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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세계/기생이야기

직업순례기-기생-

by 竹溪(죽계) 2006.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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妓生 -職業의 巡禮

一記者


今回에 나오는 職業이야말로 몹시 냄새나는 職業이다. 점잖은 讀者는 반드시 코를 막고 찡그릴 것이다. 그러나 눈만은 웃으면서 맞이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하늘 높고 바람 맑은 이 시절에 냄새나는 職業을 들추어 점잖은 讀者의 코를 버리는 것도 기자로써는 하나의 흥이 아닐 수 없다.

 

妓生! 이것도 職業이냐? 현명한 우리 讀者 가운데 惑이나 이렇게 무릇 어리석은 양반이 계실지 몰라서 기자는 그것이 職業으로써 구비한 두아가지 조건을 들 필요가 있다.

 

妓生이 경성 같은 조회지에서는 매월 五圓이라는 다액의 영업세를 府金庫에 납입하는 점으로 보아 관허의 공연한 職業이요 四五乃至十餘의 가족을 거느리고 물질적으로 중류 이상의 생활을 영위하는 점에 있어서 상승의 職業이라 할 것이다.

 

대체 이 妓生이라는 職業이 어느 때부터 朝鮮에 있기 시작하였는가? 이제 이것을 상세히 알 수가 없으나 어쨌든 이조 전 고려조부터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니 적어도 반천년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을 역사적계통적으로 고창연구할 자료도 가지지 못하였거니와 또 순례의 글을 거기까지 쓸 필요도 없을 듯 하다. 그저 妓生에 관하여 본대로 들은대로 자유로운 붓끝을 놀려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자면 옛 이야기도 나오고 시속 이야기도 나오고 참말도 나오고 거짓말도 나오고 辱도 나오고 칭찬도 나올 것이다. 선찬후욕으로 우선 妓生예찬을 하여보자

 

潯陽江頭에서 琵琶를 탐으로써 白居易에게 「琵琶行」이라는 천추의 명작을 낳게 한 강남의 妓生 같은 풍류의 매력을 가진 妓生이나 薛陶같이 作詩에 능한 妓生이 우리나라에 있었는지는 내가 모르거니와

 

梅花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피던 가지에 피염즉도 하다만은

春雪이 亂紛紛하니 필동말동하여라

이런 시를 읊은 시인이 우리 妓生 중에 있었음을 나는 안다.

 

魏仲先의 시에 쌓인 티끌을 紅袖로 털어주든 妓生 같은 恰似한 妓生이 우리 朝鮮에 있었는지 여부는 모르지만, 왜장 청정의 목을 안고 진주남강에 떨어진 논개 같은 충절의 여장부로 만대의 史葉을 곱게 장식하는 妓生이 우리나라에 있었음을 자랑하고 싶다.

 

晋州라도 矗石樓 晋州라도 矗石樓 논개라는 妓生은 왜장청정 목을 안고 진주남강에 떨어져····

취한의 콧노래라도 이런 노래를 들을 때에 우리들은 반드시 옷깃을 여미고 무엇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아! 진주남강의 물은 마를 때가 있을 지라도 푸른 물결 위에 이슬같이 사라진 한 떨기 꽃향기는 사라질 때가 없을 것이다.

 

필자보다도 더 妓生을 찬미한 문인이 있으니 그것은 무명의 위대한 소설가인 「獄中花」(春香傳) 작자이다. 그는 春香이라는 妓生을 통하여 朝鮮여성의 정조관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러나 필자는 현재 妓生의 완전한 상품화 인육화 퇴폐타락한 참상앞에 시선을 돌릴 때, 耳朶를 기울일 때, 신화 같은 옛 이야기를 들어 妓生을 찬미하는 어리석음을 스스로 깨다를 때 붓끝이 어지럽다. 요즘의 妓生을 보고서야 반언촌설의 참사가 나올가보냐? 그저 辱이다 辱!

