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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기타

[스크랩] 자청비 신화

by 竹溪(죽계) 201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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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청비 - 세경본풀이에서..

 

1. 자청비의 탄생 - 옛날 제주도 주년국이라는 곳에 큰 벼슬을 한 김진국 대감과 자주부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큰 부자였지만 대감이 50세가 가깝도록 자식이 없어 걱정이었다. 그러던 중 동관음 상주사에서 왔다는 화주승이 대감 집에 시주를 청하러 들어왔다가 그 사연을 듣고는 자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때깔 좋은 물명주와 고깔 만들 종이를 마련하고, 대백미 소백미 모두 합쳐 일백 근을 마련하여 우리 절로 오셔서, 물에서 죽은 귀신, 뭍에서 죽은 귀신, 외로이 죽은 귀신 위해 석 달 열흘 기도하면 자식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솔깃한 대감 부부는 당장 준비하여 상주사로 향하였는데, 도중에 서관음 백금사의 화주승이라는 스님이 길을 막고 자기네 법당 부처님이 훨씬 영험하다면서 대감 부부를 회유하였다. 이리하여 귀가 얇은 대감은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백금사에 공양을 하고 절을 올렸다.

집으로 돌아와 태몽을 꾸길, 감주에 호박 안주를 먹는 꿈을 꾸었다. 이에 해몽하는 이가 말하길 ‘생불인 딸아기씨가 태어날 꿈’이라고 하였다. 한편 대감집 하녀 정술데기가 옆에 있다가 자기는 소주에 고기 안주를 먹는 꿈을 꾸었다고 하였더니 이는 아들을 낳을 꿈이라고 하였다. 열 달 후에 자주부인이 건강한 여자아이를 낳으니, 대감이 그 이름을 자청비라고 지었고, 정술데기가 낳은 남자아이는 정수남이라고 지었다. 자청비는 그 용모가 가냘프고 고왔으나 성격은 남자와 같이 활달하여, 여기저기 참견하길 좋아하고 베틀이란 베틀을 장난감삼아 옷을 짜는데 그 솜씨가 남달랐다. 한편 같은 시에 태어난 정수남은 몸이 크고 건장하였으나, 무슨 불만이 있는지 일을 잘 하려 하지 않고 먹는 것만 밝혔다. 특히 자청비 보는 앞에서는 좀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정수남이 태어난 것은 상주사 화주승의 조화라는 설도 있음)

 

 

2. (1) 자청비와 문도령의 만남 - 세월이 흘러 자청비가 열다섯이 되었을 때, 하루는 자청비가 정술데기의 손이 희고 고운 것을 보고 비결을 물었다. 이에 정술데기는 주천당 연화못에 가서 빨래를 하였더니 손발이 고와졌다고 하였고, 이를 곧이들은 자청비는 당장에 옷가지를 들고 주천당 연못가로 향하였다. 한창 빨래를 하던 자청비의 시선에 낯선 도령 하나가 천리마를 타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말에서 내린 도령은 물 한 바가지를 청하였고, 이에 자청비는 물 한바가지를 가득 받아 수양버들 잎을 세 번 훑어 띄운 다음 건네주었다. 물바가지 받아 든 도령이 대뜸 화를 냈다. “아가씨는 얼굴과 마음이 다르군요. 어찌 사람 마실 물에 궂은 티를 넣어 줍니까?” 이에 자청비 답하길, “물이라 하는 것은 급히 먹으면 체하는 법입니다. 그래 천천히 마시라고 일부러 버들잎을 띄워드린 것입니다.” 도령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곤, 버들잎을 후후 불며 물을 마셨다. 도령은 자신을 문도령이라 소개하면서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주천강 남쪽 마을에 사는 거무선생에게 글공부를 배우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자청비는 자기도 문도령과 함께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나서, 글공부를 하려는 쌍둥이 오라버니가 있다고 둘러대고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남장을 하여 문도령과 동행하기에 이른다.

