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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일상/2021

정동진에 대하여

by 竹溪(죽계)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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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正東津)의 유래에 대하여

 

추운 날씨였지만 1박 일정으로 정동진과 경포해변을 다녀왔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매우 추웠지만 하얀 물보라를 날리면서 짓쳐 들어오는 파도를 마주하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친김에 정동진에 대한 그릇된 정보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한다.

 

강릉의 남쪽 바닷가에 있는 정동진과 정동진역, 그리고 해변은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후 새해 해맞이의 명소가 되었고, 지금은 소도시 수준의 시설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으며,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해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기로는 조선의 왕궁이었던 경복궁의 정동쪽에 있는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정보가 아니다.

 

이 지역을 정동이란 이름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이미 고려 시대부터 등장하고 있기 때문인데, 1309년에 건립된 매향비(埋香碑)인데, 이 기록에 의하면 정동촌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강원도 삼일포에 세워졌던 것인데, 지금은 없어지고 비의 탁본만 남아 있다. 매향비는 내세에 미륵불의 세계에 태어날 것은 기원하면서 향을 땅에 묻어 기원하면서 세운 비인데, 삼일포 매향비에 의하면 강릉도존무사(江陵道存撫使지강릉부사(知江陵府事강릉부판관, 그리고 동해안 8개 주현(州縣)의 부사(副使현령(縣令현위(縣尉감무(監務)가 그 지역의 승려·주민과 함께 발원하고 1,500개의 침향목(沈香木)을 묻었다고 되어 있다. 그 중 300개를 정동진에 묻었다는 것이다. 향을 묻은 범위가 넓은 데다가 관이 주도하여 이러한 행사를 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묻은 향은 침향이라고 하여 귀한 약재로도 쓰이는데, 주로 바닷가나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택해서 묻은 다음, 비를 세웠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5종 정도의 매향비가 있는데, 고려 때의 것과 조선 초기의 것이 전부이며, 그 후에는 억불정책에 의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정동촌이란 지명이 고려 시대부터 등장했다는 이런 사실에서 볼 때 정동진은 경복궁의 정동쪽이라서 붙여진 명칭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16세기의 인물로 삼척에 있을 때 지은 기행문에서 뽑은 글(陟州時記行鈔語)을 쓴 허목(許穆, 1595~1682)이 남긴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화비령(火飛嶺)의 남쪽에 지명이 정동(正東)이라는 곳이 있는데, 동해 가의 작은 산이다. 산은 전부 돌로 되어 있고, 그곳에 있는 나무는 모두 소나무인데, 춘분날 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해가 한가운데에서 떠오른다. 옛날에는 동해 신의 사당이 있었으나 나중에 양양으로 옮겼다. 산세가 기이하고, 험준하며, 신령스러워서 나무 한 그루라도 베면 마을에 재앙이 일어나므로 고을 사람들이 신으로 받들어 섬기고, 전염병이 돌면 그곳에 기도를 드린다.’라고 했다.

 

또한 근래에 와서 위성 정보 등을 이용해 다시 측정해본 결과 경복궁의 정동쪽이 아니라 도봉산의 정동쪽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던 정보가 잘못되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새해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해맞이 명소를 찾아 해돋이를 보면서 소원을 빌고, 기원하는 행사를 하는데, 이런 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기보다는 일제 강점기 때에 생겨난 일본의 풍속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물론 해돋이를 보는 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대단한 구경거리였지만 현재처럼 새해에 하는 해맞이 행사가 일제 잔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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