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마구리 만한 게 까분다”의 유래
어린 시절 키가 작은 아이를 놀릴 때 우리가 많이 하는 표현 중에 ‘팔마구리 만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작거나 힘없는 사람이 크고 힘에 센 사람에게 덤비거나 할 때, 혹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정도의 의미를 가진 말로 ‘팔마구리 만한 게 까분다.’라고도 한다.
이 말은 어릴 때 유난히 키가 작았거나 싸움을 할 때 상대에게서 주로 들었던 표현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작거나 상대가 안된다는 의미로 쓰는 표현에 왜 팔마구리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일까?
팔마구리는 산에 사는 나방의 유충인데, 번데기의 형태로 산에서 겨울을 나는 녹황색의 고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유리산누에나방이라고 하는 해충의 나방이 그것인데, 겨울을 나는 수단으로 만든 녹황색의 고치가 바로 팔마구리다.
팔마구리나방의 학명은 Rhodinia fugax diana OBERTHUR인데, 유리산누에나방으로 불린다. 몸길이는 약 60mm, 머리폭은 6mm 정도로 아주 작으며, 몸과 날개가 수컷은 황갈색 내지 등갈색이고 암컷은 황색이다.
날개길이는 수컷이 45∼48mm, 암컷은 48∼55mm이며, 앞·뒷날개에는 물결모양의 내횡선과 외횡선이 있고, 모두 암회갈색인 것이 특징이다. 수컷의 더듬이는 깃털모양이고 암컷의 더듬이는 빗살모양이다.
유충은 녹색이며 뒷가슴 등 면에는 1쌍의 돌기가 있다. 고치는 녹황색이고 긴 자루모양이다. 년 1회 발생하며 유충은 6월 중순에서 하순에 걸쳐 노숙 유충이 되고 다시 번데기가 된다. 늦가을에 성충이 되어 부근 나뭇가지에 산란하며 알로 월동을 하는데, 점차 색깔이 변하여 이듬해 봄에 부화하여 유충이 된다.
유충은 벚나무·밤나무·상수리나무·황철나무·느릅나무 등을 두루 먹는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분포하는 곤충이다. 이 곤충은 산에 사는 나뭇잎을 갈아먹는 해충이지만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존재다.
겨울산은 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있기 때문에 매우 황량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삭막한 나무 가지 사이로 녹색을 띤 팔마구리가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예쁘고 앙징스런 초롱을 나무 사이에 매달아놓은 것과 흡사하다.
‘팔마구리’라는 말은 ‘팔’이라는 말과 ‘마구리’라는 말이 합쳐져서 생긴 것인데, 생기 있게 살아있는 ‘마구리’라는 뜻을 지닌다. 즉, 마구리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살아있는 무엇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말이 팔마구리인 셈이다.
그럼, 이제부터 이러한 이름이 생긴 유래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팔’은 “작은 것이 힘차게 날거나 뛰는 모양”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생활언어에서는 ‘팔팔’ 혹은 ‘팔팔하다’ 등으로 주로 쓰인다.
그리고, “마구리”라는 말은 ‘길쭉한 물건의 양 끝에 대는 것’이란 의미를 지닌다. 즉, 직사각형 모양의 사물의 양 끝을 막아서 안의 내용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것, 혹은 그런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마구리’는 양 끝이 비슷한 모양으로 막혀 있어야 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유리산누에나방이 겨울을 나는 수단으로 쓰는 ‘팔마구리’는 직사각형으로 길쭉하면서 양쪽이 모두 막혀 있는데, 위쪽은 자루의 터진 부분을 재봉틀로 박아서 막은 모양과 흡사하다.
그런 모양을 가진 물체의 위쪽 끝에 가느다란 끈 같은 것이 나와서 가는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모양으로 겨울을 나는 것이다. 아주 작은 나뭇가지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 때문에 ‘팔마구리’는 약간만 바람이 불어도 마치 나비가 춤추듯이 흔들리게 된다.
그야말로 팔팔하게 살아있는 어떤 생명체인양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바로 유리산누에나방의 고치인 것이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팔마구리’속에 있는 애벌레가 껍질에 구멍을 내서 밖으로 나오고 그것이 다시 아름다운 나방이 된다.
이런 유래를 지니는 ‘팔마구리’라는 표현은 생활언어에서는 아주 작고 힘이 없으면서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존재에게 붙이는 말로 쓰이게 되었는데, 키가 아주 작은 아이나 힘도 없으면서 싸움을 걸어오는 상대를 놀릴 때 쓰는 표현으로 되었다.
“저 아이는 꼭 팔마구리만하다”는 표현은 나이에 비해서 정상적인 키로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 되고, “팔마구리 만한 것이 까분다.”고 하는 말은 자신에게 덤비는 상대가 아주 보잘 것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로 한다면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이 덤빈다.” 정도가 될 것이다.
“팔마구리 만하다.”, “팔마구리 만한 게 까분다.” 등의 표현은 현재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 되었지만 자연현상과 언어를 연결시켜 생활 속의 여유를 찾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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