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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세계/기생이야기

일제시대 명기 영화사

by 竹溪(죽계) 2006.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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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妓榮華史(漢城券番)

漢陽城中여난歌姬, 舞姬는그누구누구던고, 이땅 情調는 그네의 白魚가튼 손헤서, 흘너저나오건만, 타는이 듣는이, 그 뜻을 알손가


한성권번(漢城券番)이 한양성중에 생겨난지도 三十年이란 세월이 흘너갓다.

한양성중(漢陽城中)이야 무슨일이 일어낫건 어떤 변(變)이 잇섯거나, 爾來 三十餘年間 이러한 싯그러운 세상사는 모르는드시 꽃같은 妓生만을 알뜰하게 길너내인 한성권번이다.


꽃피고 새지저귀는 봄날이나 달밝고 바람소슬한 가을밤이면 유두분면(油頭紛面)에 록의홍상(綠衣紅裳)으로 화용월태(花容月態)에 애교를 흘니며 꾀꼴새노래가락이 매듸매듸 꺾어넘어갈때면 허다한 長安의 풍유남아의 간장을 녹아내든한다하는 名妓名唱치고 어느누가 이 漢城券番의 무대를 밟지않은이 잇스랴!


한성권번을 무대삼고 「가사」「시조」를 잘부르며 가야금 거문고 잘두뙤이기로 장안에 소문놉허 더할나위업는 榮華를 한몸에 누리고 잇든이 그數를 일일히다 헤일수업시 많엇다.

김×선이 그러햇고 박금○이 그러햇다.

 

이러케 한때에 서울장안의 수만흔호걸남아, 돈잘쓰는 풍유객들의 이손에서 저손위로 무럽위에안기우고 품안에 꼭겨안겨서, 밤가는줄도 몰으는채 춤추고 노래부르든 名妓名唱들-이들은 그뒤에 엇지되엿노?


엇던妓生 八字조와 고대광실 놉흔집에 돈많고 인물잘난 정든남편 모서놋코 밤낮으로 우슴석긴달콤한 가정을 이룬이 하나요 둘이 아니며,

엇던妓生 八字구저 情드리고 못살게되여 님의손목 마주잡고 漢江水깊은물에풍덩실러져 저世上을 차저간이 또한업지안흐리라.


인제 이들의 일흠을 일일히 적어보려하엿스나 아들딸 두둑히 나허놋코 얌전한 가정살님을 이룬이들에게 전날의 그시절을 되푸리식힘은 그리조흔일은아닐것이며 또한 애처롭게 한만흔눈물을 뿌려가며 娑婆世界를 등지고허구푸게사라진 이들에겐 그죽어간靈魂마저 가슴속을 저리게 할까두려워, 흘너가는 붓대를 억지로 돌니려한다.


한성권번이 잇서온지 三十年동안, 妓生으로 半島江山에 나왓다 사라진이 그數를 헤아리면 무릇 百도넘고 千도넘을것이다.

지금에서부터 三十年前 서울西大門박게 아담스럽게 꾸며노흔 웃뜨름한 한채집-이집커다란소슬대문엽에는 「廣橋組合」이란 커다란看板이 부터잇다가 이廣橋組合이 오늘의 漢城券番이다.


그러면 이 漢城券番은 엇던사람 손으로 생겨저서 오늘에이르럿노? 오로지 安春敏氏嚴淳模氏等數三人의 힘으로 되여젓다고한다. 安春敏氏로말하면 現在漢城券番의 取締役으로잇는분이다. 이들멧분의힘으로 合資會社의 形式으로 「廣橋組合」을 만들어노코 그當時 소리와춤으로 有名한柳開東, 朱榮和, 張桂春, 金用泰等諸氏가 선생으로 잇스면서 재조잇고 총명하고 얼골잘난 게집애들을 모와놋코 밤낮매질하고우서가며 「妓生道」를 가르키기에 餘念이업섯다.


