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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유행어모음

1970년대 서울 유행어

by 竹溪(죽계) 2006.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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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서울의 유행어

 

   1970년대에 들어서자 서양에서 유행하던 히피바람이 우리 나라에도 상륙하였다. 이때「장발족」이 생겼고,「청바지」가 등장하고「통기타」를 메고「청년문화 · 대학문화」라는 말이 생겨났다. 장발족을「상록수」라고 비꼬았다.
1970년대에 접어 들면서 사용빈도가 많아졌던「핵가족」은「노인문제」를 사회문제로 등장시켰다. 이 당시에「잘했군, 잘했어」의 노래가 유행했는데 이 노래가 반어법으로 풍자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1972년도 하반기를 거쳐 이 해 말부터는「유신시대」에 접어들고「유신헌법」이라는 말이 등장하고「유신교수」라는 말도 입에 오르내렸다.「긴급조치」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입조심을 하라」는 말이 퍼졌다. 이때에는 언론의 자유가 철저히 봉쇄되었던 시기라 하겠다.
새마을운동」과 함께「새마을」이라고 하는 말이 등장하고 시골에서는 전통적인 문화에 대한 것을 청산한다고 사당이나 굿당 등의 문화재를 파괴해 버리는 비문화적인 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초가를 없애고 기와집이나 현대식 가옥으로 바꾸었고「새마을다리」,「새마을길」,「새마을호」등 새마을운동이 활발하여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손실을 끼쳤다고 하겠다.
「유신국회」에 대해서는「행정부의 시녀」라고 했고 한 선거구에서 두 명의 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에 대해「동반당선, 형제정당」이라는 말이 생겼는가 하면,「형님 먼저, 아우 먼저」등의 말이 나오기도 하였다.
또「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라는 직함이 지방의 유지가 되었다. 유신시대에도「반체제인사, 민주회복운동 · 양심선언」등의 말들이 등장하였다.
관리들이 쓰는 말에는「에너지 절약, 일련의 사태, 일부 소수, 분위기 조성, 비위공무원, 부조리, 서정쇄신」등의 말들이 쓰였으며 고속도로의 개통으로「고속버스, 톨게이트, 일일생활권」등의 언어들이 우리 생활 속에 밀착하게 되었다. 외자(外資)를 끌어다 공장을 건설했지만, 외자의 낭비가 심했고「문어발 기업, 부실기업」등의 문제가 생기고「무역적자, 외채합작회사」라는 말이 태어났다.
사회적으로 1970년대 중반 일본 관광객들이 우리 나라에 몰려오면서「기생관광, 기생파티, 현지처」등의 말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 시대에 밀수보석 거래와 관련된「보석부인」들이 나왔고 부동산 투기와 함께「복부인」이 등장하고, 골동품에까지 손을 대는 골부인(骨婦人)들이 등장하였다. 이 시대에「무역, 수출」이라는 말이 생겨나 활기를 띄었다.
이 시대 대학생들의 속어를 살펴보면 1971년에 미니 스커트를「따오기」라 하였다.「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의 동요에서 유래된 말이다.
1972년에는 피임제를「지우개」라고 했는데 여고생 책가방에서 피임제가 나와서 한때 언론에서 떠들썩했고, 학부모들을 긴장케 하였다.
1973년에는 얼굴이 넙적한 사람은「지방자치제」이고 얼굴이 오목한 사람은「중앙집권제」이며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 사람은「삼권분립」이라 하였다.
1974년에는「조총련계 추석성묘단」이 한국에 오게 됨으로써 국내외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더구나 국립극장에서 조총련계 성묘단의 위안공연에서 김희갑의「불효자는 웁니다」 노래는 그들을 눈물의 바다로 휘몰았고 시청자들도 눈물을 흘렸다. 육영수여사가 조총련계에 저격당한 다음 해에 조총련계 성묘단을 기획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큰 용단이었고 성공적이었다고 하겠다.
처음으로 우리 국군이 해외로 파견되었는데 「월남파병」이 그것이고 당시 육군으로서는「맹호부대」, 해병대로서는「청룡부대」였다.「베트콩」이라고 하는 말이 유행했고 상대의 숨은 행동을 「베트공식」이라 하였다. 월남에서는 한국을「따이한」이라고 불렀다. 1975년「월남패망」은 반공국가인 우리 나라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우리 국민들을 우울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해에「최루탄시대」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학원가에 데모가 그치지 않았다.
