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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올드보이」, 「친절한·금자씨] 박찬욱의 트리플 복수시리즈

by 竹溪(죽계) 2006.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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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올드보이」, 「친절한··」 박찬욱의 트리플

 

복수는 해(害)를 입은 사람이 가해자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그것을 돌려주는 행위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개인적인 복수는 철저하게 금지된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복수가 허용되면 복수가 복수를 낳고, 그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아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개인적이고 사적인 복수가 있을 경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범죄로 취급하여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행동으로서의 복수를 법이 금하고 있다고 하여 마음의 복수까지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이러한 복수심을 영화로 만든 것이 바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의 시리즈 세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무엇 때문에 복수에 대한 영화를 세편씩이나 만들었으며, 그것은 무엇에 대한 복수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면서 이 세편의 영화를 본다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쓴다. 필자가 보기에 세편의 영화는 각각 ‘자본가집단에 대한 복수’, ‘자본가집단에 의한 복수’, ‘자본가 집단을 이용한 복수’ 를 말하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이것들에 대해 작품을 따라가면서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 ‘자본가 집단에 대한 복수’를 그린 영화 「복수는 나의 것」


복수극의 첫 번째 영화인 「복수는 나의 것」은 자본가집단과 노동자집단의 물고 물리는 복수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노동자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인 류, 류의 누나, 류의 여자 친구 영미, 영미의 배후조직 등이고, 자본가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중소기업 사장인 동진과 그의 친구, 장기매매조직, 그리고 경찰이다.


벙어리이며 귀머거리인 류는 노동자인 누나가 공장에서 피땀 흘려 벌어다 주는 돈으로 대학에 진학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공부를 하지만 고된 노동으로 인하여 몹쓸 병에 걸린 누나를 살리기 위해 공장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이다.

 

 

무산계급의 혁명론을 주장하는 류의 여자 친구인 영미는 자본가를 극도로 미워하며 사회혁명을 꾀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를 살리려고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류를 유혹하여 소위 말하는 ‘착한 인질극’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 된다.  


사실 류는 자본가에 대한 미움이나 원한 같은 것은 전혀 없고 오직 누나를 살리려는 일념  뿐인 착한 남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류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살인을 하는 것 따위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점은 무산혁명을 주장하는 영미 역시 마찬가지다. 전단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정도의 사람으로 범죄와는 거리가 먼 존재이다.


날마다 고통으로 시달리는 누나를 보다 못한 류는 자신의 장기를 희생함으로써 누나에게 이식할 신장을 얻기 위하여 장기매매조직과 접촉을 하는데, 자신의 신장과 천만원만 보기 좋게 사기당하고 만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류는 그들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다.

 

류가 복수를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자신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이까지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누나가 자살을 하면서부터이다. 누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는 자신을 속인 장기매매조직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게 되고 그들을 찾아내어 복수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누이 한 사람 밖에 없었던 류에게 있어서 그녀의 죽음은 자신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아 간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하여 동진의 딸이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한편 불경기로 인하여 회사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이혼까지 당하고 어린 딸만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중소기업 사장인 동진은 딸을 납치했다는 유괴범으로부터 돈을 가지고 오라는 연락을 받고 약속 장소로 나가지만 돈 가방만 뺏기고 만다.


얼핏 보면 동진은 상당히 순진한 자본가로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잔인하고 비겁한 사람이다. 자신이 해고한 노동자가 할복까지 해가면서 애원을 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경찰에게 뇌물을 바치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경찰은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공식적인 행동은 자본가집단을 위해 하지만 실제 생활은 노동자나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수술비 때문에 아이를 유괴한 범인을 쫓지만 그 자신의 피붙이도 병원비가 모자라 수술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있다. 


이러한 이중적 성격을 지닌 존재는 장기매매조직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돕는 척 하면서 이들에게 사기를 쳐서 번 돈으로 자본가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류와 누나, 영미 등이 중심을 이루는 노동자집단과 동준과 딸, 경찰, 장기매매조직 등이 중심을 이루는 자본가집단은 서로 상반되는 모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장기매매조직에 의해 깨어지게 되는데, 이들의 사기가 류의 누이를 죽게 만들고, 누이의 죽음이 동진의 딸을 죽게 만듦으로서 두 그룹 사이의 평화는 완전히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때부터 죽고 죽이는 복수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류는 장기매매조직과 동진의 딸을 죽이고, 동진은 해고노동자와 영미와 류를 죽이고, 영미의 조직은 다시 동진을 죽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류와 동진이 하는 복수의 행동이나 도구를 보면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류는 아주 원시적인 무기와 방법을 주로 쓰고, 동진은 과학적인 무기와 방법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의 장치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동진의 행동과 복수의 방법, 그리고 사용하는 무기를 통해 볼 때 자본가집단은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하면서 속으로는 매우 잔인한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허기를 참아가면서 현장에서 일을 하지만 관리자인 사장이나 사무직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자리를 비운다. 또한 자신의 배를 칼로 그을 정도라면 죽을 각오가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데도 아주 냉정하게 복직을 거절한다. 그리고 영미가 류의 행방을 말하지 않자 전기고문을 해서 죽이는데, 그 때 동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일을 해치운다.   


