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선 제24권 교서(敎書) 수양대군 공신 교서(首陽大君功臣敎書)
유성원(柳誠源)
왕은 이르노라. 하늘이 사직을 위하여 어진 이를 내니 대개 기수(氣數)에 관계가 있고, 임금이 벼슬과 땅을 주어 명을 내리니 진실로 훈공(勳功)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에 일정한 법규에 의하여 뚜렷이 상전(賞典)을 보인다.
숙부(叔父)는 삼광(三光)과 오악(五嶽)의 정기로 태어나고, 바람과 서리에 절개를 가다듬었다. 기우(器宇)와 국량은 준엄하고 깊었으며, 지조와 기개는 확고하고 엄정하였다. 효성과 우애는 천성에 박혔고 충성과 의리는 지성에서 우러났다. 호걸의 재주요, 성현의 학문이었다. 기운은 한 세상을 덮었고 용맹은 삼군(三軍)에 으뜸이었다. 덕망은 종친 가운데 무거웠고, 풍채는 조정의 반열에 뛰어났다. 착한 일을 가장 좋아하여 부귀나 성색도 그 마음을 흔들 수 없고,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어 이험(夷險)과 종시(終始)에 그 지조를 변하지 않았다. 우뚝하여 나라의 성(城)과 같고, 확고하여 대절(大節)에 임하였다.
어린 내가 가운(家運)이 불행함을 만나 어렵고 큰 일을 널리 구하려는 생각으로 기무를 신하들에게 위임하고 바야흐로 보필을 기대하여 융성과 태평을 도모하기를 기약하였다. 이때에 있어서 용(瑢)이 지친의 처지에 있으면서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을 축적하였다. 과인이 어려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간계를 쓰면 왕위를 혹시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후하게 은혜를 베풀어 사람에게 명예를 구하고 여러 소인들이 다투어 모여들어 사사 집에서 당파를 만들었다. 오랫동안 부도한 흉계를 품어서 만 가지로 노려왔다.
간신(姦臣)황보인(皇甫仁)ㆍ김종서(金宗瑞)ㆍ이양(李讓)ㆍ민신(閔伸)ㆍ조극관(趙克寬) 등은 내가 총애하여 맡긴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몰래 흉악한 화란을 일으킬 계책을 품어 음으로 당(黨)과 후원을 만드니 모두들 흡연히 따라 붙었다. 나의 나이 어리고 약함을 멸시하여 나의 위엄과 복을 도둑질하였다.
권세를 마음대로 부리고, 은혜를 사사로 팔았다. 벼슬은 함부로 친척과 인척에게 돌리고, 뇌물은 공공연하게 안팎에 행하였다. 부역이 번거로워서 공사(公私)가 함께 곤하고, 토목의 역사를 일으키어 재물과 힘이 다하였다. 임금의 총명을 가리고, 임금의 덕택을 막아서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공도(公道)는 일식(日食)이 일어나듯이 어두워지고, 사의(私意)는 홍수(洪水)처럼 흘러 넘쳤다. 하늘이 위에서 노하여도 내가 알지 못하고 백성이 아래에서 원망하여도 내가 깨닫지 못하였다.
숙부가 일찍이 그 연고를 분하게 여기어 글을 올려 항쟁하였으나 내가 또한 심상하게 여기어 살피지 못하였다. 대개 용(瑢)에게 붖좆는 것이 저와 같으므로 조정을 어지럽히는 것이 이와 같았다. 흉한 꾀가 더욱 깊이 들어가서 매일 밤 사사로이 모이었다. 안으로는 근시(近侍)와 환관을 통하여 동정을 살피고, 밖으로는 방진(方鎭)과 장수를 달래어 몰래 날짜와 시기를 약속하였다. 도당(徒黨)이 이미 많아지매 형세가 날마다 치성하였다. 큰 간흉(奸兇)이 뿌리를 단단히 박아서 뽑을 수가 없는데, 과인의 몸은 고립이 되었으니 무엇을 하겠는가. 종사와 국가의 편안하고 위태로움이 호흡 사이에 달려 있었다.