(2) 3년간의 동거 그리고 이별 - 서당에서 거무선생의 가르침 아래 함께 시간을 보내며 글공부에 매진하던 자청비(자청도령이라고 속임)와 문도령은 서로 형제같이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그렇게 1년, 2년 지나면서 문도령은 문득 자청도령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자청비도 이런 낌새를 알아차렸다. 하루는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데 자청도령이 자기하고 문도령 사이에 물동이를 길어다 놓고 붓대를 가로질러 걸쳐 놨다. 문도령이 이유를 묻자 자청도령은 “아버님께서 이렇게 해놓고 잠자는 중에 붓대가 떨어지면 과거에 낙방을 하게 되니 조심해야 하느니라, 하고 말씀하셨네.”라고 대답했다. 여기에 또 속은 문도령은 자신도 한번 해보겠다며 따라했고 결국 붓대가 떨어질까 매일밤 안절부절 잠을 못 이룬 문도령은 공부에서 자청도령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초조해진 문도령은 자청도령에게 오줌 내갈기기 시합(-_-;)을 제안했다. 자청비는 짐짓 태연하게 굴며 제안을 수락했고, 문도령 몰래 큰 붓통을 바지 속에 넣고는 다리 사이에 끼워 내기에서도 문도령을 이기게 되었다. 혹시나 자청도령이 여자가 아닐까 의심했던 문도령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3년이 다 돼가던 어느날, 문도령은 하늘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색시감(서수왕 딸아기)을 정해 두었으니 속히 돌아와 장가들라는 편지를 받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놀란 자청비는 자기도 이만 떠나야겠다면서 동행을 청했고, 가던 길에 주천강에서 목욕이나 하자고 제안했다. 문도령은 하류에서 별 생각없이 목욕을 하고 있었고, 자청비는 상류에서 씻는 시늉을 하다가 버들잎에 편지를 써서 물에 띄우고 자리를 떠났다. 「무심한 문도령아. 삼 년 동안 한방에서 살고도 남녀 구별 못하는 바보 같은 문도령아. 나는 집으로 가겠다.」뒤늦게 물에 떠내려 온 버들잎을 발견한 문도령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부랴부랴 자청비를 쫓아 나섰다. 집까지 뒤따라온 문도령을 본 자청비는 부모님께 글동무가 따라왔으니 집에 묵게 해달라고 허락을 구한 뒤 집에 데려와 밤새도록 마음속에 담았던 정회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다음 날 헤어지기 전에 문도령은 박씨 하나를 자청비에게 건네주며 내년 봄에 박 열매가 익어서 따게 될 때까지 돌아오겠노라고 다짐하며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문도령이 떠나고 나서 봄이 찾아오고, 박씨를 심고, 열매가 항아리만큼 커져 딸 때가 지났지만 문도령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3. (1) 정수남의 농간 - 시름에 젖은 자청비의 눈에 또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정수남이 들어왔다. 그것이 눈에 거슬린 자청비는 정수남을 꾸짖었고, 정수남은 말과 소를 마련해 주면 당장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요구대로 소 아홉 마리, 말 아홉 마리, 도끼, 잠방이를 챙겨주자 정수남은 곧장 산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일은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다가 자다가, 깨면 또 자고를 반복하였고, 먹이를 먹지 못한 소와 말들은 곧 죽고 말았다. 죽은 소 아홉 마리, 말 아홉 마리를 한나절 만에 모두 구워 먹은(!!) 정수남은 소․말가죽을 짊어지고 배를 두드리며 내려오다 연못 위를 떠다니는 오리 한 마리를 발견한다. 오리 한 마리 갖다 바치고 상전을 달랠 요량으로 도끼를 던졌지만 오리는 날아가고 도끼만 풍덩 빠져버렸다. 도끼하나 찾겠다고 가죽을 내려놓고 잠방이까지 벗어던진 정수남은 물속을 이리저리 뒤졌지만 도끼는 찾지 못하였고, 지쳐서 나와 보니 이미 가죽과 잠방이는 도둑맞은 뒤였다. 하는 수 없이 누리장나무 이파리로 대충 몸을 가린 정수남은 집에 돌아와서는 상전에게 혼날까봐 장독대 사이에 숨었다. 결국 들켜서 자초지종을 따져 묻는 자청비에게 정수남은 문도령을 보았다고 핑계를 대면서 이리저리 말을 꾸며내었다. 자청비는 문도령이라는 말에 정신이 나가서 다음날 정수남을 앞세워 문도령을 봤다는 굴미굴산으로 향하였다.