그동안 세월은 덧업시흘너 三十有年, 趙牧丹, 白牧丹갓흔 名妓들은 한번 妓籍에서 몸을 돌엿다가도 가정이 구찬코 살님이 까다라웟든지, 또는 말못할 야릇한사정이 잇섯슴인지는 몰나도不過멧해만에 다시금 妓籍에나타나서 四十의고개에 이르러서도 長安의人氣를일치안코 한달잡고도 四五百時間을 이리저리 늙은어룬, 젊은사나히들앞으로 불니워단이고잇스니 「萬年名妓」로 불니워지는 것도당연한 일일것이다.

 

趙牧丹과白牧丹, 모다 漢陽의雨露를마서가며 北岳山밋헤서 곱다라케 자라난 名妓들이다.

趙牧丹의 「京城雜歌」 白牧丹단의 「西道리」하면 서울안에서 돈양돈푼 쓸줄아는사람치고 몰으는이 거이업슬것이다. 趙牧丹은 四十二歲요 白牧丹은 三十九歲이다. 이두名妓모다 한때 에는 얼골잘생기고 노래잘부르기로 젊은이들의 가슴을조이게한때가잇섯스나 이제막을수업는 한가닥 두가닥 줄음살이 어느겨를에 이들의 얼골우에 線을그어가고잇스니, 꽃갓흔청춘이 늙어감을 한숨지워무엇하랴! 지금엔 다만 변할줄모르는靑山流水에도 옥을 구을니는듯한 그고흔노래가락에다 한때의 그시절을 하소하는듯!


金玉葉, 이름조흔 玉葉이요 얼골잘난 玉葉이다. 美人의고을 平壤에서 자라난 金玉葉은 어려서 平壤妓生學校를단엿섯다. 淸流壁에철축꽃피고 浮壁樓에落葉질때 날신한허리에 곱게단장하고 大同江邊을 오락가락할때이면 浿城의젋은이들 모다그의 뒤를따럿든것이다. 이러한金玉葉이 平壤에서자최를 감최이고 봄바람에불여서울 長安에 날너들자 西道소리잘하기로 金玉葉의일흠이 단번에 퍼지고말엇다. 올에그의나이 三十, 서울에 올너와妓籍에몸을둔지 엇그제갓흔일이엿만 벌서八年째되여간다. 「玉葉의愁心歌라면 오늘날 장안의 풍유객들의 귀를기우리게하는 名唱이다.


李眞鳳, 그의나이三十八에妓籍에다시금 나선지가 十年이갓가웁다. 玉葉과갓치 平壤胎生으로 西道소리잘하기로는 玉葉과갓치친다. 玉葉이 가는宴會에 眞鳳이따르고 眞鳳이가는座席이면 으레히 玉葉이나타난다. 漢城券番에서 조선소리로 한달잡고 그중만히 불니우는妓生이 누구냐하면 玉葉이아니면 眞鳳이다. 서로다정스럽게 압스고뒷스고하는 굉장한人氣를 가지고잇다. 그러나 그도 四十이압헤 머지안헛스니 앗가운 노래가락이 앗가웁다.


金錦玉, 全羅道求禮出生이다. 서울장안에서 「南道소리잘하고 「가야금」잘 띄우기로는 어느妓生이냐」 하면 으히첫손고락이 金錦玉을 꼽게쯤되엿다.

아직妓籍에 나선지 날이쩔너 三四年박게안되지만 그의人氣는 넘우나 놉어젓다. 가야금에맛춰 노래가락할때이면그의빼난재조에 탄복하지안는이 업슬것이다. 돈잘쓰는 全羅道부자들이 서울에올너오면 으레히 錦玉의얼골을 대한다는것이니 그의生活이호강스러울것도 당연한일일것이다.

