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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육신관련/사육신기록

사육신왕조실록기록(세조2년6월2일)-김질의고변

by 竹溪(죽계) 200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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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2년 6월 2일 (경자)

성균 사예 김질과 우찬성 정창손이 성삼문의 불궤를 고하다  

 

성균 사예(成均司藝) 김질(金礩)이 그 장인인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 정창손(鄭昌孫)과 더불어 청하기를,

“비밀히 아뢸 것이 있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인견(引見)하였다. 김질이 아뢰기를,

 

“좌부승지(左副承旨) 성삼문(成三問)이 사람을 시켜서 신을 보자고 청하기에 신이 그 집에 갔더니, 성삼문이 한담을 하다가 말하기를, ‘근일에 혜성(彗星)이 나타나고, 사옹방(司甕房)의 시루가 저절로 울었다니, 장차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하므로, 신이 말하기를, ‘과연 앞으로 무슨 일이 있기 때문일까?’ 하였습니다. 성삼문이 또 말하기를, ‘근일에 상왕(上王)이 창덕궁(昌德宮)의 북쪽 담장 문을 열고 이유(李瑜)978) 의 구가(舊家)에 왕래하시는데, 이것은 반드시 한명회(韓明澮) 등의 헌책(獻策)에 의한 것이리라.’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무슨 말인가?’ 하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그 자세한 것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상왕(上王)을 좁은 곳에다 두고, 한두 사람의 역사(力士)를 시켜 담을 넘어 들어가 불궤(不軌)한 짓을 도모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윽고 또 말하기를, ‘상왕(上王)과 세자(世子)는 모두 어린 임금이다. 만약 왕위에 오르기를 다투게 된다면 상왕을 보필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모름지기 그대의 장인[婦翁]을 타일러 보라.’ 하므로, 신이 말하기를, ‘그럴 리가 만무하겠지만, 가령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장인이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좌의정(左議政)979) 은 북경(北京)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우의정(右議政)980) 은 본래부터 결단성이 없으니, 윤사로(尹師路)·신숙주(申叔舟)·권남(權擥)·한명회(韓明澮) 같은 무리를 먼저 제거해야 마땅하다. 그대의 장인은 사람들이 다 정직하다고 하니, 이러한 때에 창의(唱義)하여 상왕(上王)을 다시 세운다면 그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신숙주는 나와 서로 좋은 사이지만 그러나 죽어야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신이 처음에 더불어 말할 때에는 성삼문은 본래 언사(言辭)가 너무 높은 사람이므로, 이 말도 역시 우연히 하는 말로 여겼는데, 이 말을 듣고 나서는 놀랍고도 의심스러워서 다그쳐 묻기를, ‘역시 그대의 뜻과 같은 사람이 또 있는가?’ 하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응부(兪應孚)도 알고 있다.’ 하였습니다.”

 

하니, 명하여 숙위(宿衛)하는 군사들을 집합시키게 하고, 급하게 승지(承旨)들을 불렀다. 도승지 박원형(朴元亨)·우부승지 조석문(曹錫文)·동부승지 윤자운(尹子雲)과 성삼문(成三問)이 입시(入侍)하였다. 내금위(內禁衛) 조방림(趙邦霖)에게 명하여 성삼문을 잡아 끌어내어 꿇어앉힌 다음에 묻기를,

“네가 김질과 무슨 일을 의논했느냐?”

하니, 성삼문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참 동안 있다가 말하기를,

“청컨대 김질과 면질(面質)하고서 아뢰겠습니다.”

하였다. 김질에게 명하여 그와 말하게 하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삼문이 말하기를,

 “다 말하지 말라.”

하고서 이어 말하기를,

 

“김질이 말한 것이 대체로 같지만, 그 곡절은 사실과 다릅니다.”

