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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觀看天下

사법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

by 竹溪(죽계)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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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

손종흠 전 한국방송대 제주지역대학장·논설위원

뉴제주일보 승인 2024.06.13 16:43

 

20년 전 수십 명의 10대 남학생들이 어린 여학생을 오랫동안 성폭행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던 사건이 있었다.

 

최근 가해자들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데,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으니 어떤 식으로든 제재를 가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의견과 사적제재가 행해지면 사법 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양쪽 의견 모두 일리가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겪은 상처와 인권 유린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평생을 악몽 속에 살게 될 것이란 점과 당시 사법적 정의를 통해서는 어떤 해결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적제재에서 오는 부작용만을 부각하여 강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현재까지도 잘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법 체계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정성과 정당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올바른 도리이다. 작금의 상황을 볼 때 우리나라에 과연 그것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은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범죄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법적 처벌이나 사회적 제재가 이루어지게 되면 정치적 탄압이라 우기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지도층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일반인도 그 영향을 받아 잘못이나 범법 행위를 하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정의의 실현을 늘 최고의 가치로 내세워 왔다. 정의가 진정으로 공평하게 실현되었는지에 대한 것은 시대마다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해석되었지만 언제나 그것의 실현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사실이다.

 

기원전 1세기 초 사마천은 자신이 편찬한 사기(史記)’에서, ‘하늘의 도(天道)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선한 사람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천도가 옳은지 그른지 의심스럽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천도는 정의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사람이 정치와 사건과 전쟁의 기록인 역사서를 편찬하면서 정의가 과연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으니 정의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이 승리하여 정의가 실현된다는 사필귀정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사회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법을 집행함으로써 범죄자를 단죄하는 사법기관이 공동체적 정의를 구현하는 최고의 공권력이어야 하고 구성원 모두 그것을 인정하고 따라야 함에도 이를 지키지 않아 공권력과 사법 시스템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 행위를 자행하여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서부터, 법망을 피해 가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참혹한 일들이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사법적 정의가 실현될 수 없으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사법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처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응징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방식이 그것이다.

 

사적제재라는 비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하고도 법적 처벌을 피해 간 사람에 대해서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구성원 모두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고 공동체를 발전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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