(2) 정수남의 죽음 - 그러나 가는 도중 내내 정수남은 자청비를 골탕 먹이고 기만하였고, 문도령을 봤다던 연못가에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겁이 난 자청비는 일단 잘 달래야겠다는 생각에 “해가 지고 있으니 오늘밤 보낼 움막이나 짓자”면서 다독였다. 신이 난 정수남이 나서서 돌을 주워오고 나무를 잘라오는데, 그 행동이 민첩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짓기는 지었으나 나무로 얼기설지 지은 것이라 구멍이 숭숭 나있었다. 자청비는 정수남에게“내가 안으로 들어가 불을 피울 테니 너는 바깥에 있다가 불 비치는 구멍을 풀을 베어 막아라.”고 하였고, 정수남은 순순히 그에 따랐다. 그러나 자청비는 정수남이 구멍을 막을 때마다 몰래 다른쪽에 구멍을 내었고, 그렇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구멍을 막다보니 날이 밝고 말았다. 화가 난 정수남이 이리저리 날뛰자 자청비는 이번엔 자기 무릎을 베고 누워보라고 달래었다. 그 말에 화가 누그러진 정수남은 자청비의 무릎 위에서 곤히 잠들었다. 그때 기회를 잡은 자청비가 기절시킬 요량으로 정수남의 정수리를 나뭇가지로 찔렀고, 정수남은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다. 자청비가 이에 당황하는 사이 정수남의 몸에서 갑자기 부엉이 한 마리가 생겨나 자청비를 쏘아보고는 날아 올라갔다.

(3) 서천꽃밭으로의 여행, 정수남의 부활 - 집에 돌아와 자초지종을 얘기한 자청비는 계집아이가 사람을 죽였다면서 쫓겨나게 되었다.(첫번째) 자청비는 또다시 남장을 하고 활과 화살통을 둘러메고, 사람 살리는 꽃, 죽이는 꽃 모두 다 피어 있는 서천꽃밭으로 길을 떠났다. 서천꽃밭에 당도하였지만, 환생꽃을 찾을 길이 막막하던 자청비는 우연히 어린아이 셋이서 부엉이 한 마리를 놓고 싸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자청비는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주며 부엉이를 받았고 화살 하나를 꽂아 서천꽃밭 담벼락 너머로 던졌다. 그러곤 담 주위를 말을 타고 돌았더니 개가 짖어 댔고, 그 소리에 꽃밭지기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막내 딸아이를 내보냈다. 남장한 자청비에게 반한 꽃밭지기 막내딸은 무슨 일로 배회하는지 물었고, 자청비는 “부엉이에게 화살 한 대를 쏘았는데 맞고 꽃밭으로 떨어졌습니다. 부엉이와 화살을 찾고 싶은데,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이리 서성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막내딸이 꽃밭지기에게 얘기하자 그렇지 않아도 부엉이 때문에 근심이 많았던 그는 자청비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꽃밭지기는 서천꽃밭에 부엉이 한 쌍이 살면 꽃밭에 흉한 일이 생긴다면서 남은 한 마리도 잡아주길 청했다. 밤이 되어 부엉이를 찾은 자청비는 그 부엉이가 정수남의 시체에서 생겨난 부엉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청비는 정수남의 원혼을 달래며 부엉이를 불렀고 부엉이는 그대로 날아와 자청비의 품으로 안겼다. 일을 해결한 자청비는 사위가 되어 달라는 꽃밭지기의 청을 수락하고 막내딸과 서천꽃밭을 구경한다는 구실로 돌아다니면서 환생꽃을 따 소매 속에 감추었다. 그리곤 과거 시험을 보러 간다는 핑계로 빠져나온 자청비는 곧장 굴미굴산으로 가서 정수남의 시신에 살오를꽃, 피돌을꽃, 숨들일꽃을 놓아두고 때죽나무 막대기로 세 번 후려치며 “서러운 정수남아, 봄잠에서 깨어나라.”라고 말했다. 그 덕에 다시 환생한 정수남은 이전과는 다르게 공손하고 상냥한데다가, 품행이 방정하였다. 자청비가 죽은 정수남을 다시 살려내어 집으로 데려오자, 이번엔 자청비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니 요망하다면서 쫓아내었다.(두번째)