숙부는 선견지명이 있어서 이를 갈고 마음을 썩혔다. 천지가 용납하지 않으니 군흉(群兇)들의 악역(惡逆)을 참을 수 있으며, 사직(社稷)이 기뻐하실진데 어찌 일신의 사생을 돌아보겠는가. 웅대한 결단과 영명한 계책으로 정의(正義)와 용맹을 분발하여, 이 충의(忠義)의 장사를 거느리고 저 흉악한 무리를 섬멸하였다. 그리하여 삽시간에 쓸어버리니 조정이 서로 경하하고 길가는 사람이 다투어 기뻐하였다. 나라의 근본이 거의 흔들렸다가 다시 편안하게 되고, 신기(神器)가 장차 기울어지려다가 다시 안정되었다. 이것은 대개 꾀를 단단히 하고 마음을 깊이 가져, 정성은 귀신을 감동시키고 충성은 일월(日月)을 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흉(群兇)을 능히 잠깐 사이에 베어 하루아침이 지나기 전에 맑아졌다. 공렬이 매우 빛나서 고금에 탁월하다. 숙부가 계시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이럴 수 있었겠는가. 진실로 천지 조종의 신령이 모르는 가운데 도와서 숙부의 손을 빌려 화란을 평정한 것이다. 그 출생(出生)함이 기수(氣數)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이에 그 충성을 권념(眷念)하여 장수와 정승의 권세를 겸하게 하였다.
나는 속마음을 피력하면서 위임하였고, 경은 대신으로서의 임무를 다하여 충성을 극진히 하였다. 제왕의 어진 은혜를 권하여 선포하였고 권간의 나쁜 정치를 모조리 개혁하였다. 성색(聲色)에 움직이지 않고 국가를 반석같이 편안하게 만들었으며, 병과(兵戈)를 쓰지 않고 백성들이 태평을 누리도록 만들었다. 몸이 나라의 기둥이 되매 사람들이 의지하여 무겁게 여기고, 공이 하늘에 덮였는데 스스로 낮추고 겸손해 하였다. 그러니 참으로 고자(孤子)를 부탁하고 목숨을 의지할 수 있는 사직의 중신(重臣)이라 하겠다. 옛적에 주공(周公)이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베어 왕가(王家)를 편안하게 하였으니, 큰 의리가 소소하여 만고에 빛났다. 지금을 미루어 옛일과 비교하면, 세상은 다르나 부합된 것은 같다.
이에 공훈(功勳)을 책정하여 정난(靖難) 일등공신으로 삼아 분충장의 광국보조 정책정란(奮忠仗義匡國輔祚定策靖難)의 호(號)와 식읍일천호 식실봉오백호(食邑一千戶食實封五百戶)를 내리고, 해마다 별봉(別俸) 6백 석, 노비 6백 구, 밭 5백 결, 황금 25냥, 백은 1백 냥, 안장을 갖춘 말 네 필, 안팎 옷감 열 끗, 사(紗)와 나(羅) 각각 다섯 필, 옷 한 벌, 서각대(犀角帶) 한 개, 사모(紗帽)ㆍ갓ㆍ신 등 여러 물건을 내린다. 경의 공은 많은데, 나의 상은 적으니, 경이야 무슨 바람이 있을까마는, 내게 있어서는 부족함을 느낀다. 나의 지극한 뜻을 생각하여 받아주기 바란다.
아, 경은 주공(周公)의 아름다운 재주가 있고, 또 주공의 큰 공훈을 겸하였으나, 나는 오히려 성왕(成王)의 어린 나이로 또한 성왕의 어려움을 만났다. 이미 성왕이 주공에게 책임하던 것으로 숙부에게 책임하였으니, 마땅히 주공이 성왕을 돕던 것으로 과인을 도우라. 그리하여 위와 아래가 서로 닦아가면 성공하지 못할 염려가 무엇이 있겠는가. 충렬(忠烈)을 돌아보매 실로 의지하는 마음이 깊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교시하노니, 마땅히 잘 알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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