 

우에서는 대개 三四十의늙은妓生으로모다가 조선소리로 當代에 그일흠을떨치는이 들만을말하여 보앗지마는, 오늘의 妓生은 땐스잘하고 外地손님을 잘대할줄아는現代的인 妓生이아니면 안된다. 그런妓生으로 第一먼저


李春紅을말하게된다. 春紅은 올에나이 二十五歲의 한창시절이다. 「妓生의고을」 平壤에서 어려서부터 妓生學校를 단엿섯다. 春紅은妓生學校를단일때부터 그타고난美貌와 明朗한 말소리는 수만흔젊은사나히들의 가슴을물녕거리게 하엿든것이다. 지금으로부터 한四五年前에妓生學校를나오는길로 서울로올너왓엇다. 노래잘부르고 말잘하기에 소문이놉흔이다. 더구나 그싱글싱글하는 微笑띄인얼골은 美人이라는소리를 늘듯고잇스니 「錦上添花」는 이를두고 한말인가한다. 지금서울 장안에서 어느妓生이 그중만히불이우느냐하면 첫재 漢城券番의 李春紅을 말하게된다. 人物이絶色이요 말잘하고 노래잘부를뿐만아니라 땐스까지잘하는 李春紅은 廣橋다리와 다방골이분주하게 人力車꾼은 그를실코 요란스럽게 달니는 것이다. 한달잡고 六七百時間은 늘불니워단인다고하니 春紅의人氣도 무던하다.


金玉葉, 李春紅을 말하게되니 金玉眞을또한 말치안을수업다. 춤과노래를가르키는 張桂春氏와 땐스선생 金用泰氏의 귀여움을밧는妓生도 玉眞이요 만코만흔 妓生들가운데서 상양스럽고 마음세조흔妓生도 玉眞이다. 더구나 국어를잘하고 明朗스러운 우슴쎄를가진 玉眞이는外地에서 들어오는 손님이면 으레히 한성권번의 金玉眞을 부르게쯤되엿다.


아직 활짝피지못한 한떨기 꽃송이 방긋이벌어지는 탐스러운 妖艶한姿態! 그향그러운 香氣를따라 날너드는蜂蝶의떼. 玉眞의선잠을 고달프게흔드러 노흘것이다. 今年에 二十二, 서울이 고향이다. 妓生으로나슨때는 十六歲되든해 일흔봄 不過五六年이되건마는 玉眞이는 妓生으로서의 배울것을 다배웟다.


柳錦桃, 어쩌면 이러케도 꼭갓흘가! 李春紅과 나이도二十五 똑갓고 平壤에서 妓生學校도 한날들어가 한날에다정스럽게 손목잡고나왓섯다. 춤잘추고 노래잘부르는 柳錦桃는얼골도 美人이요 거동좃코 모양조흐니, 當代의名妓로서 모든점을 가추웟다. 그어글어글한 얼골에 시언스러운 마음세는 長安의豪傑男兒들이 무던히 가슴을 조이는것도 그럼즉한일이다.

李賢貞, 忠淸道出生으로 나이가스물일곱, 妓生으로나오기는 昭和六年이다. 노래잘부르고 땐스잘하기로 그일흠이놉아젓다.

 

具槿花, 일흠도槿花요 생기기도槿花갓치高潔하고 아릿답다. 그가 자라난 고향조차 깨끗하고아름다운곳 水原이다. 일즉이는얌전하고 착실한 女學生으로 집안에선 따뜻한사랑과 선생에게귀여움을밧든槿花도 여러가지 까다로운 事情으로해서 바로작년여름 비로소 妓籍에발을 듸려노케되엿다. 처음에는 노래배우고 춤배우기에 매도맛고 욕도어더먹엇스나 원체 총명한 槿花는 한달이되고 달이됨을 다라 제법앳틔를 활짝뻣고 지금에와서는 노래잘부르고 춤잘추는 一流名妓로 그일흠이 長安의젊은 사나히들의 가슴속에 깁히깁히 백혀저잇다.


