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의세계/재미있는 우리말

허접스럽다 어원

by 竹溪(죽계) 2006. 6. 28.
728x90
SMALL

 

“허접스럽다”의 유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말 중에 “허접스럽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파생되어 “허접하다”. “허접쓰레기” 등의 표현으로도 쓰인다. 이 말의 뜻은 대략 ‘허름하고 잡스러운 느낌이 있다.’ 정도로 되는데, 어디에도 이에 대한 어원이나 유래는 밝힌 곳은 없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어떤 정보에 의하면 최근에 생겨난 신조어라고도 하고, 국어운동문화본부에 올라와 있는 글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등장하는 허접(許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 우리말이라 하면서도 이런 말이 어디에 유래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특히 이 글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여 허접을 명사로 보면서 허접스럽다. 허접하다 등의 표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허접(許接)이 등장하는 왕조실록을 보면 명사로 보기에는 상당히 문제가 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허접이란 말은 300군데가 넘는 곳에 등장하는데, 많은 경우 허접인(許接人), 허접자(許接者), 혹은 허접호(許接戶)로 쓰여서 ‘허접한 사람(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과연 허접을 과연 명사로 볼 수 있을지는 상당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허접스럽다”는 말이 왕조실록에서 쓰인 허접과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왕조실록의 기록을 정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왕조실록에 쓰인 허접은 “허접스런 놈” 정도의 뜻을 지니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왕조실록에 쓰인 허접의 용도를 보면, 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즉, 왜구, 도망간 노비, 도적 역적 등과 결탁하여 그들을 머물게 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이것이 발각되어 노비 신분이 되거나 형벌을 받는 등의 불이익을 당한다.

 

그러므로 왕조실록에 쓰인 허접의 용도로 볼 때 이 말은 결코 좋은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제 근거가 될 수 있는 왕조실록의 기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허접스럽다”의 유래 혹은 어원을 밝혀보려고 한다.

 

먼저 세조 36권 11년 7월 14일 (기미)의 기사인 “좌승지 윤필상이 각도에서 잡힌 도둑을 국문할 것을 건의하다”의 내용을 보도록 한다. 이 기사는 도둑을 처벌하는 과정을 말한 것인데, 여기서 ‘허접한 사람’에 대한 처분이 나온다.

 

“여러 차례 도둑질을 한 것이 명백한 자는 큰 도적으로 정하게 하라. 뭇사람이 다 알고 있는 큰 도적과 허접한 집[戶]은 제주(濟州)와 3도(三島)의 관노(官奴)로 영속(永屬)시키고, 정상을 알고 있는 절린(切隣)한 호수(戶首)는 곤장(杖) 1백 대에, 도(徒) 3년에 처하게 하라.

 

양쪽 어깨에 자자(刺字)한 사람은 제주(濟州)와 3도(三島)에 옮겨 두되 천구(賤口)는 관노(官奴)로 소속시키게 하라. 사는 곳이 아닌데 이접(移接)한 사람과 정상을 알면서도 허접(許接)한 호수(戶首)는 아울러 곤장(杖) 1백 대를 때리게 하고...”

 

여기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허접은 나라에서 금하는 범법자와 내통하여 그들을 받아들인 사람이나  그들을 받아들여 허접한 집, 혹은 허접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노비신분이 되어 제주도로 가서 관노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접한 사람은 자신의 신세도 망칠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 존재가 되어 버린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조에 천민이 된다는 것은 나라를 위한 군역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왕조실록의 다른 기록을 좀 더 보도록 한다. 연산군 63권 12년 8월 14일(신유)의 기사에 “도망간 운평 송초월 등을 연좌시켜 처벌하게 하다”는 내용이 있는데, 도망간 운평을 받아준 사람에 대한 처벌에서 허접이란 표현이 나온다.

 

“운평 송초월(松梢月) 등이 도망쳤으니, 자고 간 집 주인까지 잡아 가두고, 송초월 등을 처형할 때 운평들을 늘어 세워 보도록 하며, 그 고을[官] 수령은 잘 가르치지 못했으니, 아울러 국문하라.

 

전에 조관으로서 역시 도망쳐 화를 면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는 국가의 폐풍이다. 앞으로 조관이나 군사, 공·사천민으로 도망한 자는 중전(重典)에 처하고 그 부모 또는 그들을 ‘허접한 자’들은, 지정(知情) 여부를 막론하고, 장(杖) 1백에 처하여 온 가족을 변방으로 옮기라.”