하였다. 임금이 성삼문에게 이르기를,

“네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였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지금 혜성(彗星)이 나타났기에 신은 참소(讒訴)하는 사람이 나올까 염려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그를 결박하게 하고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내가 네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폐간(肺肝)을 보는 듯이 하고 있으니, 사실을 소상하게 말하라.”

하고, 명하여 그에게 곤장을 치게 하였다. 성삼문이 말하기를,

“신은 그 밖에 다른 뜻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같이 공모한 자를 물었으나 성삼문은 말하지 아니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는 나를 안 지가 가장 오래 되었고, 나도 또한 너를 대접함이 극히 후하였다. 지금 네가 비록 그 같은 일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내 이미 친히 묻는 것이니, 네가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네 죄의 경중(輕重)도 역시 나에게 달려 있다.”

하니, 대답하기를,

“진실로 상교(上敎)와 같습니다. 신은 벌써 대죄(大罪)를 범하였으니, 어찌 감히 숨김이 있겠습니까? 신은 실상 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과 같이 공모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들뿐만이 아닐 것이니, 네가 모조리 말함이 옳을 것이다.”

하니, 대답하기를,

“유응부(兪應孚)와 박쟁(朴崝)도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명하여 하위지를 잡아들이게 하고 묻기를,

“성삼문이 너와 함께 무슨 일을 의논하였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신은 기억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성변(星變)의 일이다.”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전날 승정원(承政院)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변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성변의 일로 인하여 불궤(不軌)한 일을 같이 공모했느냐?”

하였으나, 하위지는 말하지 아니하였다. 또 이개에게 묻기를,

“너는 나의 옛 친구였으니, 참으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네가 모조리 말하라.”

 하니, 이개는 말하기를,

 

“알지 못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 무리들은 즉시 엄한 형벌을 가하여 국문(鞫問)함이 마땅하나, 유사(有司)가 있으니, 그들을 의금부에 하옥하라.”

하고, 여러 죄수가 나간 다음에 임금이 말하기를,

“전일에 이유(李瑜)의 집 정자를 상왕(上王)께 바치려고 할 때에 성삼문이 나에게 이르기를, ‘상왕께서 이곳에 왕래하게 되신다면 참소하고 이간질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하기에 내가 경박하다고 여기었더니 지금 과연 이와 같구나.”

하였다. 임금이 윤자운(尹子雲)을 노산군(魯山君)에게 보내어 고하기를,

 

“성삼문은 심술이 좋지 못하지만, 그러나 학문을 조금 알기 때문에 그를 정원(政院)에 두었는데, 근일에 일에 실수가 많으므로 예방(禮房)에서 공방(工房)으로 개임(改任)하였더니, 마음으로 원망을 품고 말을 만들어내어 말하기를, ‘성왕께서 이유(李瑜)의 집에 왕래하는 것은 반드시 가만히 불측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하고, 인하여 대신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이제 방금 그를 국문(鞫問)하는 참입니다.”

하니, 노산군이 명하여 윤자운에게 술을 먹이게 하였다. 공조 참의(工曹參議) 이휘(李徽)는 사실이 발각되었다는 말을 듣고, 정원(政院)에 나와서 아뢰기를,

 

“신이 전일에 성삼문의 집에 갔더니, 마침 권자신(權自愼)·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성삼문이 말하기를, ‘자네는 시사(時事)를 알고 있는가?’ 하고 묻기에, 신이 ‘내가 어찌 알겠나?’ 하였더니, 성삼문이 좌중을 눈짓하면서 말하기를, ‘자네가 잘 생각하여 보게나. 어찌 모르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묻기를, ‘그 의논을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 하였더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박중림(朴仲林)과 박쟁(朴崝) 등도 역시 알고 있다.’ 하기에, 신이 곧 먼저 나와서 즉시 아뢰고자 하였으나,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감히 즉시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으로 나아가서 이휘를 인견하고, 다시 성삼문 등을 끌어들이고, 또 박팽년 등을 잡아와서 친히 국문하였다. 박팽년에게 곤장을 쳐서 당여(黨與)를 물으니, 박팽년이 대답하기를,

“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이개(李塏)·김문기(金文起)·성승(成勝)·박쟁(朴崝)·유응부(兪應孚)·권자신(權自愼)·송석동(宋石同)·윤영손(尹令孫)·이휘(李徽)와 신의 아비였습니다.”

