 곳이 없으며, 율은 가야금 양금 등이 제일 익숙하여, 접무․무고․안녕무 등의 춤도 일등으로 지목하겠더라.

 

“어찌해서 기생 노릇을 하려고 나왔냐 무르시니 말씀이 올시다마는 저는 본디 그 뜻이 없는데 늙은 부모가 곤궁하게 지내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내 몸은 희생에 이바지 하더라도 부모나 편안히 공양하자는 뜻이올시다.

 

아이고, 말마시오. 몇 해를 기생 노릇하여 보니까 참 못 할 것은 그것입디다. 어떠한 때는 눈물이 솟아날 때도 많고 한심한 때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친구들은 나려우시라고 별명을 짓지요. 하하하.”

 

 

(매일신보 1914. 1. 28)

출처 : 손종흠의 홈페이지
글쓴이 : 淸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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