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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일상/2024

이천(利川)의 지명 유래

by 竹溪(죽계) 2024.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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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山四友 利川 나들이

 

장마와 7월이 시작되는 날에 청산사우는

여주와 더불어 경기도의 중심 지역이었던 이천의 고려시대 불상과 조선 초기 정자를 기행했다.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이천어석리석불입상(利川於石里石佛立像)이었다. 이 불상은 높이가 4미터 정도로 만들어진 불상으로 돌로 만들었으며, 서 있는 모습이다. 팔각으로 된 모자(天蓋)를 쓰고 있으며, 머리 꼭대기에는 상투 모양으로 된 솟은 뼈인 육계(肉髻)가 있는 모양이다. 매우 단순화되고 도식화된 형태의 이 불상는 돌장승처럼 뻣뻣하게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려시대 석불상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런 형식은 충남 개태사 석조삼존불과 함께 충청도과 경기도 일대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천시 모가면 마옥산(磨玉山) 기슭에 있는 소고리 마애여래좌상(所古里磨崖如來坐像)은 바위에 불상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그래서 마애상(磨崖像)이라고 한다. 이것도 높이가 4.7미터 정도로 고려시대 마애불상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자연석 바위의 한쪽 면에 불상을 조각한 것인데, 여섯 개의 동심원으로 머리의 광명(頭光)을 표시했다. 정면에서 보면 하체에 비해 머리가 유독 크게 보이는데, 이것은 참배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참배할 때 나타나는 착시현상을 계산해서 불상을 조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봉산 기슭에 있는 것으로 의상(義湘)이 세웠다는 북악사 자리에 있는 영월암(映月庵)의 마애여래입상은 10여미터에 이르는 불상이다. 보물로 지정되었다. 자연 바위를 다듬어 전체를 채워서 불상을 조각하였다. 명칭은 여래좌상이라 하고 있으나 두상은 승려의 머리처럼 민머리인데다가 정수리에 불룩 나온 육계가 없는 데다가 광배도 그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사찰이나 암자의 창건조사를 조각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한다. 여기에서 산으로 조금 올라가면 이천의 진산인 설봉산이 있고,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좀 가면 설봉산성이 있다. 이 산성은 백제, 신라 때부터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었다. 임진 왜란 때는 왜군이 잠시 머물기도 했다.

 

이천 시내 중리천로113번길에 있는 애련정(愛蓮亭)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에 중건한 이래 연못과 함께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자리는 원래 안흥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사라졌고, 그 자리에 연못과 애련정이 들어섰다. 조선 초기에 이세보가 중건하고, 신숙주가 애련정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금은 안흥유원지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利川이란 지명은 그냥 봐서는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유래를 알고 보면 아주 재미있다. 이것은 이섭대천(利涉大川)에서 따온 것이다. 이섭대천은 주역에 나오는 말인데, 64괘 중 아래 괘는 이고 위 괘는 인 것으로 하늘에 구름이 끼어 있으나 아직 비는 내리지 않는 상태이다. 때를 기다리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천은 인생의 어려움, 고난, 장애 등을 의미한다. 물을 건넌다는 것은 고난을 이겨낸다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큰 이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신라 말기에 왕건이 견훤을 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갈 때 이곳에 이르렀는데, 앞에 있는 福河川에 물이 많아서 건널 수 없었다. 이때 이곳의 호족인 徐穆이 길을 안내하여 무사히 건너서 견훤을 격파했다. 서목은 徐熙의 당숙이다. 이런 인연으로 이섭대천이란 표현을 내렸고, 이것에서 그 뜻을 취해와서 이천이란 지명이 생겼다.

 

장마 중인 데다 좀 덥기는 했지만 아주 재미있는 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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