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松都) 기생 황진(黃眞)>
본조(本朝)의 송도(松都) 기생 황진(黃眞)은 매우 절색(絶色)에다 시도 잘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화담 선생(花潭先生, 화담은 서경덕(徐敬德)의 호) 및 박연폭포(朴淵瀑布)가 나와 함께 송도의 삼절(三絶)이다.”하였다. 그녀가 어느 날 땅거미가 질 때 비를 피하려 어느 선비의 집을 찾아들었더니, 그 선비가 환히 밝은 등불 밑에서 그녀의 너무도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는 마음속으로 도깨비나 여우의 넋이 아닌가 하고 단정히 앉아 옥추경(玉樞經)을 끊일 새 없이 외어대었다. 황진은 그를 힐끗 돌아보고 속으로 웃었다. 닭이 울고 비가 개자 황진이 그 선비를 조롱하여, “그대 또한 귀가 있으니 이 세상에 천하 명기 황진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거요, 바로 내가 황진이라오.” 하고는 뿌리치고 일어나니, 그 선비는 그제야 뉘우치고 한탄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황진이 송도에서 지은 시에,
눈 달은 고려 시대 그때 빛이요/雪月前朝色
찬 종은 옛나라의 소리이구나./寒鍾故國聲
남쪽 누각 시름겹게 홀로 서 있고/南樓愁獨立
성곽에는 저녁 연기 피어오르네./城郭暮烟生
라고 하였는데,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는 초루(草樓) 권겹(權韐)의 시이다.”라고 하였다.
(청장관전서 제33권, 청비록 2, 시기(詩妓) 중에서)
집에 산대(山臺)ㆍ철괘(鐵枴)ㆍ만석(曼碩) 등 음란한 놀이를 베풀고 부인들로 하여금 그것을 구경하게 해서, 웃음소리가 밖에 들리게 하는 것은 집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가 아니다.
(산대(山臺)ㆍ철괘(鐵枴)ㆍ만석(曼碩)에 대한 두주(頭註) : 산대(山臺)는 무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서 연극을 하는 일 지금의 가면극이다. 철괘(鐵枴)는 성이 이(李)씨로 원래는 얼굴이 잘 생겼었는데 죽은 뒤에 그 혼이 굶어 죽은 시체에 붙어 살아났으므로 다리를 절고 얼굴이 추악했으며 항시 지팡이에 발을 걸고 다녔기 때문에 철괘라 이름한 것이다. 〈곧 이러한 흉내를 내는 놀이다.〉만석(曼碩)은 송경(松京) 대흥사(大興寺)의 중인데,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에게 매혹되어 수도(修道)를 망쳤다. 〈이처럼 희롱하는 놀이다.〉)
(청장관전서 제30권, 사소절 제7, 부의 2, 사물(事物)[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