하였다. 다시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의 아비까지도 숨기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대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그 시행하려던 방법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성승·유응부·박쟁이 모두 별운검(別雲劍)이 되었으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 시기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제 연회에 그 일을 하고자 하였으나 마침 장소가 좁다 하여 운검(雲劍)을 없앤 까닭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대개 어전(御殿)에서는 2품 이상인 무반(武班) 2명이 큰 칼을 차고 좌우에 시립(侍立)하게 되어 있다. 이날 임금이 노산군과 함께 대전에 나가게 되고, 성승·유응부·박쟁 등이 별운검(別雲劍)이 되었는데, 임금이 전내(殿內)가 좁다고 하여 별운검을 없애라고 명하였다. 성삼문이 정원(政院)에 건의하여 없앨 수 없다고 아뢰었으나 임금이 신숙주(申叔舟)에게 명하여 다시 전내(殿內)를 살펴보게 하고, 드디어 〈별운검이〉 들어가지 말게 하였다.】 후일에 관가(觀稼) 할 때 노상(路上)에서 거사(擧事)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개에게 곤장을 치고 물으니, 박팽년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머지 사람들도 다 공초(供招)에 승복(承服)하였으나, 오직 김문기(金文起)만이 〈공초(供招)에〉 불복(不服)하였다.

 

밤이 깊어지자 모두 하옥하라고 명하였다. 도승지 박원형(朴元亨)·좌참찬 강맹경(姜孟卿)·좌찬성 윤사로(尹師路)·병조 판서 신숙주(申叔舟)·형조 판서 박중손(朴仲孫) 등에게 명하여 의금부 제조(義禁府提調) 파평군(坡平君) 윤암(尹巖)·호조 판서 이인손(李仁孫)·이조 참판 어효첨(魚孝瞻)과 대간(臺諫) 등과 함께 같이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유성원(柳誠源)은 집에 있다가 일이 발각된 것을 알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원전】 7 집 134 면

