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득이시리즈에 담긴 우리의 모습
1. 만득이 시리즈
지금은 유행이 지난 이야기지만 만득이 시리즈 중에 사회성이 아주 짙은 이야기들이 가끔씩 있다. 그것이 지니는 사회적·문화적인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들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는 관계로 기록해서 잘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매우 중요한 문헌으로 작자와 책 이름을 반드시 외워야 했던 이규보의 파한집(破閑集)은 그 뜻이 한가로움 혹은 심심한 것을 깨버리는 이야기를 모은 것이란 의미를 지닌다는 것에서도 이러한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 시대에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던 것들도 나중에는 당시 사회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함께 짚어보도록 한다.
“만득이 귀신은 언제나 만득이만을 부르면서 따라다니고 애정을 표시하고 못살게 구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만득이는 매일 이 귀신을 피해 다니느라고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러한 귀신이 귀찮아진 만득이는 도망도 가보고 숨어도 보고 했건만 그때마다 귀신을 정말 귀신 같이 만득이가 있는 곳을 찾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득이네 집에는 만득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득이네 집에는 만득이 동생 천득이도 있었는데, 만득이 귀신이 언제나 만득이 만을 먼저 찾거나 부르는 것에 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천득이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득이 귀신은 언제나 만득이를 제일 먼저 부르고 늘 만득이만을 챙기곤 하는 것이었다.
만득이 귀신이 만득이만 챙기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여기던 천득이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하루는 귀신을 불러서 조용한 곳에서 좀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왠일인지 만득이 귀신은 상당히 미안해하면서 아무 군소리도 없이 천득이를 졸래졸래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득이는 조용한 방으로 귀신을 데리고 가서 심각하게 말했다. “야 귀신 너는 어떻게 된 귀신인게 언제나 만득이만 찾냐? 우리 집에는 만득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득이 동생 천득이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네가 잘못한 것을 잘 알겠지?”
그랬더니 평소 같으면 마구 화를 내면서 덤벼들었을 귀신이 그날은 왠일인지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있다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풀이 죽은 소리로 하는 말이 “내가 다음에는 찾을 때는 반드시 천득이 너를 먼저 부를께” 하는 것이었다.
이 말에 기분이 매우 좋아진 천득이는 그 후로 귀신이 자기를 찾아줄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그때부터 귀신은 왠일인지 밥도 잘 먹지 않고 늘 심드렁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었다. 귀신이 힘없이 앉아있는 것만 빼고는 천득이와 귀신 사이에 그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동안은 집안에는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천득이네 집은 전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러나 그런 조용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동안 힘없이 앉아있기만 하던 귀신이 하루는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를 천득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면서 “천득아! 천득아! 어디있니?” 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귀신이 자신을 찾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천득이는 지난번에 한 약속을 귀신이 잘 지키는구나 생각하면서 반가운 마음에 얼른 방문을 열고 나가서 귀신에게 말했다. “왜 그러냐?” 그랬더니 그 다음에 귀신이 하는 말이 천득이를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다.
“만득이 어디 갔냐~~~~~~” 라고 하는 것이었다. 만득이 귀신이 천득이를 먼저 찾은 것은 만득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들은 천득이는 너무나 기가 막혀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2. 만득이와 귀신의 사회적 의미
이 이야기에서 만득이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이다. 즉, 주로 중·고등학교 학생들인 이들은 하고 싶은 것이 무척이나 많다. 그러나 어른들은 무엇이나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금지시키는 것이 너무나 많다. 만득이는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면 된다.
그들은 꿈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으며,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사회와 어른들 또한 이들에게 못하게 하는 것이 너무 많다.
극장도 가면 안된다. 가수가 노래 부르는 쇼 같은 데에 가도 안된다. 이성과 사귀는 것도 안된다 등 이루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것들을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을 마음속에 지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만득이는 이런 그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는 존재이고, 만득이와 귀신의 이야기는 이들의 이러한 욕구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귀신은 누구인가? 만득이시리즈에 나오는 귀신은 우리의 청소년인 만득이를 언제나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하는 존재이다. 화장실을 가도 쫓아오고, 극장을 가도 쫓아오고 공부할 때도 쫓아와서 옆에서 지켜보고,
잠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언제나 귀신은 만득이만 보고 있고, 끈임없이 옆에서 불러대곤 한다. 따라서 만득이는 귀신을 매우 귀찮은 존재로 여긴다. 그러므로 만득이는 언제나 귀신에게서 도망가려고 하며, 기회만 되면 귀신을 골탕 먹이려고 한다.