이박게도 一流名妓로치는 한다하는名妓名唱을 모조리 헤이자면 한이업다. 지금에 漢城券番에는 二百五十名의 妓生들이 아츰이면 十一時부터 저녁네時까지 한데모와 춤을배우고 노래를 배우며 가야금뙤우기에 요란스러우니, 또한 이들가운데서는 어떤일흠가진 名妓名唱이 뛰여나올냐는가.

  

 (삼천리 8권 8호)



名妓榮華史 朝鮮券番

浪浪公子


서울장안에 긔생권번(妓生券番)이 맻이든가?

조선권번(朝鮮券番)이 있고

한양권번(漢陽券番)이 있고

종로권번(鍾路券番)이 있다.

이세개의 긔생권번에는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한 긔생들이 있는가?


한권번에 근 五百명, 세권번이면 千五百名의 긔생들이있다.

긔생권번이란 한마듸로 말한다면 「긔생」을 맨드러내는 긔생학교이다. 이들권번에서는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양금이면 양금, 모두가제각 기선생이 앉어있어 밤과낮을 가리지않고 우스며 욕해가면서 긔생들을 긔르는데가 여기로다.


그러면 조선에 긔생이 언제부터 있어왔든고?하면 그야 역사가들의 알배로서 아마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시대부터 있어왔다기도하고 또 엇던사람들은 고려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긔생이있었다고하나 이런것은 우리들의 알배가 아니라, 다만 조선에은 자고(自古)로 긔생이 하두 유명하여왓든것만은 숨길수없는 사실이요, 누구나 아는 일이다.

궁안에 무슨 연회(宴會)가 있을 때도 긔생. 고관대작이나 돈푼있는 풍유객들에게도 거저 긔생


이러한 긔생들도 그옛날엔 다만 「긔생서방」이 있어 깃것해야 한집에 四五名이아니면 五六名이모이면 대작이고 돈푼이나 발겨먹자는 야비한수단을 모르는 깨끗한 「긔생」도의 품성을 길느기에만 힘을쓰는 한개의 예술가들이엿다.


이자리에서는 이세권번중에서 가장력사가오래이고 유명한 긔생을하두많이 이강산(江山)에 내보내인 「조선권번」을 먼저 차저 한때에 그일홈이 휘날니든 유명한 긔생들의영화사(榮華史)를 다시금 한번 더듬어볼가한다.


그러면 「조선권번」의 연혁(沿革)은 엇더한길을 밟어왓나함부터간단히 적어나 볼가

개명이후 모든 제도가 일신하고 새로워지는통에 이 긔생에대한 제도도 새로생겨낫든것이다.

그전에 긔생들은 긔생서방에게매달여서 일생을 긔생으로 그서방에게 모든것을 다-바처오든 지난날의 서방제도를 없이하고 새로히긔생권번을 만들엇든것이니 이것이明治四十三年, 河奎一氏와 그박게 멧멧분이 널니 전선으로 긔생을 모집하여 소위 긔생조합을 맨들엇든 것이다. 이때에 모여온 긔생들이란 대부분이 평양긔생들이엿다. 이것이 大正八年에와서 비로서 「大正券番」이란 일홈으로 오늘의 조선권번의전신(前身)이 되엿든것이다. 明治四十三年에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조선권번」은 오로기 河奎一氏의 공로이요 꾸준한 지도가 잇섯다한다. 또한 이권번의 초창긔로 오늘날까지 河奎一氏의 손밑에서자라난 긔생이 數三千名을 헤아린다고하니 실로 조선긔생권번사의 첫페-지를 일우는 河奎一氏의 존재는 뚜렷한바가있다할것이다. 지금에 河奎一氏는 「조선권번」을움즉이는한 주인으로 되엿다.