1975년도에는「삼무주의(三無主義)」라는 말이 쓰였는데「보지도 말고, 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자」의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경직된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1976년에 교제하는 사람은 여러 명이 있는데 별로 사귈만한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레퍼토리는 많은데 히트송이 없다」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1977년에는「피보기 미팅」이란 말이 쓰였고 1978년에는「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속담이「남녀칠세지남철」이라는 말로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1979년에는「장부일언이 중천금」이라고 하는 말 대신「장부일언이 풍선껌」이라고 하는 말이 등장했는데 이는 당시의 불신세태를 꼬집은 것이라 하겠다.
공화당정권 하에서의 근대화의 물결은 행정만능을 낳았다고 하겠다. 정치는 행정에 눌려 뒷걸음질을 하였다. 돈과 권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재단하는 현실이 되었다. 정보부는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여 이른바「정보정치」라고 하는 말이 표출되고 돈과「정보정치」가 야당가에「사쿠라」를 만들어 내었다. 1979년에는 또 김영삼신민당총재 대신 정운갑총재대행이 들어서자「대행시대」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소비가 미덕」이 될 풍요의 1980년대를 예고해「바캉스」라는 말이 일상어가 될 만큼 국민들의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정은 향락산업에 불을 질렀다고 하겠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싱크대, 가스레인지 등이 보편화되었다. 한편 극성을 부리던 사채를 뿌리뽑는다고 느닷없이「대통령긴급명령」으로 사채를 동결한 이른바 8 · 3조치가 있었다.
박정희대통령은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는 결의로「조국의 근대화」,「농업의 근대화」의 정책을 펼쳤다. 박정희정권에 부정적인 인사들은「군사독재」라고 항변했지만 우리는「서양식 민주주의」와 다른「한국적 민주주의, 민족적 민주주의」여야 된다는 이론으로「선의의 독재」를 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야권에서는「안보정권」이라고 비난하였다.
제3공화국에 들어서면서 TV의 방영이 시작됐고 처음에는 흑백 TV였다. 4공화국 말기에 흑백TV에서 칼라TV로 바뀌어 문자 그대로「칼라시대」가 되었고, TV는「바보상자」라는 말이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경제면에서는「수출 1억불 달성」이라고 나라 안이 떠들썩해서 국민들에게 수출에 대한 꿈을 부풀게 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고도성장, 경제성장 10% 초과,「한강의 기적」등의 용어가 신문지상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TV출현과 함께「탤런트」라는 말이 청소년과 부녀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KBS에서 시작한「이산가족 찾아주기」프로는 국내외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했으며 TV가 지니는 엄청난 영향과 반영을 보여준 것으로서 시청자들을 연일 눈물짓게 하였다.
「유신체제」가 강화되면서 언론이 더욱 통제되자 알고자 하는 국민의 욕구에 맞춰「카더라 방송」과「유비통신」이란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냈다.
이 시대에 부녀자들까지도 도박판에 뛰어 들어「도리짓고땡」이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10 · 26 직후 나온「한다면 합니다」와「버러지같은 놈」,「형님 거기서 뭘 하십니까, 똑똑한 놈 세놈만」이라는 말들이 화제가 되었다. 이러한 말들이 고등학교 학생들의 대학시험을 격려하는 격문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1980년 초 세상은 온통「민주화바람」으로 가득 찼다.「서울의 봄, 정치의 봄」이란 말이 크게 나돌았고,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3김씨」는 저마다「대권」을 꿈꾸고 동분서주하였다.
5 · 15로「3김」과 함께「부정축재자」들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서게 되었다. 이때「싹쓸이, 오야 맘대로」라고 하는 말 등 이른 바「고스톱」이라는 도박용어가 구석구석 활개를 쳤다. 이때에「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을 바꾼「오는 말이 거칠어야 가는 말이 부드럽다」로 현실을 풍자하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성행한 전국 어디서나 유행하고 있는「고스톱」은「고스톱 망국론」까지 나올 정도로 번져 나왔다. 이「고스톱」은 일본의 화투에서 생겨난「민화투, 육백, 도리짓고땡, 섰다」다음에 생겨난 도박이다. 고스톱은 1970년대 중반의 부동산 투기와 병행하여 투기심이 짙은 도박으로 변질하였다.
