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부석사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도비산(島飛山)의 혈(穴) 자리에는 신라 때 의상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부석사(浮石寺)가 있다. 도비산은 동쪽의 천수만에서 바라보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이름도 그래서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의상과 선묘의 사랑 이야기를 창건설화로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석사라 하면,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자락에 있는 사찰을 의미하지만, 공간적 위치로 보면 서산의 부석사 이야기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서산 부석사 창건설화에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선묘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창건할 때에 도둑의 무리가 몇 번이나 달려들어 허물어버렸다고 한다. 선묘(善妙)가 죽어서 변한 용(龍)이 크게 노하여 공중에서 큰소리를 내면서 바위를 공중에 듸워 빙글빙글 돌리면서 위협하여 사람들을 쫓아 버린 덕분에 무사히 절을 짓게 되었다. 그 뒤 선묘의 혼령은 검고 큰 바위가 되어 도비산의 서쪽 바다 위에 검은 돌로 변해서 좌정했는데, 사찰에서 바라보면 마치 돌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이름을 부석사라 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고려 말의 충신 유금헌(柳琴軒)이 망국의 한을 품고 물러나 이곳에다 별당을 지어 독서삼매로써 소일하였는데, 그가 죽자 승려 적감(赤感)이 별당을 사찰로 바꾸었고 사찰 이름도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 마치 뜬 것같이 보이므로 부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으나 이곳이 중국과 왕래하는 중요 교통요지에 위치한다는 점, 의상이 당나라로 유학할 때와 귀국할 때 모두 이 부근 지역을 이용했을 가능성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의상과 선묘 이야기에 더 믿음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이 사찰의 창건설화로 만들어졌던 이야기가 나중에 영주 부석사로 이어지면서 한층 구체화 되어 정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워낙 외진 곳인지라 찾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적하게 즐기며 답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이다.
극락전 앞에 있는 안양루(安養樓) 옆에서 서쪽을 보면 아스라이 보이는 서해안 포구 바다-지금은 간척지가 되어 모두 땅으로 바뀌어있지만-위에 위태위태하게 검은색의 돌이 떠 있는 것이 보인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물이 찰랑찰랑하는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거기에다 얼마 전부터 서산시에서 이곳을 관광지화한다고 하면서 도로를 내면서 마구 파헤쳐 놓아서 어디가 어디인지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거기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티맵 같은 내비게이션도 장소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엉뚱한 곳이라 안내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원래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위 섬이었기 때문에 검은여라고 했는데, 간척지가 생기면서 모두 메워져서 주위가 전부 논으로 변해서 도저히 바위섬으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지자체에서는 이미 다 망쳐버린 이곳을 관광지화한다고 하면서 길을 만들고는 있지만 이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검은여(浮石)로 불리는 바위섬 주변 반경 300에서 500여 미터 정도까지는 간척지 땅을 파내서 바닷물을 들어오게 한 다음, 바위섬이 물 위에 떠 있는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육지로 된 검은여는 아무리 길을 낸다고 한들 사람들이 큰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만 하더라도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는 유명 관광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제대로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혼자서는 가기 어려운 유적지라고 할 수 있는 부석사와 검은여를 대학 동창들과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