成均司藝金礩與其妻父議政府右贊成鄭昌孫, 請有密啓, 上御思政殿引見。 礩曰: “左副承旨成三問, 使人請見臣, 臣往其家, 三問因閑話言曰, ‘近日彗星見, 司饔房甑自鳴, 將有何事’, 臣曰, ‘果將何以?’ 三問又曰, ‘近日上王開昌德宮北墻門, 往來瑜舊家, 此必因韓明澮等獻策也’, 臣曰, ‘何也’, 三問曰, “未知其詳。 然不過置上王隘地, 令一二力士踰墻而入, 圖爲不軌耳。’ 俄而又曰, “上王及世子, 皆幼少之君。 萬一爭立, 則輔上王者正也。 須諭爾婦翁。’ 臣曰, ‘萬無此理, 假使有之, 吾妻父獨何能爲?’ 三問曰, ‘左議政赴京未還, 右議政本無決斷, 如尹師路、申叔舟、權擥、韓明澮輩, 當先去之。 汝婦翁人, 皆以爲正直, 當此之時, 唱義復立上王, 則其誰不從? 叔舟吾所相善者, 然死當矣。’ 臣初與語以爲三問本言辭太高, 此亦偶然而發耳, 及聞是言驚疑, 因問曰, ‘亦有如君意者乎?’ 三問曰, “李塏、河緯地、兪應孚知之。’” 命集宿衛軍士, 急召承旨等。 都承旨朴元亨、右副承旨曺錫文、同副承旨尹子雲及三問入侍。 命內禁衛趙邦霖執三問退跪, 問曰: “汝與礩論何事?” 三問仰天久之曰: “請與礩面質而啓。” 命礩語之, 語未訖, 三問曰: “勿盡言。” 乃曰: “礩所言大同, 而其曲節阿曲。” 上謂三問曰: “汝以何意而言之乎?” 對曰: “今彗星見, 臣恐讒人出矣。” 上命縛之曰: “汝必有深意。 予見汝心, 如見肺肝然, 其詳言之。” 命杖之。 三問曰: “臣更無他意。” 上問同謀者, 三問諱之。 上曰: “汝知我最久, 予之待汝亦極厚。 今汝雖爲如此事, 予旣親問, 汝不可有所隱。 汝罪輕重亦在於予。” 對曰: “誠如上敎。 臣旣犯大罪, 安敢有隱? 臣實與朴彭年、李塏、河緯地、柳誠源同謀。” 上曰: “非特此也, 汝宜盡言。” 對曰: “兪應孚、朴崝亦知之。” 命拿入河緯地問曰: “成三問與汝論何事?” 對曰: “臣不能記。” 上曰: “星變事。” 對曰: “臣前日到承政院, 始知星變。” 上曰: “因星變共謀不軌之事?” 緯地諱之。 又問李塏曰: “汝予之舊人也, 誠有如此事, 則汝其盡言。” 塏曰: “未知。” 上曰: “此輩當卽嚴刑鞫問, 然有司在, 其下義禁府。” 諸囚出, 上曰: “前日欲進瑜家亭子於上王, 三問謂予曰, ‘上王之往來於此也, 恐有讒間之人。’ 予以爲輕薄, 今果若此。” 上遣子雲往告魯山曰: “成三問心術不肖, 然以粗知學問, 置之政院, 近日事多失錯, 以禮房改任工房, 心懷怨懟造言曰, ‘上王往來瑜家, 必有陰爲不測之事。’ 因欲盡殺大臣, 今方鞫之。” 魯山命饋子雲酒。 工曹參議李徽聞事覺, 詣政院啓曰: “臣前日往成三問家, 適權自愼、朴彭年、李塏、河緯地、柳誠源來會飮酒。 三問曰, ‘汝知時事乎?’ 臣曰, ‘吾安得知?’ 三問目坐中曰, ‘汝審思之, 豈不得知?’ 臣問曰, ‘此議知者幾人?’ 三問曰, ‘朴仲林、朴崝等亦知。’ 臣乃先出, 欲卽進啓, 然未知其實, 不敢卽啓。” 上御思政殿引見李徽, 更拿致三問等, 又捕彭年等而來, 親鞫之。 命杖彭年問黨與, 對曰: “成三問、河緯地、柳誠源、李塏、金文起、成勝、朴崝、兪應孚、權自愼、宋石同、尹令孫、李徽及臣父耳。” 更問, 對曰: “臣父尙不敢隱, 況他人乎?” 問其施爲, 對曰: “成勝、兪應孚、朴崝皆爲別雲劍, 則何難之有?” 問其時, 對曰: “昨日之宴欲爲之, 適因地窄除雲劍, 故未果。【凡御殿, 武班二品以上二人, 佩大劍立侍左右。 是日上與魯山同御殿, 故成勝、兪應孚、朴崝等爲別雲劍也。 上以殿內狹隘, 命除別雲劍。 三問建議政院, 更啓不可除, 命叔舟更審殿內, 遂命勿入。】 欲於後日觀稼時, 於路上擧事。” 杖訊李塏, 對如彭年。 餘皆服招, 惟文起不服。 夜深命皆下獄。 命都承旨朴元亨、左參贊姜孟卿、左贊成尹師路、兵曹判書申叔舟、刑曹判書朴仲孫等, 與義禁府提調坡平君^尹巖、戶曹判書李仁孫、吏曹參判魚孝瞻及臺諫等同鞫之。 誠源在家知事覺, 自刎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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