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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우리문화칼럼

신화 속의 하늘

by 竹溪(죽계) 201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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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화에서 하늘의 의미

 

 

    신화는 그것을 만들고 향유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으며, 자신들이 바라는 문명에 대한 생각을 언어로 실현시켜 놓은 것이기 때문에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이며, 문명의 어머니가 된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신화는 신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늘에 대한 것과 신적인 존재에 대한 것이 중심을 이룬다. 즉, 신화는 하늘이 중심 무대가 되며, 그곳에 사는 신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은 신의 활동무대가 되는 곳으로 주로 나라를 세운 신령스런 존재의 근거지가 된다. 제주도의 삼성신화를 제외하고 우리 민족의 모든 신화에는 하늘이 핵심적인 소재로 등장한다. 단군신화에는 땅에 사는 웅녀가 하늘에 사는 천제의 아들인 환웅과 결혼하고, 고구려 건국신화인 동명성왕신화에서는 하늘의 햇빛이 유화부인의 몸에 들어와서 주몽을 낳는다.

 

   이러한 사정은 한반도의 남쪽에서 일어난 가야나 신라의 건국신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서는 알의 형태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신화에는 모두 하늘이 중요한 존재로 등장하는데, 우리 신화에서 하늘이 가지는 의미는 다음의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씨가 있는 공(空)의 세계, 둘째, 인간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세계, 셋째, 왕의 절대 권력을 견제하는 공간으로 백성들이 사는 세상 등이 그것이다.

 

    공의 세계는 나누고 또 나누어서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아주 작은 물질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만물의 근원인 종자가 아주 작은 알맹이의 형태로 녹아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말은 하늘이란 무한하게 넓고 큰 어떤 것이며, 그 속에는 우주내의 만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들어있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과학적으로 따져본다면 하늘은 행성과 행성 사이의 간격에 의해 생기는 공간을 지칭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하늘이 만물을 만드는 근원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것은 하늘로 지칭되는 공간에 무엇인지 모르는 어떤 것이 녹아 있어서 우주내의 모든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주 작은 형태의 존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미세한 어떤 것으로 녹아있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 차원에서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무엇인가 있어서 그것을 근원으로 하여 세상의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생각이 이야기의 형태로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신화의 하늘이며, 공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웅녀의 배필이 되어 단군을 낳게 한 환웅과 유화부인의 남편으로 주몽을 낳게 하는 해모수, 알의 형태로 태어난 가야와 신라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박혁거세를 보내준 곳 등이 모두 하늘이기 때문에 우리 신화에서 하늘이 가지는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생명의 근원이 녹아있는 형태인 공의 세계라는 것을 우선적으로 가지게 된다.

 

    신화의 주인공은 모두 인간의 능력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초능력을 지닌 신이다. 그런데 이러한 초능력을 가진 신이 하는 행동을 보면 모두 인간세상을 향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몸을 바꾸어서 변신을 하거나 인간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굉장한 힘을 발휘하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인간 세상을 향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천제의 아들인 환웅이 인간세상을 탐내서 풍백, 우사, 운사를 데리고 내려오는 것이나 하늘의 신인 해모수가 인간의 몸으로 내려와서 유화부인과 결합하는 것, 그리고 부족이나 구간(九干)의 요청에 의해 알의 형태로 임금을 내려주는 것 등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늘에 사는 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인간세상을 향해 있다는 것은 하늘에 사는 신의 근거지가 바로 인간 세상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것은 하늘에 사는 신이 바로 땅에 사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이상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은 땅에 사는 인간이 만들고 싶어 하는 열망을 담은 이상적인 세상을 실현한 곳이 되기 때문에 하늘은 높고 멀리 있지만 언제나 땅과 연결되어 있으며, 땅은 하늘과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땅의 세상은 현실이요, 하늘의 세상은 이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설정된 하늘은 너무나 높고 다른 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인간세상과 직접적으로 통하기가 어렵다. 그런 관계로 신화에서는 신의 심부름꾼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존재나 인간을 다스리는 존재를 보내서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자신의 세계를 실현시키려고 하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절대권력을 가진 왕이었다. 왕은 보통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의 아들로 설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우리 신화에도 그렇게 나타난다.

 

    왕은 신에게서 받은 특별한 능력과 함께 땅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존재가 된다. 즉,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생사여탈권을 가진 존재가 하늘을 대신한 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왕이 하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하늘에서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왕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왕이 절대권력을 가졌다고 하여 패륜적인 행동을 마구 한다면 백성들이 받는 고통은 말할 수도 없이 클 것이기 때문에 왕의 위에 하늘을 두고 왕은 하늘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씌워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아들인 왕이 함부로 행동을 하면 하늘에 사는 왕의 아버지인 신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왕은 함부로 날뛸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의 행동을 감시하는 존재로서의 하늘은 왕의 지배를 받는 백성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하늘은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향을 이야기의 형태로 실현시켜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늘은 왕을 낳고, 백성은 하늘을 낳으니 왕이야말로 백성의 아들이라는 사상을 우리 신화가 간직하고 있는 것이 된다.

 

    우리 신화가 간직한 하늘의 세 가지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신화는 바로 고구려(高句麗) 건국신화인 동명성왕신화인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고구려라고 읽지만 원래 발음은 고구리였다. 고(高)는 높다는 뜻이니 땅의 위에 있는 하늘을 가리킨다. 그리고 려(麗)는 어딘가에 걸려 있다는 뜻을 지니는 의미가 되고 발음은 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는 하늘에 걸려 있는 나라란 뜻이 되어 우리 민족은 하늘에서 내려온 민족이 된다. 고구려가 천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동북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가지는 세 가지 의미를 올바르게 새기면서 왕과 백성이 하나 되어 서로를 섬기고 공경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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