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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육신관련/유성원

사육신 유성원전

by 竹溪(죽계) 200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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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문 

 

유성원전 


 

 

유성원의 자는 태초이고 세종조에 과거에 급제했다.


정통 갑자에 식년과에 급제하고, 정유년에는 중시에 급제했다.


계유정난이 있었을 때 모든 신료들이 세조의 공을 주공에 비하여 기리자고 하여 집현전의 학사들에게 초안을 잡으라고 명하였다.


모든 학사들이 전부 도망하여 어디론가 가버렸는데, 유독 유성원만 홀로 남아 있었던 관계로 협박에 못이겨 초안을 기초하였다.


그 후 집현전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큰 소리로 통곡을 하였다.


집안 식구들이 그 연유를 몰랐는데, 급기야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되어 상왕으로 되고 유성원은 성균과 사예를 제수 받았다.


병자년의 모의에 참여하였으나 일이 발각되어 성삼문이 잡혀갔을 때 유성원은 객사에 있었다.


주위에 있던 여러 유생들이 성삼문의 일을 알리니 수레를 준비하라고 하여 곧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부인과 함께 마주하여 이별의 술을 마시고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올라가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았다.


집안 사람들이 가서 보니 사모관대와 관복을 벗지 않은 채로 패도를 뽑아서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한 후였다.


급히 구하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그러나 집안사람들은 그렇게 자결한 까닭을 알지 못했는데, 갑자기 관리들이 나와서 시신을 빼앗아서 가지고 갔는데, 사지를 찢는 형벌을 가한 후 저자 거리에 내 걸었다.

 

 

2. 원문 

 

柳誠源傳

 

柳誠源字太初。世宗朝登第。 正統甲子式年。丁卯重試。癸酉。百官上請褒世祖之功比周公。令集賢殿起詔草。諸學士皆亡去。獨誠源在。爲迫脅起草。出就家慟哭。家人莫知其故。及魯山爲上王。授成均司藝。預丙子之謀。事發拿三問去。誠源時在館。諸生以三問事告之。卽命駕還家。與妻酌酒訣飮。上祠堂久不下。往視之。不脫冠帶。拔佩刀自刎。救之已無及矣。然不知其所以。俄而吏來取屍去。磔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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