 

고서를 보면 營妓는 군사의 無妻子를 위하여 생긴 것이라고 하니까 妓生이란 선천적妓生동물인 모양이다. 그러나 무처군사를 위로하는 妓生이라면 妓生의 존재이유를 그나마 시인하겠지만은 본처가 있고 첩이 있는 퇴폐한 小부르조아지의 향락적내지 수욕적 완구로써 밖에 이류를 찾을 수 없는 소위 금일의 妓生의 존재는 新町에 진열한 성욕도구보다는 그 유산내지유한계급을 상대로 하는 점에서 그급이라 할는지는 모르나 그 사회적 존재이류로는 전자보다 훨씬 薄弱하다.

 

妓生의 무리가 일조에 그 모습을 이 사회에서 감춘다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毫髮의 痛痒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없어서 무방할 점에 있서는 페스트 균을 전한다는 쥐와도 비슷하다. 그렇다 쥐와 妓生이 아울러 이 세상에서 없어지기로서니 이 세상으로 하여금 무슨 缺陷을 느끼게 할 것이냐 말이다.

 

필자는 이렇게 그 존재를 무시하였으나 그러나 금일 우리 사회, 더욱이 경성 같은 도회에 있어서 그 존재야말로 훌륭하다. 소위 券番(그전에는 조합이라고 하였으나 밀려오는 倭風潮에 이렇게 개명되었다. 고르는 것이 없이 떠드는 필자로서도 이것만은 모른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는 것이 현대인의 지혜이다.

 

기생의 승무

 

나도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하고 券番 券番 하고 부를 뿐이다. 자! 어느 식산은행에 땅을 많이 잡혀서 妓生외도를 많이 한 외입장이가 있거든 券番의 의의와 유래 혹은 그 아는 바를 설명하라)이라는 경성에만도 四個 陣營을 토앟여 오백여명의 낭자군이 있다고 하니 전朝鮮을 통하여 보면 일본의 육군사단 만큼의 진영의 수가 된듯하고 그 사졸의 수도 그만큼 될듯도 하다.

 

대체 妓生이란 무엇에 쓰는 것이냐? 또 한번 물어보자. 그 쓸모란 자못 다종다양의 굉장한 것이다. 紳士의 會合에, 浮浪者遊蕩에, 코큰 양반 接待에, 日人 아첨에, 大官招待에, 농사지어서 많은 이익을 냈다고 술을 먹는 자리에, 농사지어서 망했다고 해서 화가 나서 술 먹는 자리에, 야구단이니 축구단이니 환영석상에, 무슨 사회창립회니 중역회니 심지어 洋襪織工慰安會에 까지도 妓生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라 정치니 사상이니 하는 비밀결사를 조직하는 회합에까지도 妓生 비릿내가 가미를 하여야 되는 판이 아니냐!

 

보아라 밤이나 낮이나 종로 네거리를 중심으로 하여 거미줄 늘어놓듯 하는 妓生의 인력거 모양을········ 따라서 그들 낭자군의 收入은 黃羅紗軍服에 보리밥 얻어먹고 하루에 朝日(담배 이름) 한 갑 얻어 피우는 일본군인의 그것은 말도 할 것이 없거니와 딴 수단 없이 月俸만 바라고 앉아있는 회사중역이나 고등관이 신을 벗고 따라가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들의 收入을 조사해보자. 그들의 收入이란 그 항목에 있어서 자못 복잡하다. 그 표면에 나탄나는 것으로만 보면 노름 나가는 시간대라는 것이니 경성이 한 시간 평균 一圓 三十錢 기타 이류도회, 삼류도회 지방에서는 一圓 혹은 그 이하도 잇는 모양이다.

 

우선 경성을 표준으로 하여 그들의 收入을 보면 일류 妓生이면 병이나 특별한 장애가 없는 한도에서 매일 평균 10시간 이상 내지 15·6시간을 불려 다닌다고 하니 券番과 요정에 그 收入의 2割을 공제하고 官納五圓을 낸 뒤에도 매달 삼백원 이상의 收入이 있을 것이요,

 

2類妓生이면 7·8시간 내지 10여시간을, 3類妓生으로 내려간다 할지라도 100원정도의 收入을 걱정 없이 올린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소위 건달妓生이니 券番에 등록만 하여 놓고 한달 내내 요정출입 세 번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보고 밤낮 극장이나 구경판으로 다니거나, 아니면 여관순례나 하는 4류妓生들이다. 그러니 어떤 妓生의 말을 들으면 그들에게도 경멸하시 못할 收入이 있다고 하였다.

