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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세계/황진이

허균이 본 서경덕과 황진이

by 竹溪(죽계) 2006.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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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 성소부부고 제24권  설부 3(說部三) 성옹지소록 하(惺翁識小錄下)


공헌왕(恭憲王 명종(明宗)의 시호) 때에 사인(士人) 이언방(李彦邦)이란 자가 노래를 잘했다. 가락이 맑고 높으니 감히 그와 재주를 겨루는 사람이 없었다. 일찍이 최득비여자가(崔得霏女子歌)를 불렀는데, 온 좌석이 모두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

서경(西京)에 유람했는데 교방(敎坊) 기생이 거의 이백 명이 되었다. 방백(方伯)이 열지어서 앉힌 다음, 노래에 능하거나 못하거나를 가리지 않고 도상(都上)에서 동기(童妓)까지 한 사람이 창(唱)하면 언방이 문득 화답했는데, 소리가 모두 흡사했으며 막힘이 없었다.

송도(松都) 기생 진랑(眞娘)이 그가 창을 잘한다는 것을 듣고서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언방은 자신이 언방의 아우인 양 속이면서,


"형님은 없소. 그러나 나도 제법 노래를 하오."

하고 드디어 한 곡조 불렀다. 진랑이 그의 손을 잡으면서,


"나를 속이지 마시오. 세상에 이런 소리가 어찌 또 있겠소. 당신이 바로 진짜 그 사람이요. 모르기는 하지마는 면구(綿駒)와 진청(秦靑)인들 이보다 더 잘하겠소?"

하였다.


진랑(眞娘)은 개성 장님의 딸이다. 성품이 얽매이지 않아서 남자 같았다. 거문고를 잘 탔고 노래를 잘했다.

일찍이 산수(山水)를 유람하면서 풍악(楓岳 금강산의 별칭)에서 태백산(太白山)과 지리산(知異山)을 지나 금성(錦城)에 오니, 고을 원이 절도사(節度使)와 함께 한창 잔치를 벌이는데, 풍악과 기생이 좌석에 가득하였다. 진랑은 해어진 옷에다 때묻은 얼굴로 바로 그 좌석에 끼어 앉아 태연스레 이[虱]를 잡으며 노래하고 거문고를 타되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으니, 여러 기생이 기가 죽었다.

평생에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호)의 사람됨을 사모하였다. 반드시 거문고와 술을 가지고 화담의 농막[墅]에 가서 한껏 즐긴 다음에 떠나갔다. 매양 말하기를,


"지족 선사(知足禪師)가 30년을 면벽(面壁)하여 수양했으나 내가 그의 지조를 꺾었다. 오직 화담 선생은 여러 해를 가깝게 지냈지만 끝내 관계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성인이다."

하였다. 죽을 무렵에 집사람에게 부탁하기를,


"출상(出喪)할 때에 제발 곡하지 말고 풍악을 잡혀서 인도하라."

하였다. 지금까지도 노래하는 자들이 그가 지은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또한 특이한 인물이었다.


진랑이 일찍이 화담에게 가서 아뢰기를,


"송도(松都)에 삼절(三絶)이 있습니다."

하니 선생이,


"무엇인가?"

하자,


"박연폭포와 선생과 소인(小人)입니다."

하니, 선생께서 웃었다. 이것이 비록 농담이기는 하나 또한 그럴듯한 말이었다.

대저 송도는 산수가 웅장하고 꾸불꾸불 돌아서 많은 인재가 나왔다. 화담의 이학(理學)은 국조(國朝)에서 제일이고, 석봉의 필법(筆法)은 해내외에 이름을 떨쳤으며, 근자에는 차씨(車氏) 부자와 형제가 또한 문명(文名)이 있다. 진랑도 또한 여자 중에 빼어났으니, 이것으로써 그의 말이 망령되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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