「이주일 고스톱」이라고 하는 것도 있다. 이주일이 자주 쓰는 말「뭔가 보여 주겠다」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바닥에 깔린 화투패를 몽땅 쓸어가는「판쓸이」를 할 경우 피(껍데기) 한장씩을 뺏어올 뿐더러 상대방의 패를 마음대로 뽑을 수 있으며「고」나「스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웅산 고스톱」은 김일성집단에 의한 테러사건에서 본딴 것으로 점수가 나게 되면 일확천금을 할 수 있게 된다. '고'를 세번 부르면 갑절, 승자가 '피'로 점수를 올렸을 때 패자가 피 6장 미만이면「피바가지」라고 해서 갑절, 5광을 해도 갑절, 갑절이 두번 겹치면 4곱으로 치는 노름이다.
「네로 고스톱」은「판쓸이」를 할 때 상대방이 갖다 놓는 것 중 자기에게 필요한 것 한장씩을 가져올 수 있어 웬만하면 이기게 된다.
「마르코스 고스톱」은 그의 장기집권을 본따 붙여진 이름이다. 한번 先을 잡은 사람이 화투패를 돌린 다음 상대방의 패를 모두 보고 나서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 즉 패가 나쁘게 들어 승산이 없는 사람만 골라 치게 하고,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기권을 시키는 노름으로 계속하여 선이 이기도록 하는 노름이다.
이밖에「통수 고스톱, 3통 고스톱, 티끌 고스톱, 흔드는 고스톱, 엿장수 고스톱」이 있고 규칙적으로「설사, 판쓸이, 김지미덤, 갑오먹기, 삼봉고스톱」등이 있다.
이러한 고스톱의 여러 형식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욕구 불만을 이러한 도박으로 해소하려는 병리적인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5 · 17 후 큰 돈을 만지다 보면 작은 돈을 만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뜻의「떡고물」이야기가 부정축재자로 몰린 사람의 입에서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궁정동의「최후의 만찬」에 참석했던 여인을 놓고「그때 그사람」이란 노래제목이 널리 퍼졌다.
1981년 윤종화노파와 박상은 암살 살해사건 때 경찰이 뚜렷한 물적 증거없이 심증만으로 유력한 용의자를 조작, 취조해 자백을 받아낸 데서「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다」라고 하는 말이 크게 유행하여 당시 경찰을 비꼬았다.
「섰다」라는 도박의 족보를 보면 38선을 뜻하는「3 · 8」이 있고「1 · 4 후퇴」를 뜻하는「1 · 4」가 있고 5 · 16을 상징하는「5 · 7」이 있고 10 · 26을 상징하는「장(10)팔(2+6)」이 있다.「5 · 7」은 공화당시대에 군대 내에서 생겨난 족보이고「장 · 팔」은 10 · 26 후에 생겨난 족보이다. 이렇게 도리짓고땡의 용어나 섰다의 족보에 엄청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날자가 등장된다는 것은 우리 나라 도박심리는 매우 정치적이고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분이 좋거나 멋이 있을 때「왔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도박을 할 때 자기가 원하는 끗수의 패가 났을 때 하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왔다」라고 하는 말은 상대의 기를 죽이려는 속임수로도 쓰였다.
「삥땅」이라고 하는 말은 돈을 조금 떼어 갖는 뜻을 지닌 말인데 이 말도 도박용어에서 나온 말로서「1땅」을 뜻하는 말이다. 땅 중에서 가장 낮은 땅이기 때문에 돈을 조금 떼어 갖는다는 뜻을 지닌다. 이렇게 도박용어에 쓰이는「왔다」나「삥땅」등이 일반어에 등장하여 쓰이고 있다는 것은 병든 사회심리의 반영이라 하겠다. 착실하게 벌어서 얻은 것이 아니고 요행으로 벼락부자가 되려는 하나의 도박심리라 하겠다.
다음으로 1970년대에 사용된 은어와 속어를 살펴보자. 이러한 은어와 속어를 통해 당시의 서울의 풍속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서울 걸인들의 은어를 살펴본다. 서울의 어두운 면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 걸          ----  밥            냉걸        ----  찬밥
왕걸        ----  고기            꿀꿀이      ----  식당밥
쿠사리      ----  썩은 음식       쫄쫄이      ----  술
왕초        ----  거지의 두목     내초        ----  갓나온 거지
묵내        ----  시골 거지       묵은초      ----  오래된 거지
양아치      ----  거지    
쿠사리대감  ---- 썩은 음식을 주워 먹는 거지
게비짱      ----  사회인, 신사    따롱쟁이    ----  아편쟁이
장패뚜루기  ----  초상집          꽃두루기    ----  잔치집
빵두럭      ----  형무소          쌔리간      ----  파출소
하마리뚜루기----  환갑잔치집      맹꽁이      ----  수갑
싱          ----  돈              강짜        ----  도둑
꽃재비      ----  소매치기        째리        ----  경찰관
짜부        ----  형사            
하꼬노리 ---- 열차간 소매치기 도룩개비 ---- 밤도둑질 꼴 ---- 옷 개코 ---- 구두 구뽁 ---- 헌옷 멍첨지 ---- 개 올림대 ---- 숟가락