귀신은 이런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만득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귀신은 만득이로 대표되는 청소년들을 못살게 한다고 생각되는 부모님, 선배님, 형님, 선생님 같은 잔소리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귀신은 만득이를 늘 쫓아다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제 귀신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귀찮은 존재로 되어 버린 것이다.
즉, 만득이가 어디를 가든 쫓아가서 간섭을 해야 하는 존재가 귀신인데, 만득이 시리즈가 시작된 처음 이야기를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만득이귀신이 만득이를 얼마나 심하기 따라다니느냐 하면, 만득이가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에 따라와서 만득아! 만득아! 부르고, 극장에 가면 그곳에 따라와서 만득아 만득아 부르곤 해서 볼일을 볼 수 없게 만들 정도이다.
그래서 귀신이 너무나 귀찮아진 만득이는 귀신에게 골탕 먹일 일을 많이 만든다. 예를 들면 만득이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귀신이 변기 구멍 밑으로부터 나와서는 만득이를 자꾸 불러대는 것이었다. 너무나 짜증이 난 만득이는 화장실의 물을 내려버렸다.
갑자기 내려오는 물 때문에 목이 막인 귀신이 만득이를 부르는데, 만~꼴 득~깍~아~꼴 하면서 불렀다다는 것이다. 물을 먹어가면서까지 귀신은 만득이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자동차와 만득이 귀신이다. 만득이가 화장실로부터 나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하니까 이번에는 귀신이 쫓아와서 차의 앞 유리에 붙어서 와이퍼를 잡고 만득이를 계속해서 불러대는 것이었다.
귀신이 너무나 성가신 만득이는 귀신을 쫓아버릴 생각으로 차에 시동을 걸고 와이퍼를 빠른 속도로 작동시켰다. 그랬더니 귀신은 움직이는 와이퍼에 붙어서 만득이를 부르는데, “만~쌱 득~쌱 아~쌱”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해도 떨어지지 않는 귀신 때문에 정말 짜증이 난 만득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매우 시끄러운 곳에 가면 못 찾겠지 생각하고 나이트클럽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물론 만득이 귀신도 따라서 나이트클럽으로 들어갔는데, 사람도 많은데다가 시끄러운 음악과 번쩍 번쩍하는 조명 때문에 만득이를 부를 수도 찾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 안에서 한참을 헤매던 귀신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나이트클럽 내부의 노래를 내보내는 음악조정실에 들어가서 마이크로 찾으면 되겠다고 생각한 귀신은 얼른 조정실로 들어가서 무서운 얼굴로 직원을 내쫓고 마이크를 손에 잡았다.
그런데, 노래가 너무 신나게 나오는 바람에 그 음악에 맞추어서 만득이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득이를 부르는데, “만~ 드기 드기 드기 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상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만득이와 귀신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리고 만득이 시리즈를 잘 보면 언제나 귀신은 만득이를 쫓아다니고, 만득이는 언제나 귀신을 골탕 먹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는 것이라든지, 와이퍼를 작동시켜 이상하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귀신을 골탕 먹이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사실 이러한 행위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만득이는 청소년이고 만득이 귀신은 만득이를 따라다니면서 못살게 구는 선생님, 부모 등의 잔소리꾼이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혼낼 수 없는 그런 잔소리꾼들을 이야기 속에서 후련하게 혼내주는 것이 청소년들에게는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왜 만득이 시리즈가 한때 유행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득이와 천득이 이야기는 어떤가? 필자가 볼 때 이 이야기야말로 만득이 시리즈의 백미라고 할만하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분명 한 가정에서 맏이가 아닌 둘째 이하의 청소년이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관습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맏이를 중시하는 어머니들의 관습인데, 이것에 대해 맏이가 아닌 둘째 이하의 청소년들이 이것을 꼬집은 이야기가 바로 위에서 말한 천득이이야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자식을 많이 낳지 않아서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들은 오직 맏아들 밖에 모르지 않았던가!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무엇이나 맏아들이 먼저였기 때문에 둘째나 셋째 자식들은 옷에서부터 가방, 신발까지 모두 형이나 언니가 쓰던 것을 물려받은 것뿐이었다.
그러니 둘째 이하의 자식들은 나름대로 부모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을 것이고, 이러한 불만이 천득이 이야기 같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을 둘 이상 둔 우리 어머니들 한번 생각해보시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맏이만 챙기고 맏아들, 혹은 맏딸만 위하는 그런 행동들을 한 적이 없는지, 어머니의 그러한 행동이 아래 동생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하는 것들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천득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이런 문화적 현상들을 짧은 이야기 속에 잘 담아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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