 

 

4. (1) 마고할미의 수양딸이 된 자청비 - 결국 눈물을 머금으며 집을 나선 자청비는 해동국을 이리 저리 방황하면서 갈곳 없이 헤매었다. 그렇게 다른 집들 농사일을 도와 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하루하루 보내던 중 어느 날, 날이 저물어갈 무렵 산중에 길을 잃은 자청비는 불빛을 발견하고는 그리로 향하였다. 그리곤 외딴집에 다다랐는데, 청태산 마고할미 집이었다. 마고할미는 산속에 혼자 살면서 베틀로 옷을 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옷을 짜는 그 솜씨가 매우 뛰어나 하늘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자청비는 마고할미의 수양딸이 되어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하루는 마고할미가 문도령이 장가갈 때 입을 옷을 만든다는 걸 들었다. 자청비는 자신이 그 옷을 짜고 싶다고 하였고, 옷을 만들면서 한쪽 귀퉁이에 「가련하다 자청비, 불쌍하다 자청비」하는 말을 몰래 새겨 넣었다. 다음날 하늘에서 내려온 밧줄을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간 마고할미는 사람들에게 옷들을 건네었다. 그 와중에 자기 옷을 받은 문도령은 한 귀퉁이에 새겨진 글귀를 보고는 깜짝 놀라 마고할미에게 자청비에 대해 물었다. 사연을 들은 문도령은 자청비에 대한 가여운 마음에 다음날 밤 찾아가겠다고 일러두었다. 마고할미로부터 소식을 들은 기쁨에 들떠 곱게 차려입고 문도령을 기다렸다. 이윽고 다음날 밤이 되자 문도령이 자청비를 찾아왔다. 그런데 정말 자기가 사랑하는 자청비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문도령은 방문 창호지에 구멍을 내었고, 마침 방안에서 문을 향해 있던 자청비는 난데없는 손가락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바늘로 찔러버렸다. 거기에 깜짝 놀란 문도령은 손을 빼고는 그냥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자청비에게 얘기를 들은 마고할미는 덜컥 화를 내며 “이런 철없는 아이 같으니, 그분이 문도령이셨다. 보아하니 네가 이렇게 차분하지 못하고 말썽을 자꾸 피워서 집에서 쫓겨난 게로구나. 너는 들어온 복을 방망이로 내치니 내 눈에 거슬린다. 그만 이집을 나가거라.”라며 꾸짖었다. 결국 자청비는 이번에도 하릴없이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세번째)

(2) 문도령과의 재회 - 또 다시 정처 없는 방황의 길을 나선 자청비는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 끝에 동관음 상주사를 찾아가 큰스님에게 조언을 구했다. 큰스님은 불가에 들어올 것을 제안했고, 결국 다른 대안이 없던 자청비는 머리를 밀고, 고깔을 쓰고, 목탁을 들어 비구니(ㅠㅠ!)로서의 삶을 택했다. 자청비는 그 후로도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세상천지를 떠돌았다. 하루는 깊은 산 속에서 하늘옥황 궁녀(선녀)가 주저앉아 슬피 우는 것을 보았다. 사연을 물으니 문도령이 마음의 병을 얻었고 자청비와 목욕하던 물만이 그 병을 다스릴 수 있다는데, 대체 그 물이 어떤 물인지 알 수 없어서 운다고 하였다. 자청비는 그 물이 어디 있는지 안다면서 선녀들을 주천강 연화못으로 데려갔고, 그 조건으로 하늘옥황에 올라갈 때 같이 데려가 달라고 하였다.