 

 잘 불려다니는 妓生이 틈이 없어서 못하는 別動收入 혹은 機密費는 그들이 독점하는 상태에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듯한 수작이라 들어두기로 한다.

 

 

妓生의 收入에 들어가는 것으로는 적어도 세 가지 정도의 항목을 들 수 있다. 첫째, 시간대, 둘째, 비밀收入, 셋째, 살림 들어가는 것이 그것이다. 첫째와 둘째는 이미 앞에서 말한 바이지만 소위 살림 들어앉는다는 것은 무더기 收入으로 고관중역의 퇴직수당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것은 妓生의 중요한 收入으로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收入이다.  그들의 결산을 좌우하는 收入은 아무리 못한 妓生이라도 1회에 몸값이라는 名義 아래 千圓 정도의 돈을 받고 집이라든지 세간라든지 하는 것들을 벌여놓는 것이 몸값보다는 훨씬 더 나가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期限은 長短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점이 것이니, 한달이 될지 두달이 될지 모른다. 혹은 마음 무던한 妓生이거나 妓生의 부모가 착하면 반년 혹은 일년을 살고 나오는 수도 있고, 예외로 다시 券番登錄을 앉히게 된다면 그는 육군대장이 받는 월급 정도가 되는 일생의 봉븝을 받아서 앉는 것이니까 그 收入에 있어서는 비관할 바가 없을 것이다.

 

 이 밖에 妓生의 雜收入으로 年末에 외입장이로부터 들어오는 歲饌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년말상여금과도 방불한 것이다. 일개 여자의 收入이 이만하다보니 이해에 눈이 밝은 평양마누라들이 이웃집 여자가 외모가 바르게 생긴 계집애를 나아서 업고 나온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면서 “에그 임자는 그것만 바로 키웠으면 衣食걱정은 멀리 가겠구만”하면서 부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없는 말이다. 하하!

 

대체 이 職業은 어떻게 구하는 것인가? 어떠한 자격을 가져야하는가? 사회는 진보된다. 문화는 향상된다. 인구는 증식된다. 따라서 생존은 경쟁이다. 그 결과로는 求職難 就職難으로 낳는다.

 

취직난이 금일같이 고조되는 때에 妓生만은 지나간 옛날과 정반대이다. 옛날에는 妓生행세를 하려면 音律은 물론 심지어 書畵까지라도 흉내를 내어야 비로소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자격은 아무런 표준도 없다. 남자나 ‘고녀’만 안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시집살이를 하기 싫어도 妓生으로 나오고, 학교공부하다 학자금이 중도에 끊어져도 券番문을 두드리고 사회운동을 한다고 斷髮을 하고 돌아다니다가도 藝妓許可를 내고 그야말로 牧丹峰 밑이나 矗石樓 아래에서 대대로 자라는 뼈 있고 씨 있는 아씨들이 자가의 위신을 보전하기 위하여 聯盟奮起資格審査制度를 提唱하여야 당연할 것이다.

 

                                                             평양기생학교

 

朝鮮에서 妓生의 명산지로는 두군데를 꼽을 수가 있으니 북으로는 平壤, 남으로는 晋州이다. 어떤 사람은 진주妓生이 평양파리보다 두 마리가 적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말하기를 평양파리가 평양妓生보다 겨우 두 마리가 많다고도 하니 평양과 진주의 기 妓生 수효의 차가 어떤지 수학천재의 답안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 妓生의 지반과 세력으로는 진주가 평양에 차이가 나는 것이 몇 등급이라고 한다.

 (신민, 30호, 1927,10, 신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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