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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시의향기

비오는 날 감상하는 한시

by 竹溪(죽계) 2009.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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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초복인데,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습니다.

조선후기의 시인인 유득공이 비가 오는 것과 솔개의 울음소리를 음차하여 지은 시 중에 아주 재미있는 것이 있어서 함께 감상해 볼까 합니다.


이 작품은 유득공의 문집인 泠齋集卷之一 儒城柳得恭惠甫著 古今軆詩 一百九十九首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


시의 제목은 네 가지 짐승의 울음(四禽言) 중 비오(雨來) 솔개(鳶)입니다,

비오는 솔개가 나무에 앉아서 우는 소리를 音差한 것입니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雨來雨來。

비오 비오

(이것은 솔개가 나무위에 앉아서 우는 소리를 이렇게 음차한 것입니다.)


少婦呢喃仰高槐。

젊은 아낙네 중얼거리면서 높은 홰나무 치어다보며


十日淫雨一日霽。

열흘 장맛비에 마침 오늘 하루 개인 날이라


洗郞羅衫張毰毸。張배 시

우리 낭군 비단적삼 날개 편 듯 펄럭이는데

(날씨가 좋아서 옷을 빨아 널어서 그것이 바람에 펄럭이는 모양을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옷이 잘 마르기를 바라는 아낙의 들뜬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아주 절묘하지요?)


雨來雨來何爲哉。

비 오면 비가 오면 어찌 한단 말이냐

(비오 비오 하니 어쩌란 말이냐? 비가 온다고 너는 자꾸만 울어대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아낙의 안타까운 마음과 비가 오라고 축원을 하는 듯한 솔개에 대한 원망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유득공은 21도회고시로 우리에게 유명한 작가입니다.

雨來의 뜻풀이는 비가 오다, 혹은 비가 온다 이지만 솔개의 울음소리와 연결시켜

표현한 것으로 아주 묘미가 있습니다.


모처럼 개인 날에 솔개가 나무에 앉아서 다시 비가 온다고 하는 것처럼 울고 있으니

빨래를 해서 넣어 놓은 아낙의 마음은 타들어가지요.


요즘과 같은 장맛철에 볼 수 있는 평범한 현실을 시로 읊어낸 데다가

음차까지 절묘하게 해서 이중의 뜻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작품의 묘미입니다.


오늘처럼 장대비가 내리는 초복에 읊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올립니다.


내친 김에 비에 대한 상식 하나를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옛날부터 비는 친구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 유래는 중국의 시성인 두보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금 새로 사귄 친구는 ‘진위(今雨)' 혹은 ‘신위(新雨)'라 하고 오래된 친구를 ‘쥬위(舊雨)'로 부르는데, 이것은 杜甫가 지은 ‘추설(秋述)'이란 작품의 표현에 따른 것입니다.


두보가 병들고 곤궁했을 때 한 옛 친구가 엄청나게 내리는 빗속을 뚫고 문병을 했는데, 이에 감동한 시인은 시 한 수를 짓고 서문(小序)을 달았습니다.


“秋, 杜子臥病長安旅次, 多雨…常時車馬之客, 舊, 雨來, 今, 雨不來"가 바로 그것입니다.

“가을에 두보가 병들어서 장안에 있을 때 비가 많이 왔는데,.....늘 차마를 타고 오는 손님이 있었는데, 옛 친구는 비가 오더라도 관계없이 찾아오고, 새로 사귄 친구는 비가 오면 오지 않았다.”


그 후로 이 문장 중에서 舊雨來 今雨不來를 취해와서 ‘舊雨'와 ‘今雨'를 만들었고, 앞의 것은  ‘오랜 친구(故交)'로 하고, 뒤의 것은  ‘새로 사귄 벗(新知)'으로 비유했는데, 이것이 오랜 세월 동안 쓰이면서 굳어지게 되어서 비를 친구에 비유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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