 

운평은 연산군 때의 기생집단에 속해있던 사람으로 궁중이나 나라에 속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도망을 가면 나라에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나라에 죄를 짓고 도망을 간 사람을 받아주었다고 하여 곤장 1백대를 맞았으니 허접한 사람은 억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허접인에 대한 기록은 이 외에도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 인조실록에 보이는 기사 또한 허접스럽다는 의미로 연결되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인조 10년 3년 11월 14일(기미)의 기사에 “역적 정윤복 등을 체포해 국문하다”에 보면,

 

“도망한 역적 정윤복(鄭允福)이 그 아들 정개질동(鄭介叱同)과 조카 사윤(士允)을 데리고 서울로 들어와 민가에 숨어 있었는데, 포도 대장이 사찰(伺察)하여 체포해 국문하였다. 윤복은 적을 따른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복하여 마침내 정형(正刑)에 처해졌고, 개질동과 사윤은 불복(不服)하고 죽었으며, ‘허접한 사람’(許接人)인 김개(金介)·박개질동(朴介叱同)·정백수(鄭栢壽) 등도 국문을 받다가 모두 장하(杖下)에서 죽었다.”

 

역적을 받아들여 머물게 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다가 죽었으니 허접한 사람은 그야말로 허접스런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이 허접과 관련된 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볼 때 허접은 명사라기보다는 형용사로 집, 사람 등의 명사를 꾸미는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고려 때에도 이러한 용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기록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조선조 후기의 실작자인 성호 이익이 지은 성호사설 제8권 인사문(人事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고려의 제도에는, 강도와 절도를 찾아내어 잡을 경우에는, 관직이 있는 자에게는 차상의 직위로 올려주고, 관직이 없는 자에게는 초직(初職)을 줌을 허락하고, 관직을 받지 못할 사람에게는 물품을 주었으며, 중에게는 사직(寺職)을 주고, 천인은 양인으로 올리며,

 

감검(監檢)하지 못한 자는 죄로 처결하고, 허접(許接)한 사람은 수금(囚禁)하여 죄주었으니, 그 법이 또한 치밀하여 행할 만하다. 잡은 자에게 이미 상이 있으면 알고도 잡지 않은 자가 어찌 안연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주접(住接)한 곳을 뒤따라가 찾아내어 숨겨준 것을 죄주어야 간사한 사람이 숨겨주는 일이 없고, 도적도 따라서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백성들이 흩어져 살고 경작지가 날로 넓어질 것이니 이렇게 10년만 행하면 곡식이 생산되는 효과를 기대함직하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허접이란 말은 이미 고려 때부터 쓰였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왕조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폭넓게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중대한 범법자나 역적을 ‘허접한 사람’에게는 천민이 되는 중벌이 내려졌으니 ‘허접한 사람’이 당시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을 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왕조실록에 나타나는 ‘허접인’ 혹은 ‘허접자’ 등의 용어는 철종실록에까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아주 폭넓게 쓰였던 말이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쓸모없는 노예 라는 천민으로 전락했으니 허름하고 잡스러운 느낌을 가지는 의미로 아주 적합했을 것이다.

 

더구나 범법자나 도망자 등을 받아들여 살게 한 죄로 천민이 된 사람들은 제주가 아니면 길주·명천이 있는 양계(지금의 함경도)로 보내기도 했으니 쓸모없다는 의미로서 남쪽의 말인 ‘허접스럽다’보다 북쪽의 말인 ‘허섭스럽다’가 먼저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허접스럽다” 혹은 “허섭스럽다”는 20세기 중에도 꾸준히 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고향이 북쪽인 백기완씨가 지은 “백기완의 통일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남쪽의 피눈물과 북쪽의 피눈물이 만나 굽이쳐 모든 군사장치와 허섭스레기를 쓸어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허접쓰레기”와 “허섭스레기”는 다른 말이라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 우리가 쓰는 “허접쓰레기”와 같은 뜻이 확실하다.

 

그러면서 이 논자는 “허접쓰레기”는 “허섭스레기”를 잘못 발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허접이 현재 우리가 말하는 뜻으로 조선시대부터 이미 쓰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볼 때, “허섭스럽다”는 북쪽 지방의 방언이고, “허접스럽다”가 맞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허접을 명사로만 보아 “도망친 죄수나 노비 등을 숨기어 묵게 하던 일”이라 하고, “허접스럽다”는 형용사로 보아 “허름하고 잡스러운 느낌이 있다.”라고 하여 둘을 연결시켜 설명하지 않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어 이 글을 쓴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