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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세계/기생이야기

1920년대의 기생전사 화중선

by 竹溪(죽계) 2006.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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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의 여자전사 花中仙


  양반가문 출신이었던 화중선은 현모양처라는 미명아래 여자를 노예화시키는 1920년대 사회제도에 대한 저항과 동시에 하늘이 내려 준 인간본연의 충동인 사람다운 살림을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기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다.


화중선이 자신의 賣笑함은 유산계급들이 저희의 향락적 충동과 소유적 충동의 발사작용에 져서 자진하여 자신의 포로물이 되게 하려 함에서 나온 동기에서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21세기인 지금보아도 실로 놀랍고, 지독히도 선구자적이며, 쇼킹하다.


화중선은 ‘마음’을 파는 신사보다 ‘살’을 파는 기생이 더 사람다운 살림을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글을 「시사평론」 1923년 3월호에 게재함으로써 신여성으로서의 비뚤어진 사회에 대한 저항과  자신의 소신을 발현키 위한 당당한 각오의 출사표를 던지게 된다.


  화중선은 ㅇㅇ 여자 고등학교를 마친 인텔리 여성으로서 열아홉-살 먹던 해 봄부터 대동권번에 입적해 기생이 되었으며 당시는 혼자서 관철동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신여성다운 당당함과 솔직함은 마치 영화 속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여성전사를 보는 것과 같다. 「시사평론」 1923년 3월호에 실린 글의 문맥으로 보면 당시 임화를 비롯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사회주의의 ‘지도’와 ‘학습’을 거친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조선시국사관이라는 글을 썼던 김ㅇㅇ이 기생들을 향하여 매음녀 혹은 매춘부라 하며 사회의 악질적인 요소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화중선이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스스로를 花柳巷의 속인, 소위 타락녀의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이 감히 느낀 바를 말하고자 당당한 정치잡지의 귀한 지면을 더럽히려하는 욕망을 아니꼬운 년의 수작이라 하여 웃어버리고 그 날로 불쏘시개로나 쓰지 말고 지면의 한 귀퉁이에 실어달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자신이 결코 타락하여 賣笑婦가 된 것이 아니라 각오한 바가 있어서 그리한 것이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제각기 제 지체, 제 문벌을 자랑하지 않는 이가  없으므로 자신의 근본에 대한 것을 먼저 언급함으로써 기선을 제압하는 솜씨는 과히 명문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은 명문거족의 무남독녀 외딸로 태어나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되었지만 자신의 맏 종형은 ㅇㅇ 은행 이사로 몇 만을 가진 큰 실업가이고, 둘째 종형은 ㅇㅇㅇ 사무관이며 외숙은 ㅇㅇ도 참여관으로 현재 도지사로 승차가 되었다고 하고,


그 다음 일가 양반들 중에 재종, 삼종들 중에는 판검사, 군수, 은행 취체역들이 그득하여 ‘왜목낫’으로 수수목 따듯이 그들의 목을 따더라도 한참은 따야 할 것이라며 문벌이나 가문 따위는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고 일갈하면서, 자신이 만일 당시의 인습의 포로가 되고, 관례의 표본노릇을 하여 시집을 갔더라면 귀부인의 탈을 쓴 산 인형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노예노릇을 여자의 천직이라고 奴道隸德(노예의 도덕)의 講話뿐이었으며, 修身시간에 소위 삼종지도를 지켜야한다고 현모양처의 부덕을 게거품을 흘리며 강연하는 교장선생을 놈팽이 영감이라고 하며 이십년 동안 선생노릇을 하였다면 천명이라는 여성을 교육기계의 희생자가 되게 만든 장본인으로 비판하고 나선다.


심지어 육군대장의 가슴에서 번쩍거리는 금치훈장이 몇 만의 무고한 사람을 죽인 血情表라고도 하고, 교장선생이 작년에 받은 靑藍章이 내 동무 천명을 죽인 대상으로 받은 혈정표라고 부르짖는다. 그녀가 얼마나 당대의 교육에 대해 비판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혼을 택하지 않고 기생의 길을 택한 자신의 생활이 오히려 신성하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러셀의 이론에서 찼고 있다. 모든 사람의 충동과 욕망은 항상 창조적인 것과 소유적인 것이 있는데, 어떤 충동 없는 것을 새로 찾아내는 방면으로 발현하는 충동을 일러 창조적 충동이라 하나니 저 예술가의 충동 따위가 그 대표라 할 것이고, 어떤 충동, 그 있는 것을 지키려고 더 얻으려고 하는 방면으로만 발현하는 충동을 소유적 충동이라 이르나니 사유욕의 충동이 그것이다.


이 창조적 충동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 소유적 충동이 소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라야 진선, 진미의 살림이고 이런 살림을 살림하도록 된 사회제도라야 이상적 제도라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 현 제도가 어떠하냐? 고찰하건대 온갖 사회는 죄다 특수계급의 지배아래서 자연치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구속일 뿐이외다. 이렇듯이 자유가 없으니 따라서 책임이 없고, 책임이 없으니 따라서 권리가 빈약하지 아니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천부한 자유, 완전한 인권을 찾아야할 전적 살림, 곧 본연의 충동인 살림을 살림하게 되겠기 때문에 현 사회의 온갖 제약을 부인하고 혁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오이까 .......

 

암만해도 현대의 살림살이 형식에 많아야할 창조 향락은 적고, 적어야 할 소유적 충동이 주되는 이 제도 아래서는 황금만능주의에 형이상의 모든 예술, 문학, 종교까지 정복되어, 학자나 목사나 국무경이나 선생님이나 나나 모두 화폐가치의 계량의 대조물이 되어, 그의 이마에 얼마간다는 정찰의 각인이 찍혀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賣笑함은 아니 賣肉함은, 남성들과 같이 완력이 없는 약질로, 저 유산계급들이 저희의 향락적 충동과 소유적 충동을 만족케하자고 우리 여성을 자동차나 술이나 안주나 집과 같이 취급하는 그 아니꼬운 수작을 받기 싫은 나로서 차라리 역습적 행위로 소유적 충동과 추악한 향락적 만족에 광취한 그 사람들, 그 사회들로 하여금 저희들 소유적 충동의, 또 향락적 충동의 발사작용에 져서 절로 견디지 못하여 나의 ‘신코’에 입을 맞추고 나의 ‘발바닥’을 핥아가면서 자진하여 나와 나의 포로물이 되게 하여가지고 나의 성적 충동을 발현하는 어떤 의의가 있는 살림살이를 하랴 함에서 나온 동기였나이다.”


  위의 주장대로 화중선은 대동권번의 기생이 되어 여성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들을 포로로 만들려는 복수전사의 일원이 되었으며 자신이 의도한대로 실행하였다.


따라서 個性을 전적으로 살리는 점으로 보아 육을 팔더라도 심을 파는 신사보다 매음자로서의 자신의 삶이 훨씬 사람다운 살림을 산다고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명문거족의 딸로서, 인텔리 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서 과감하게 인습의 벽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기생이라는 직업을 당당하게 선택하여 자신의 생각을 삶의 방식으로서 실천하였던 화중선에 대하여 자세한 일몰연대를 알 수 없는 점이 실로 안타깝다.


어느 곳에서도 그녀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으며, 다만 그녀가 일갈하여 놓은 「시사평론」의 글만이 그녀가 이 세상을 살다 간 유일한 자취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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