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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육신관련/사육신기록

사육신왕조실록기록(세조2년6월8일)의금부에처벌을 명함

by 竹溪(죽계) 200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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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2년 6월 8일 (병오)

의금부에서 성삼문 등의 반역죄를 고하니 연루된 자들의 처벌을 명하다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명하여 의금부 제조(義禁府提調) 윤사로(尹師路)·강맹경(姜孟卿)·이인손(李仁孫)·신숙주(申叔舟)·성봉조(成奉祖)·박중손(朴仲孫)·어효첨(魚孝瞻)과 승지(承旨)·대간(臺諫) 등을 불러서 입시(入侍)하게 한 다음,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박중림(朴仲林)·김문기(金文起)·성승(成勝)·유응부(兪應孚)·윤영손(尹令孫)·권자신(權自愼)·박쟁(朴崝)·송석동(宋石同)·이휘(李徽)·노산군(魯山君)의 유모[嬭母] 봉보 부인(奉保婦人)의 여종 아가지(阿加之)·권자신의 어미 집 여종 불덕(佛德)·별감(別監) 석을중(石乙中) 등을 끌어 와서 장(杖)을 때리면서 당여(黨與)를 신문하였다.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이개·하위지·성삼문·박중림·김문기·유응부·박쟁·송석동·권자신·윤영손·아가지·불덕 등이 결당하여 어린 임금을 끼고 나라의 정사를 마음대로 할 것을 꾀하여, 6월 초1일에 거사하려 하였으니, 그 죄는 능지처사(凌遲處死)에 해당합니다. 적몰(籍沒)과 연좌(緣坐)도 아울러 율문(律文)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하니, 임금이 명하기를,

“아가지와 불덕은 연좌시키지 말고, 나머지 사람들은 친자식들을 모조리 교형(絞刑)에 처하고, 어미와 딸·처첩(妻妾)·조손(祖孫)·형제(兄弟)·자매(姉妹)와 아들의 처첩은 변방 고을의 노비로 영속시키고, 나이 16세 미만인 자는 외방에 보수(保授)하였다가 나이가 차기를 기다려서 안치(安置)시키며,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라.”

하고, 드디어 백관(百官)들을 군기감(軍器監) 앞길에 모아서, 빙 둘러서게 한 다음, 이개 등을 환열(轘裂)하여 두루 보이고 3일 동안 저자에 효수(梟首)하였다.

성삼문(成三問)은 성격이 출세에 조급하여 스스로 중시(重試)에 장원하여 이름은 남의 앞에 있으나 오래도록 제학(提學)과 참의(參議)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아비 성승(成勝)은 본래 이용(李瑢) 과 가까이 지냈는데, 일찍이 의주 목사(義州牧使)로 있을 때 사람을 죽이고 관직이 떨어져 고신(告身)과 과전(科田)을 거두었으나, 이용(李瑢)이 자기 당류(黨類)들에게 말하기를,

“성승이 가장 나를 따르고 있다. 만약 변(變)이라도 있게 되면 의당 내 말[馬]앞에 설 사람이다.”

하고, 바로 계청(啓請)하여 환급(還給)하였다. 이 말이 남들에게 퍼졌으므로 성삼문이 그 때문에 스스로 의심하였다. 박팽년은 사위 이전(李瑔)의 연고로 항상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였다. 하위지(河緯地)는 일찍이 〈세조에게〉 견책을 받았으므로 원한을 품었었고, 이개(李塏)와 유성원(柳誠源)은 품질(品秩)이 낮은 것에 불평 불만하여 진달(進達)하려는 생각에서 마침내 서로 깊이 결탁하여 급급히 왕래하였는데, 정적(情迹)이 이상하여 남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김문기(金文起)는 박팽년과 족친(族親)이 되었고, 또 친밀히 교제하였는데, 그때 김문기가 도진무(都鎭撫)가 되었으므로 박팽년·성삼문과 함께 모의하기를,

“그대들은 안에서 일이 성공되도록 하라. 나는 밖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으니, 비록 거역하는 자가 있다 한들 그들을 제재하는 데 무엇이 어렵겠는가?”

하였다.

 

 

【원전】 7 집 136 면

 御思政殿, 命召義禁府提調尹師路、姜孟卿、李仁孫、申叔舟、成奉祖、朴仲孫、魚孝瞻及承旨、臺諫入侍, 拿致成三問、李塏、河緯地、朴仲林、金文起、成勝、兪應孚、尹令孫、權自愼、朴崝、宋石同、李徽、魯山嬭母奉保夫人婢阿加之、自愼母家婢佛德、別監石乙中等, 杖訊黨與。 義禁府啓: “李塏、河緯地、成三問、成勝、朴仲林、金文起、兪應孚、朴崝、宋石同、權自愼、尹令孫、阿加之、佛德等結黨, 謀挾幼主, 專擅國政, 欲以六月初一日擧事, 罪應凌遲處死。 籍沒緣坐, 竝依律文施行。” 上命 “阿加之、佛德勿緣坐, 餘人親子竝處絞, 母女、妻妾、祖孫、兄弟、姊妹、若子之妻妾, 永屬邊邑奴婢, 年未滿十六者外方保授, 待年滿永屬, 伯ㆍ叔父、兄弟之子, 安置遠方, 年未滿十六者外方保授, 待年滿安置, 餘如所啓。” 遂聚百官於軍器監前路環立, 轘李塏等以徇, 梟首于市三日。 三問性躁進, 自以重試居魁名在人先, 而久滯於提學參議。 其父勝素昵於瑢, 曾爲義州牧使, 殺人落職, 收告身科田, 瑢語其黨曰: “勝最附於我。 如有變當立我馬前者。” 乃啓請還給。 是語播聞於人, 三問以是自疑。 彭年以女壻瑔故每懼及。 緯地嘗被讉懷怨, 塏、誠源以秩卑鬱鬱, 思欲進達, 遂相深結, 汲汲往還, 情迹詭秘, 人皆訝之。 文起與朴彭年爲族親且密交, 文起時爲都鎭撫, 與彭年、三問謀曰: “第汝等在內成事耳。 我在外領兵, 雖有違拒者, 制之何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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