노동자집단을 대표하는 류와 영미의 조직이 복수하는 방법과 무기를 보면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야구방망이나 식칼을 주로 사용하며, 동진이 사용하는 방법과 비교해 볼 때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방망이로 때려서 죽이는 것이나 칼로 찔러서 죽이는 것 따위는 동진이 복수하는 방법보다 훨씬 덜 잔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노동자집단에 대한 애정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자본가집단에 대한 노동자집단의 복수를 그린 이 영화는 영미의 배후 세력으로 보이는 무산계급인 노동자집단이 동진을 죽이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다음 편에서 자본가집단의 잔인한 반격이 전개될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2.  ‘자본가집단에 의한 복수’를 그린 「올드 보이」

 

 

 

「올드보이」로 이름 붙여진 두 번째 영화는 자본가집단에 의한 노동자집단에 대한 잔인한 복수극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만 따로 놓고 볼 때는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복수극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자본가집단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본다면 감독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리라고 본다. 이제 작품을 따라가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올드보이」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오대수는 누군가에게 끌려가 15년을 갇혀 있다가 나와서 복수를 결심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15년 동안 갇혔던 것부터 복수하는 것까지의 전부가 우진의 각본에 의한 것이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네 명인데, 오대수와 그의 딸 미도, 그리고 오대수의 동창인 우진과 그의 애인인 우진의 누이다. 이 네 사람은 모두 죽음과 감금, 근친상간 등을 통해서 철저하게 망가지는 인물로 표현되고 있다.


복수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오대수였지만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우진에 의한 오대수에 대한 복수다. 그런데, 그 복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함에다 근친상간까지 가세를 하기 때문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왜 저런 복수극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작품만을 독립시켜 놓고 봤을 때는 잔인한 복수 이상의 의미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중심을 흐르고 있는 구성을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산다는 식으로 자신의 이름 풀이를 하는 수다쟁이인 오대수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노동자집단을 대표한다.


반면 우진은 사랑하는 누이를 죽게 만든 오대수에게 복수를 할 일념으로 엄청난 자본가가 된다. 오대수 한 사람 정도는 마음대로 할 정도의 자본을 모은 우진은 상상을 초월하는 복수를 시작하는데, 그 방법이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특히 오대수가 자신의 딸과 성관계를 갖도록 만드는 장면에서는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인데, 이러한 잔임함이야말로 자본가집단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고 보아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우진은 오대수가 소문을 내는 바람에 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복수를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영화를 자세히 보면 우진이 누이를 죽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진은 애초부터 아주 잔인한 인물로 설정이 되는데, 이러한 잔인함은 부자가 되어서는 거의 정신병적인 상태로 되어서 남매간의 근친상간을 했던 자신보다 더 나쁜 부녀간의 근친상간으로 오대수를 몰아갔다는데서 감독의 의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남에게 뒤집어씌워서 그 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는 복수의 방식이야말로 가진 자들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동진이 하는 방식과 일맥상통하는데, 「올드보이」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과 자본가들의 반격이 평범한 한 인간을 얼마나 철저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 모두에게 물으면서 그것을 최대한의 잔인함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영화가 바로 「올드보이」였던 것이다.

 

 

자본가집단에 의한 반격으로 시작해서 처절한 복수극으로 마무리한 「올드보이」는 이제 세 번째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는 「친절한 금자씨」에서 다시 자본가집단을 이용한 처절한 복수극으로 이어지게 된다.


 3. ‘자본가 집단을 이용한 복수’를 그린 「친절한 금자씨」

 

 

복수극의 세 번째 영화인 「친절한 금자씨」 역시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자신이 믿었던 영어 선생인 백한상이 자신이 저지른 유괴살인죄를 뒤집어씌우는 바람에 13년을 감옥에서 보낸 금자가 처절한 복수를 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대략 금자, 금자의 딸 제니, 근식, 백한상, 전도사, 죄수, 유괴아의 부모들, 경찰 등이다. 그런데, 이 인물들의 성격을 잘 보면 1편과 2편의 구성에서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약자인 노동자집단이 중심이 되었던 주인공 편의 인물들이 범민중으로 확대되었으며, 강자였던 자본가집단이 중심이 되었던 주인공 편의 인물들은 외세와 유한계급집단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금자는 어린 나이의 여성으로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를 가지게 되고, 갈 곳이 없어진 그녀는 살인마인지도 모른 채 백한상에게 몸을 의탁하는 인물이다.  