조선의 정악(正樂)은 물론이지만 춤잘추고 노래잘부르는 하규일씨의손아래에서 하나에서 수천을 헤아리는 수많은 妓生들가운데서도 얼골잘나고 재조가 용하고 춤 잘추고 노래잘불너서 장안의 호걸과 풍유객들이 너도나도하며 단춤을 삼키며 연연사모하든 긔생들이 하나요 단둘이아니려니 인제 이들의 지난날의 성망(聲望)과 그들의자취도 알어나보련다.


元花紅이가 그러하고 吳小紅이또한 그러하다.

그 박게는 金珊瑚珠 또한 빼일수없는 한다하는 名妓들이엿다. 이들은 모다 河奎一氏의 손아래에서노래를 배우고 춤을 배운 유명한긔생들이엿다.

고향은 본래가 모다 평양이엿스나 서울에올너와 한동안수많은 남자의 흠모와 사랑을 무던히 바더오든 긔생들이다. 그중에도 더구나 金珊瑚珠같은 긔생은 「一聞十知」하는 가진재조를 구비한데다가 평양에서부터 일훔있는 어엽븐얼골을가진 긔생이다. 「패성」의 풍유객도풍유객이려니와 그당시 서울장안의긔생방을 드나드든 고관대작의 아들까지 사랑을 아끼지안튼 일대명기들이엿다. 그때가 바로大正元年경이여서 아직 예적도 업시 지나든때의일이다. 지금의 이들은 모다 어느 돈많은 남자들을어더가서 곱다라케 가정을 이루고 사라가는지! 그러치못하면 일즉이 세상을 떠나갓는지? 그들의소식은 도모지 알수가없다.

이들이 한번 긔생의자리를 물너간뒤에는 玄梅紅과金月仙이 또한당대의 한다하는 일홈을 이江山에날니든 名妓들이다. 玄梅紅의 本名은 達順이요 金月仙의本名은 卜順이라 둘이 모다 지금에는 四十을 갓가히바라다보는 이들로서 梅紅이는열넷에 月仙이는 열다섯에 똑같이 긔생이되여서 河先生의 귀여움을바더가면서 밤낮을 가리지않고 춤추고 노래부르게되엿스니 둘이 모다 京城雜歌와 西道雜歌를 잘하는 名唱들이엿다. 더구나 梅紅은 金相淳氏에게서 洋琴까지 배워서 양금잘띄우기로도 당대에 그일홈이 자자하엿든 긔생이다. 모다 十五年동안이나 긔생으로잇스면서 十餘年前까지도 일홈잇는 名妓로치든 긔생들이다. 지금에는 모다 현모양처가되여 돈잇는남자의 가정으로들어갓다한다


그런데 이들과 거이갓치 나와서 멧해앞서 긔적에서 물러간이로는 金明玉이가있다. 明玉이 역시 지금은 五十의고개를 바라게되는몸이나 한二十年전까지는 춤잘추고노래잘부르기로 (더욱이 西道雜歌)는 빼여노흘수없는 名妓의 하나이엿다. 지금엔 이긔생도 전라도 엇든부호와짝을지어 평온한가정을 이루워여생을 보낸다고한다. 그담에 나타난 名妓가운데는 朱山月이가잇다 本名은 朱○京이다. 일즉이 「천○교의×대교주 손×희」의 뜨거운 총애를 바더오든朱山月이는 어려서 十四歲에 긔생으로나섯든것이다. 


얼골은 비록 잘나지못한 편이나 노래잘부르고 춤잘추고 더구나 마음세가 곱고 태도가 아련해서 장안의수많은남자들이 그의뒤를 딸앗다

손○희씨가 세상을 떠날때에는비록 긔생의몸으로있으나마 침식을이저가면서 극진한간호를 하엿든것이며 그가 도라가매뜨거운 피눈물을 그의 무덤우에 몃번이고 뿌렷다고한다. 그가 긔적을떠나 천○교의 돈으로 동경에건너가 녀자 영어숙(英語塾)학교에까지 졸업하고 돌아와오늘날까지 내내 독신으로 지내면서 지금엔 천○교의 녀자부의 총무로써 五十의고개가 넘도록 피로를모르고 부즈런히 일을하여가고잇다.


