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살인이 판치는 일본사회
일본에 살면서 많이 접하게 되는 소식 중의 하나가 묻지마살인 사건인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보기에는 살인을 할 정도의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하루가 멀다 않고 일어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는 묻지마살인라는 용어로 불리는 일본의 엽기적살인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가 기억하기에 묻지마살인 사건 중에 가장 반향이 컸던 것은 오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살인사건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1995년 3월 20일 출근시간인 오전 8시경, 동경의 5개 지하철역에서 맹독성을 지닌 사린가스를 살포하여 12명이 죽고, 5천여명이 다친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을 지시한 죄목으로 오옴진리교의 아사하라교주는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결말이 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뉴스는 전하고 있다.
이 사건이 일본 전체 사회에 충격을 준 것은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 불특정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살인을 했다는 데 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우리 사회에서도 지하철 테러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조치가 취해졌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런 식의 묻지마살인은 그 후로도 일본 사회에서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필자가 일본에 온 것이 2005년 10월부터 지금까지도 이런 식의 묻지마살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살인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린가스 사건처럼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뉴스를 통해 알려졌던 묻지마살인 사건으로 필자에게 충격을 주었던 사건은 페루 국적을 지닌 일본인 교포3세가 저지른 초등학생 살인 유기사건이었다. 일본계인 이 사람은 부인과 자식을 페루에 남겨두고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들어왔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날은 일이 없는 날이어서 늦잠을 자고 있어났는데, 그는 별 생각 없이 집 앞에 나와서 층계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 때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아이를 죽인 다음 종이 상자에 넣어서 바로 옆의 공터에 버렸던 사건이다.
며칠 뒤에 경찰에 구속된 그 사람이 하는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아이를 왜 죽였느냐는 질문에 “집에 두고 온 딸이 생각나서 그냥 불러 보았는데, 웃으면서 대답하는 아이를 보는 순간 죽이고 싶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 때는 악마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와서 활동하던 때”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 어린 아이를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인 이 사건은 곧 다른 사건에 묻혀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 사건이 있은지 얼마 후에는 남자고등학생이 평소에 알고 지내던 여학생을 집으로 찾아가서 부엌칼로 50번이나 찔러서 살해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나중에 구속된 살인자의 말 역시 우리가 볼 때 매우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중학교 때부터 이성교재를 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 여학생이 자신을 매우 싸늘하게 대해서 죽였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50번이나 찔렀느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말하기를 “두세 번은 의식을 하면서 찔렀으나 그 후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찔렀다”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서가 없는 묻지마살인 사건은 그 후로도 계속 일어났는데, 2006년에 들어와서 일어난 초등학생 추락사 사건 역시 앞의 것과 거의 비슷한 경우였다. 이 사건은 동경에 붙어 있는 위성도시인 다마(多摩)시에서 일어났다.
40대의 남자가 아파트 15층의 복도에서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를 아래로 던져서 추락사 시킨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경찰의 조사에 의하면 이 남자는 이곳으로 이사를 올 목적으로 아파트를 찾아왔다가 심심해서 살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초등학생을 추락사시키기 전에도 이 아파트의 청소부 아주머니를 살해하려다가 반항하자 그만둔 일까지 있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왜 사람을 죽였느냐는 묻는 질문에 이 사람 역시 “그냥 약한 자를 죽이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위에서 예로든 것 외에도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이유로 여중생을 살해한 남자 고등학생부터, 유부녀를 성폭행하려다가 두 살 난 아이까지 함께 살해한 청소년, 열여섯 살에 어머니를 살해하고, 돈을 뺏을 목적으로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 자매를 살해한 다음 증거 인멸을 위해 시신을 넣고 방에 불을 지른 22살의 남자,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하는 여러 건의 여학생 실종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띤다.
필자는 언젠가 일본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일본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매우 꺼려하고, 얼굴을 마주 대놓고는 싫은 소리나 올곧은 소리를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해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믿을 수 없고, 속내를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일본의 문화라는 것이었다. 겉과 속이 같으면 진정한 일본인이라 할 수 없다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그들만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일본에 만연한 생명경시의 풍조는 이념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것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토착종교라고 할 수 있는 신도(神道) 때문에 외래의 고등종교를 비롯한 우수한 사상을 받아들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불교도 제대로 들어온 적이 없으며, 유교도 제대로 들어온 적이 없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기독교 역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종교라는 것은 일정한 이념을 논리적으로 갖춘 사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을 높이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고급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외래종교가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일본인의 의식을 채우고 있는 이념이 바로 종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교가 아닌 것도 아닌 신도(神道) 때문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종교백화점이라고 할 정도로 자생종교든 외래종교든 대단한 성행을 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것이 반드시 좋다고만은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생명을 중시하고, 체면을 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이러한 묻지마살인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걱정을 금할 수 없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영화나 언론, 인터넷 등을 통해서 전해지는 미국이나 일본의 엽기적 사건들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문화의 침투 혹은 침탈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묻지마살인 사건처럼 알게 모르게 받는 영향 역시 크다는 사실에 눈을 돌려서 이런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 교육에서 인성 교육을 강화하는 일이 매우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우리는 유학이 낳았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유학의 많은 부분들을 부정하면서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학이 단점만을 가진 사상은 아니기 때문에 좋은 점을 살려서 우리 생활에 활용하는 지혜가 지금은 매우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는 현재 우리가 취해야할 유학의 덕목은 예의염치(禮義廉恥)인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사람에게 최대한의 예(禮)를 다하며,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행동과 판단을 하도록 하며, 이익만을 탐하지 않으면서 양보할 줄 알도록 하며,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도록 하는 인성교육이야말로 지금의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건널목의 적색신호도 모두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일본사회의 속담처럼 되지 않고, 혼자든 둘이든 지킬 것은 지키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도록 교육하며, 다른 사람을 존경할 줄 알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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