 

 

갓난 애기 때 백한상에 의해 호주로 입양된 그녀의 딸 제니 역시 금자와 마찬가지로 천진난만한 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금자를 사랑하는 케익집의 근식과 대부분의 죄수들도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점에서 같은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이처럼 등장인물의 외연(外延)이 넓어진 것은 노동자집단의 복수에서 시작된 이 영화가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전체의 복수극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또 다른 성격의 주인공인 백한상은 영어강사를 직업으로 하는 어린이 유괴살인마다. 아이를 유괴하여 살인하는 방법이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이기 때문에 절대로 용의자선상에 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백한상의 직업에 대해 반드시 짚어야할 것이 있다. 그가 영어강사로 위장한 유괴살인마라는 점 때문이다. 영어는 서구 혹은 미국을 상징한다고 보아 틀림이 없는데, 이에 대한 우리들의 이중적인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현실적으로는 미국 같은 강대국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하는 못된 짓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그들을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우리들이 지닌 잠재의식을 투영한 인물이 바로 백한상이기 때문이다.


돈을 위해 백한상의 첩자 노릇을 하는 전도사 역시 이중적인 인물이다. 겉으로는 죄수를 인도한다는 허울을 쓰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버는 악덕 사기꾼이다. 이 전도사가 바로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이 땅의 민중들을 등쳐먹은 외세의 상징인 것이다.


유괴된 아이들의 부모는 자본가집단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다. 아이들을 유괴한 백한상에 대해서는 엄청난 원한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도 않는데다가 인질대금으로 빼앗겼던 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그랬지만 경찰 역시 이중적이다. 금자가 진범이 아니란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녀를 감옥으로 보내 13년을 감금시킨 장본인이며, 그 후에는 금자의 개인적 복수를 돕는 인물이 바로 경찰이다.

 

 

등장인물들이 갖는 이러한 성격과 함께 이 작품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할 것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복수의 도구와 방법들, 그리고 금자가 지닌 이중성이다. 총과 칼, 락스 등의 복수도구와 표면적인 친절함과 내면적인 잔인함, 고통의 극대화를 꾀하는 살인방법 등이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크기 때이다.


먼저 친절함과 잔인함을 함께 지닌 금자의 이중성을 보자. 누구에게나 친절하여 ‘친절한 금자씨’라고 불리는 그녀는 내면이 온통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지만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상냥함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이다.


웃음 속에 감춰진 살의!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하면서도 복수하기 위해 꾸준히 계획하고 힘을 기르는 존재가 바로 금자이다. 친절함과 아름다움으로 언제나 웃음을 보여야하는 금자야말로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처한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정출발로 인하여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빼앗기고도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처지이며, 미국이 군대를 파견하라고 하면 언제든지 우리의 아들들을 사지로 내몰아야 하는 상태가 바로 우리의 현주소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으로는 금자처럼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밟히고 밟히지만 다시 일어섬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는 민족이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주의가 민족말살정책을 펴면서까지 우리를 짓밟았어도 의연히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에게 참고 견디면서 준비하는 이런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감독은 우리들에게 좀 더 계획적이고 치밀함을 요구한다. 자신의 본질을 숨기기 위하여 언제나 기도하며, 유괴당한 아이들의 부모들에게는 손가락을 잘라서 보여주기도 하며, 살인청부업자에게 습격을 받았을 때도 침착하게 가까이 가서 총을 쏘는 금자가 지닌 냉철함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중요한 살인 무기인 락스, 칼, 총 등의 도구는 매우 원시적이지만 모두 서구의 제국주의를 통해 전해진 것들이다. 그리고 고통을 최대로 하여 사람을 죽이는 그런 방법 역시 그들에게서 배운 바가 크다.


그러므로 금자는 백한상과 못된 여죄수를 죽이는 도구와 방법을 배운 그대로 한다.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데, 더욱 잔인하게 돌려준다는 것이 바로 금자의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금자는 그러면서도 복수를 간단하게 하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죽일 수도 있는 백한상을 유괴당한 아이들의 부모들로 하여금 죽이게 하고 자신은 죽은 시체에 총을 쏘는 것으로 복수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총을 백한상의 무덤에 같이 묻는다.


자본주의에 의해서 행해진 잔인한 살인에 대해 같은 방법으로 돌려주면서도 그들을 역이용하는 이와 같이 현명한 복수야말로 금자를 통해 우리들에게 감독이 보내려는 핵심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감방에서 금자가 총의 제조법을 배우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비전향장기수와의 만남은 이런 맥락에서 더욱 큰 의미가 주어진다. 즉, 남북공동으로 제작한 총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오래된 소망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 평론가는 「친절한 금자씨」는 제목과는 맞지 않게 관객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은 영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야말로 더 이상 친절할 수 없을 정도의 친절함으로 우리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들의 인간성을 철저하게 파괴한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자집단의 복수인 「복수는 나의 것」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근친상간의 아픔을 맛보게 할 정도로 잔인한 자본가집단의 복수를 그린 「올드보이」를 거쳐, 자본주의를 이용한 복수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자각과 그것을 헤쳐 나갈 지혜를 제시한 「친절한 금자씨」에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폭력성과 잔인성을 너무 지나치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잘 알기 어려웠던 분들이라면 위에서 서술한 맥락으로 세 편의 영화를 다시 볼 때 좀 더 깊이 있는 이해와 새로운 의미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 출처:다음photoviewer(http://movie.daum.net/movieInfo?mkey=40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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