그가 간후에는 또한.

李蘭香과徐刪瑚珠를 손꼽을것이다.

李蘭香의 본일홈은 仙?요 徐珊瑚珠의 본일홈은 順鳳이다. 둘이다 大正八年부터 긔생으로 나섯스니蘭香이 나이十九요 珊瑚珠는十五엿다

평양이 역시 이들의 고향이엿고 똑같이 춤잘추고 노래잘하고 양금잘띄우기로 그당시 장안의 남자들은 어누누구 모르는이가 업섯다.


더욱이 李蘭香은 얼골잘나고 거동곱고 말소리가 맑을뿐더러 한아물으면 열을아는 재조 떵어리엿스니 그것은 란향의 맑은두눈동자와 넓죽한이마에 그재조가 들엇다고나할것이다. 글잘하는 사람들도 「란향」이요 돈잘쓰는 궐자들도 「란향」이엿다. 그러드니 란향이나 산호주나 긔적에 몸을 둔지 十五年째되는昭和八年 봄, 꽃피고 새지저귀든때 이들의 나히도모다 三十年의 고개를 넘게되니 이들에게는 머지않어 닥처올 얼골의 주름살을 막을길 바이없음을 늣겻든지 란향은 령남의 어떤 부호의사랑과짝을지어 화류계에서 사라저버렷스니 지금에는 아들딸많이 낳코 무심한 세월만을손꼽고잇스리라.


그러면 란향이와 산호주가 간뒤의 조선권번에는 엇든 名妓가 오늘날까지 잇서오는가?

白雲仙이가 그일홈이요, 金水晶이 또한 그러하다.

白雲仙의 본일홈은 順鄕이요 明治三十三年三月十七日이 그에 生日이다. 인제 나이는 먹을만치 먹어 大正八年에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니 실로 긔적에 몸을 던진지 二十年을 헤아리게되엿다. 긔생으로 더구나 한다하는名妓로 이러틋이 오랜 동안을 계속해서오는이는 오직 白雲仙이하나뿐일것이요 三十의고개를 넘으나 그노래 그춤은 조금도 변할줄몰나 그에人氣는 도모지 사라질쭐몰으니 이를가르처 萬年名妓 라고나 할것이다. 모도가 河奎一氏의 손에 길이우면서 귀여움을 많히받은 名妓가 그누구랴마는 유독히 「백운선」은 그중에서도 가장 귀여움을 받어오고 앳겨오는 긔생이다.


金水晶은 아직 활작 피지못한한떨기백장미화, 그에나이 二十四다. 일즉이는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엿고 졸업하든 즉시 열다섯에 긔적에 몸을두어 오늘에 이르럿다 경긔잡가 서도잡가가기맥히지마는 양금도 신간이녹고 춤도 탄복할만하니 그에재조가 어느名妓에 뒤지지않는다. 요사히장안에서 白雲仙이를아는자 또한 金水晶을 알게되엿다. 한가지 풍편에들이는바는 水晶은오라지않어 긔적에서 정든 남자를 따라 가정으로 들어간다니 水晶이 간뒤에는 과연 뉘가 또한나슬것인가.


「조선권번」이 잇서온지 이제二十五여년 그동안 얼골잘난 名妓 이박게도 많었섰고 소리잘하고 춤잘추든긔생 또한 허다하며 엇던긔생은 비관하고 목슴을 끊은이도잇고 엇든기생, 해외의 손님과정을듸려머나먼 외지로 가서 소식조차없는이가 하두많으니 이것을 모조리 적을수도 없는일이요 그것을 다-추려낼 시간의 여유를 못가젓슴을 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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