하늘나라에 당도한 자청비는 문도령의 집을 찾아가 문도령의 방위치를 확인했다. 밤이 깊어지고 보름달이 떠오르자 자청비는 별층당 맞은편 팽나무에 올라가 몸을 숨겼다. 그날 밤 문도령이 나와서 달을 보며 한숨지었다.

“저기 저 달이 곱기는 하다만 지상에 있는 자청비만 못하구나.”

그러자 나무 위에서 자청비가 응답하였다.

“저기 저 달이 곱기는 하지만 내 사랑 문도령님만은 못하구나.”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문도령이 나무를 살펴보니 자청비가 올라앉아 있다. 자청비가 그제야 나무에서 내려오니, 비로소 문도령과 자청비가 서로 얼싸안았다.

 

5. (1) 첫 번째 시험 - 문도령은 자청비를 몰래 방에 숨겨두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부모님에게 들키고 말았다. 완강하게 반대하던 문도령의 어머니는 결국 자청비와 서수왕아기를 불러다 놓고 둘을 시험하게 되었다. 첫 번째 시험은 뜨겁게 달궈진 날선 칼 위를 건너가는 것이었다. 서수왕아기는 이 시험에서 건너기를 포기했고, 자청비는 옥황상제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를 하여 뜨겁게 달궈진 것을 식히고 조심스럽게 건너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청비는 칼선다리에서 내려서다 그만 발뒤꿈치를 베이고 말았다. 급히 치맛자락으로 가렸으나 이를 문도령의 아버지 문선왕이 보고 말았다. 이에 자청비는 “인간 세상에서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달거리를 하는 법입니다.”라고 둘러댔다.(자청비가 칼선다리에서 내려서다 피를 흘린 까닭에 이때부터 인간 세상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달거리를 하고, 달거리를 해야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2) 두 번째 시험 - 문도령 어머니는 이번엔 문도령과 문선왕의 옷을 지으라고 하였다. 자청비는 솜씨를 발휘하여 비단을 짜고, 등허리엔 봉황을, 아랫단엔 연꽃을, 왼쪽 소맷자락에는 소나무를, 오른쪽엔 동백나무를 수놓았다. 자청비의 솜씨를 본 문도령 어머니는 크게 놀라면서 자청비를 칭찬하였고, 자청비는 그렇게 하늘나라에서 온전한 하늘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 한편, 문도령과의 혼인이 물거품이 된 서수왕아기는 화를 내면서 방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드러누웠다. 며칠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어 문을 열어보니, 서수왕아기 몸에서 새가 나왔는데, 머리에서는 두통새, 눈에서는 흘깃새, 코에서 악심새, 입에서 헤말림새가 나왔다. (그때 이후로 사이좋던 부부간에도 이 새가 들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혼례를 할 때 신부가 상을 받으면 숟가락을 들기 전에 이 새들 몫으로 음식을 조금씩 걷어서 상 밑에 내려놓는 풍습이 생겼다.)

 

6. (1) 문도령의 죽음 - 문선왕께 허락을 구하고 문도령과 함께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베를 짜면서 오순도순 지내던 자청비. 그러나 베 짜는 자청비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얼굴 고운 자청비를 탐내는 청년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하루는 그 청년들이 문도령을 잔칫집에 초대하였는데, 자청비가 눈치를 채고 문도령 가슴에 솜을 넣어주며 술에 독이 들었으니 마시는척하며 가슴께로 흘리라 일렀다. 하지만 문도령은 부주의로 술을 마셔버렸고, 말 등에 탄 채로 숨을 거뒀다. 말이 죽은 주인을 태우고 집에 돌아오자, 자청비는 죽은 문도령 눈썹 끝에 등에 한 마리를 매달고 방 안에 눕혀 놓고 태연하게 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찾아온 청년들은 방안에서 코고는 소리(등에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나자 기이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어떻게 수작이라도 걸 심산으로 자청비 앞에 앉자, 자청비는 불같이 야단을 쳤다. “어찌 감히 너희가 나를 데려가려 하느냐?” 그리곤 베틀 막대기를 내갈기니 청년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버렸다.

