束草는 ‘물묏고을’이란 뜻이다.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속초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호수, 바다 산 등이 잘 어우러져서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속초시에서는 근래에 속초는 우리말로 ‘풀 묶음’이라면서 이것을 여러 곳에 사용하고 있다. 이 해석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는 과연 우리 선조들이 이런 것으로 땅이름을 만들었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束(묶을 속)은 여러 개의 나무를 묶어 놓은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자(象形字)다. 가운데에 있는 口는 나무 단을 묶은 줄이고 나머지는 木(나무 목)이다. 여러 개의 나무를 고정하기 위해서는 줄, 끈 등을 한가운데에 놓고 묶어야 한다. 그래서 이 글자는 한가운데, 무엇인가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의 한가운데 등의 뜻으로 확장되어 쓰이게 되었다.
草(풀 초)는 원래 참나무의 열매를 지칭하는 글자로 ‘검은’이라는 뜻이 기본이다. 한나라 때에 이 글자를 가차(假借)하여 풀을 나타내도록 했다. 그래서 '皂(검을 조, 도토리 조)'를 따로 만들어서 ‘참나무 열매’라는 뜻을 가지도록 했다. ‘도토리’는 염색 재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검다’라는 뜻을 기본으로 한다. 이런 연원이 있기 때문에 ‘草’가 땅이름으로 쓰일 때는 주로 ‘검은’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속초는 시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쓰이지만,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집이 90호 정도 되는 마을이면서 소천면(所川面)의 속초리로 불렸다. 여기에는 속초포(束草浦)가 있었는데, 배 3척에 군사 200이 주둔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 속초시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속초리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고을이었음과 동시에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속초리는 온 사방이 검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한가운데에 동네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적인 특징이다. 어디를 봐도 바다, 호수, 산이 둘러 있는 형국이다. 과거에는 바다와 호수 등 물과 관련된 것들을 모두 검다고 했는데, 산의 색깔도 검은 것으로 인식했다. 물과 산 등을 검다고 한 이유는 지금처럼 색의 분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이라는 추정을 해 본다. 도토리로 만든 묵 같은 것을 검다고 한다면 색약이나 색맹으로 취급받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이런 정도를 모두 검다고 보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속초라는 땅이름은 매우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연 친화적인 환경을 가진 공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속초라를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물과 산 등의 자연이 온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한 가운데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물뫼ㅅ고을’, 혹은 ‘물묏골’ 정도가 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풀 묶음’은 좀 아닌 것 같단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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