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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세계/황진이

황진이의 일생

by 竹溪(죽계) 2006.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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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의 전기(傳記)


  진이(眞伊)는 송도의 이름난 창기이다. 그 어머니 현금(玄琴)이 꽤 자색이 아름다웠다. 나이 18세에 병부교(兵部橋) 밑에서 빨래를 하는데 다리 위에 형용이 단아하고 의관이 화려한 사람 하나가 현금을 눈여겨보면서 혹은 웃기도 하고 혹은 가리키기도 하므로 현금도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다가 그 사람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날이 이미 저녁때가 되어 빨래하던 여자들이 모두 흩어지니, 그 사람이 갑자기 다리 위로 와서 기둥을 의지하고 길게 노래하는 것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물을 요구하므로 현금이 표주박에 물을 가득 떠서 주었다.

 

  그 사람은 반쯤 마시더니 웃고 돌려주면서 말하기를, “너도 한 번 마셔 보아라.”라고 했는데, 마시고 보니 술이었다. 현금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그와 함께 좋아해서 드디어 진이(眞伊)를 낳았다. 진이(眞伊)는 용모와 재주가 한때에 뛰어나고 노래도 절창(絶唱)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선녀(仙女)라고 불렀다.

 

  유수(留守) 송공(宋公), 혹은 송염(宋𥖝)이라고도 하고 혹은 송순(宋純)이라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가 없다. 이 분이 처음 부임했을 적에 마침 절일(節日)을 당했다. 낭료들이 부아(府衙)에 조그만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진랑(眞娘)이 와서 뵈었다. 그녀는 태도가 얌전하고 행동이 단아하였다.

 

  송공은 풍류인(風流人)으로서 풍류장에서 늙은 사람이다. 한 번 그녀를 보자 범상치 않은 여자임을 알고 좌우를 돌아다보면서 말하기를, “이름은 헛되이 얻는 것이 아니로군!”이라 하고, 기꺼이 관대(款待)하였다. 송공의 첩도 역시 관서(關西)의 명물(名物)이었다. 문틈으로 그녀를 엿보다가 말하기를,

 

  “과연 절색이로군! 나의 일이 낭패로다.”라 하고, 드디어 문을 박차고 크게 외치면서 머리를 풀고 발을 벗은 채 뛰쳐나온 것이 여러 번이었다. 여러 종들이 붙들고 말렸으나 만류할 수가 없었으므로 송공은 놀라 일어나고 자리에 있던 손들도 모두 물러갔다.

 

  송공이 그 어머니를 위하여 수연을 베풀었다. 이때 서울에 있는 예쁜 기생과 노래하는 여자를 모두 불러 모았으며 이웃 고을의 수재(守宰)와 고관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으며, 붉게 분칠한 여인이 자리에 가득하고 비단옷 입은 사람들이 한 무리를 이루었다. 이때 진랑(眞娘)은 얼굴에 화장도 하지 않고 담담한 차림으로 자리에 나오는데, 천연한 태도가 국색(國色)으로서 광채(光彩)가 사람을 움직였다.

 

   밤이 다하도록 계속되는 잔치 자리에서 모든 손들은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송공은 조금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으니, 이것은 발[簾] 안에서 엿보고 전날과 같은 변이 있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술이 취하자 비로소 시비(侍婢)로 하여금 파라(叵羅)에 술을 가득 부어서 진랑(眞娘)에게 마시기를 권하고, 가까이 앉아서 혼자 노래를 부르게 했다. 진랑(眞娘)은 매무새를 가다듬어 노래를 부르는데, 맑고 고운 노래 소리가 간들간들 끊어지지 않고 위로 하늘에 사무쳤으며, 고음 저음이 다 맑고 고와서 보통 곡조와는 전혀 달랐다. 이에 송공은 무릎을 치면서 칭찬하기를, “천재로구나.”라고 했다.

 

  악공(樂工)엄수(嚴守)는 나이가 70세인데 가야금이 온 나라에서 명수요, 또 음률도 잘 터득했다. 처음 진랑(眞娘)을 보더니 탄식하기를, “선녀로구나!”라고 했다. 노래 소리를 듣더니 자기도 모르게 놀라 일어나며 말하기를, “이것은 동부(洞府)의 여운(餘韻)이로다. 세상에 어찌 이런 곡조가 있으랴?”라고 했다.

 

   이때 조사(詔使)가 본부(本府)에 들어오자, 원근에 있는 사녀(士女)들이 구경하는 자가 모두 모여들어 길옆에 숲처럼 서 있었다. 이때 한 두목이 진랑(眞娘)을 바라보다가 말에 채찍을 급히 하여 달려와서 한참 동안 보다가 갔는데, 그는 관(館)에 이르러 통사(通事)에게 이르기를, “너의 나라에 천하 절색(絶色)이 있구나.”라고 했다.

 

  진랑(眞娘)이 비록 창류(娼流)로 있기는 했지만 성품이 고결하여 번화하고 화려한 것을 일삼지 않았다. 그리하여 비록 관부(官府)의 주석(酒席)이라도 다만 빗질과 세수만 하고 나갈 뿐, 옷도 바꾸어 입지 않았다. 또 방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시정(市井)의 천예(賤隸)는 비록 천금을 준다 해도 돌아다보지 않았으며, 선비들과 함께 놀기를 즐기고 자못 문자를 해득하여 당시(唐詩) 보기를 좋아했다.

 

   일찍이 화담 선생(花潭先生)을 사모하여 매양 그 문하에 나가 뵈니, 선생도 역시 거절하지 않고 함께 담소했으니, 어찌 절대(絶代)의 명기가 아니랴? 내가 갑진년에 본부(本府)의 어사(御史)로 갔을 적에는 병화(兵火)를 막 겪은 뒤라서 관청집이 텅 비어 있었으므로, 나는 사관을 남문(南門) 안에 사는 서리(書吏)진복(陳福)의 집에 정했는데, 진복의 아비도 또한 늙은 아전이었다.

 

   진랑(眞娘)과는 가까운 일가가 되고 그때 나이가 80여 세였는데, 정신이 강건하여 매양 진랑(眞娘)의 일을 어제 일처럼 역력히 말했다. 나는 묻기를, “진랑(眞娘)이 이술(異術)을 가져서 그러했던가?”라고 하니, 늙은이는 말하기를, “이술이란 건 알 수 없지만 방 안에서 때로 이상한 향기가 나서 며칠씩 없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여러 날 여기에서 머물렀으므로 늙은이에게 익히 그 전말(顚末)을 들었다. 때문에 이같이 기록하여 기이한 이야기를 더 넓히는 바이다.

󰡔송도기이(松都記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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