(2) 문도령의 부활 - 자청비는 서둘러 서천꽃밭으로 향하였다. 거기서 또 꽃밭지기 막내딸을 만난 자청비는 또 막내딸을 속이고 환생꽃을 소매에 숨겼다. 그리곤 “과거에서 낙방을 하였으니 이젠 나를 믿지 말고 기다리지도 마시오.”라며 떠나려 하였다. 하지만 막내딸은 한 달에 한번이라도 좋으니 꼭 돌아와 달라면서 향나무 얼레빗 반쪽을 정표로 내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자청비는 정수남에게 했듯이 문도령을 다시 살려내었다. “낭군님아, 낭군님아. 봄잠에서 깨어나라.”

(3) 문도령에게 실망한 자청비 - 하루는 자청비가 그렇게 두고 온 서천꽃밭지기 막내딸이 생각나서 문도령에게 얼레빗 반쪽을 주며 얘기했다. “내가 예전에 여자의 몸으로 서천꽃밭 막내따님아기에게 장가를 든 적이 있습니다. 막내따님아기가 나를 기다리며 홀로 외롭게 지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낭군님께서 나 대신 가 주십시오.” 그리고 덧붙여 “서천꽃밭에 가서는 보름까지 살고, 돌아와 그믐까지는 저와 함께 사십시오.”라고 하였다. 문도령은 자청비의 부탁대로 서천꽃밭에 오긴 왔는데, 막내따님아기와 사는 재미에 빠지고 꽃밭구경에 넋이 팔려 내리 3년을 그렇게 지내버렸다. 자청비는 문도령을 기다리다 지쳐서 제비 날개에 편지 한 장을 끼워 문도령에게 보냈다. 「문국성 문도령은 어찌 이리 무심할까? 보름 살고 돌아오라 그리 당부하였건만, 연 삼 년이 되도록 소식 한 장이 없구나.」 겁이 바싹 난 문도령은 허겁지겁 말에 올라타서 집으로 향했는데, 어찌나 서둘러 탔는지 말을 거꾸로 타고 달려갔다. 이를 본 자청비가 “내가 얼마나 보기 싫으면 말을 거꾸로 타고 오는가?”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문선왕에게 더 이상 이 사람과 살 수 없다면서 살 방도를 달라하였다.

 

7. 농사의 신으로 좌정한 자청비 - 이에 문선왕은 “너는 죽은 것을 살리는 능력을 지녔구나. 오곡 씨를 가지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서 농사를 다스리며 살아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자청비는 문선왕이 내주는 콩, 팥, 녹두, 동부, 메밀 오곡 씨를 가지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갔다.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자기가 태어난 집으로 돌아온 자청비는 부모님과 눈물의 재회를 나눈 뒤, 하늘나라 들판 가득 물결 넘치던 오곡의 종자를 가져왔다면서 오곡을 심고 다스리며 살겠다고 하였다. 김 대감은 그럼 말과 소를 잘 다루는 정수남이를 데려가라 하였고, 자청비는 정수남에게 가져온 오곡 씨를 주어 농사를 짓게 하였다.(여기서 자청비가 씨앗들을 전할 때 메밀 씨를 빠뜨렸다가 늦게 전하는 바람에 메밀은 다른 곡식보다 늦게 심고 늦게 거두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소출이 증가하여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일이 수월해졌는데, 자청비는 밭마다 돌아다니며 대접해주는 이에게 앞에서 씨를 골라주고(흔히 농부들이 참을 들기 전에 첫 숟가락을 떠서 ‘고시래’하면서 들판에 뿌리는 행위는 자청비에게 풍년 들게 해달라며 대접하는 행위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정수남은 소로 밭을 갈게 하였다. 자청비는 농경신이요, 정수남은 가축신이 된 것이다. 한편, 뒤늦게 하늘로 올라간 문도령은 부모님을 찾아가 통사정을 하였다. 이에 문선왕은 “앞으로 너는 농사를 다스리는 자청비를 도우면서 살아라.”고 하며 문도령을 비를 내리는 기후의 신으로 좌정시켰다.(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바로 문도령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출처 : sununet
글쓴이 : 콩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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