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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문학으로영화보기

"음란서생" 다시보기

by 竹溪(죽계) 2006.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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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서생" 다시보기


조선시대 명문사대부 집안의 장남인 중년의 선비가 우연한 기회에 음란서적을 접하게 되면서 사대부로서의 체통과 근엄함을 벗어던지고 지독하게 음란한 소설을 쓰는 작가로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그린 “음란서생”은 “음란이 시대의 대세요, 널리 인간을 음란케 하라”는 코미디 같은 음란성표어를 홍보물로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기발한 소재와 볼거리, 그리고 웃음 속에 풍자를 싣는 블랙코미디 등은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이 작품은 구성적인 측면에서나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코미디 영화라 할지라도 감독이 표현하려고 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고, 영화의 구성은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짜여 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음란서생”은 코미디에 너무 치중하여 구성과 주제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따라가면서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 현란할 정도로 화려한 조선시대의 볼거리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는 조선시대의 저잣거리, 유기전, 홍등가, 기생방, 의금부, 고문실, 왕의 정원, 정빈의 처소 등인데, 이것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의 풍광들이 이처럼 다양하고 현란하게 펼쳐지는 작품은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란소설 제작과 유통의 본거지가 되는 유기전의 모습, 하녀들의 바쁜 움직임과 함께 보여지는 조선시대의 저잣거리와 홍등가, 잡스러운 소설을 베끼고 있는 유기전 뒷방의 어두운 공간, 엄숙하고 위엄만이 감도는 궁중이 아니라 음란성이 감도는 느낌을 주는 왕의 정원과 정빈의 처소 등의 볼거리는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릿한 쾌감을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음란을 보여주는 볼거리로 등장하는 그림과 소설에 들어가는 삽화, CG로 만들어진 두 주인공의 미니캐릭터 등은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으며, 제작비의 30% 이상을 미술에 쏟아 부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함께 이 영화에서는 음란에 걸맞도록 어두운 밤과 비 내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빛과 어둠이라는 명암의 콘트라스트를 형성하여 비와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음란한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다.


특히 비는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를 이어주는 성적도구로도 충분한 구실을 하는데, 이와 함께 간접조명을 이용해 만들어낸 은밀한 분위기와 느낌은 세상에서 가장 점잖으면서도 가장 지독한 음란에 빠진 주인공의 양면성을 부각시키기에 아주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도덕군자인 유학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그 근엄함을 비웃는 음란함이 판을 치고 있으며, 그것에 중독된 사람이 바로 당시대의 최고 명문집안의 장손이라는 이중성을 부각시킴에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할 정도로 미술과 조명이 잘 조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 코미디 속에 담긴 신랄한 풍자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표면인 유교적 근엄함과 이면인 본능적 음란성을 양면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발상 자체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하면서 풍자를 담을 수 있는 코미디가 등장할 여지는 이미 충분히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 등장하는 코미디는 높은 계급과 낮은 계급의 두 흐름을 통해 각각 다른 웃음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이채롭다. 금부도사 이광헌과 사헌분 장령인 김윤서가 내뱉은 말은 점잖은 것 같은데, 음란하고 웃기는 코미디이며, 음란서 제작업자이면서 유기전 주인인 황가와 음란서 원본을 베끼고 그림을 모사하는 필사장이와 모사장이가 하는 말은 매우 가벼운 느낌을 주면서도 그 속에 뼈가 있는 풍자를 담고 있는 코미디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들의 이러한 대화는 사대부와 평민의 대립되는 신분, 빛과 어둠의 대비 등을 통해 음란성을 강조하는 이 영화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립하던 두 계급을 희화화하여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묘한 힘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절대로 따라하지 마시오 라고 쓸 것이다”고 하는 김윤서의 말이나, “북촌(조선시대 사대부가 모여 사는 제일 근엄하고 부유한 동네)은 우리 책의 제일 고객들인데 그쪽 독자들이 죽이지 말아 달라고 하면 절대로 죽이면 안 된다니까, 절대로”라고 하는 유기전 주인 황가의 말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생활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또한 오직 최고의 작가가 되는 것에 눈이 먼 김윤서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정빈을 이용하여 함정취재라고 할 수 있는 체위시범 정사를 벌이는 것에서는 웃음 속에 날카로운 비수와 같은 풍자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함정취재가 온 나라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작금의 현실까지를 소재로 해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코미디가 단순히 웃음만을 유발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제목과 주제가 일치하지 못한 어그러짐

 

이 영화는 제목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음란을 삶의 신조로 하는 선비의 생활을 그린 것이라고 보아 거의 틀림이 없다. 그리고 조선시대라는 역사적 맥락으로 볼 때 김윤서의 그러한 행위와 생활은 충분히 음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감독이 욕심을 내어 도덕과 음란을 함께 지니고 있는 선비가 한 여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는 주제를 함께 실으려고 한 데에서 발생했다. 필자가 볼 때 이 영화는 제목과 부합하도록 조선시대 선비의 음란만을 대상으로 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선비사회에서는 비겁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집안 어른들 앞에서 자신의 아내까지도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지경이 되었지만 그냥 눌러 참기만 하던 소심하고 기회주의자이던 선비가 시대의 대세라고 하는 음란 앞에 무너지는 그 모양 하나만으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도록 하는데 충분했다.


그렇게 할 때만이 이 영화는 “음란서생”이라는 제목을 제대로 유지하면서 작품성까지 곁들인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후반부에 가서 실음으로서 오히려 삼류코미디영화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한 어그러짐이 바로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까지 강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서 필자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욕심이 언제나 화를 부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하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4. 난잡한 구성으로 인한 주제의 흐트러짐

 

유학에서 말하는 도덕군자가 될 것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생활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여겼던 조선시대가 서서히 변화하는 시기인 조선중기를 무대로 잡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정말 좋은 작품으로 태어날 여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조선중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커다란 사건이 일어날 정도로 사회가 변화를 추구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은 조선조사회를 안으로부터 바꾸어놓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는데, 이후 조선왕조는 사회 전 분야에서 변화의 소용돌이에 몸부림쳐야 했다.


특히 소설의 발달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영웅소설과 함께 음란적인 소설 역시 등장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상황을 소재로 잡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본을 확보한 것이라고 보아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영화는 음란과 진정한 사랑이라는 두 개의 주제와 그 당시 사회상황을 어설프게 담으려고 하다보니까 어느 쪽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엉성한 작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여성의 음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음란소설로 김윤서가 쓴 ‘흑곡비사(黑谷秘事)’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김윤서에게 초점을 맞추었던 데에서 벗어나 생뚱맞게도 진정한 사랑 타령을 하기시작하면서 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는 도덕군자였던 양반사대부 집안의 선비가 음란작가로 되어 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하면서 그 당시의 소설유통구조를 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한층 깊이 있게 다루었더라면 코미디를 통한 신랄한 풍자와 함께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필자의 이런 비판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코미디 영화는 코미디로 보며 되지 왜 거기에 사회성을 담도록 강요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물론 코미디는 코미디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싶은 것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바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가벼운 영화를 너무 무겁게 보았는지 모르지만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소재였는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앙금처럼 남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영화 감상평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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