서울 시내 상인들이 쓰는 수에 대한 은어를 살펴 본다. 이 은어는 상인들끼리만 통하는 말로서 손님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게 쓰는 말이다.

<표 : 서울 시내 상인들이 쓰는 수에 대한 은어>

평화시장 상인들의 은어를 예로 들었지만 남대문시장 상인들과도 공통된다고 하겠다. 1이면 야리이고 22면 후리후리이고 23이면 후리갓지라 한다. 돈의 단위도 물건의 대상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양말가게에서 야리라고 하면 100원이지만 가죽잠바가게에서는 만원을 뜻한다. 시장에서 쓰이는 은어는 일제 때에 쓰이던 것이 1970년대에 이르도록 그대로 쓰이고 있다. 상인들은 자기들이 쓰고 있는 은어가 일제 때부터 쓰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쓰고 있다. 경동시장의 청과물시장에서 쓰이는 먹주(1)는 먹줄의 말음근이 탈락한 것이 아닌가 한다. 먹줄로 줄을 칠 때「―」자로 치게 되기 때문에 거기서 생긴 말이 아닌가 한다. 이렇듯 상인들 간에는 손님이 모르는 말을 씀으로서 상인들끼리만 아는 은어를 쓴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이발관과 맹인사회에서 쓰이는 은어를 살펴본다.

<표 : 이발관과 맹인사회에서 쓰이는 은어>

이발관에서 쓰이는 은어인 샤(1), 농(2), 미미(3) 등은 일제 때에 쓰이던 은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다. 이발업이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기 때문에 일본 이발업자들이 쓰던 은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다고 하겠다. 미미(3)는 일본어로 귀(耳)의 뜻으로「3」이 귀의 모양을 닮았다.
맹인들의 은어에는 한자어가 많다고 하겠다. 순앙자(10)는 10은 순(旬)에 해당된다.「앙자」는 장(杖)이「자앙」으로 음절이 늘어난 것이며「자앙」을 거꾸로 하면「앙자」가 된다.
맹인들의 은어에「아가사」는 돈의 뜻을 지닌다.「삯」을「사아악」으로 늘어뜨리고 거꾸로 하면「아가사」가 된다.
운동해설가들의 입에서 일본어인「곤죠(근성)」이란 말이 튀어 나오는가 하면 미장원에서는「시아게(마무리)」,「하다(살결)」등이 그대로 쓰이고 양복점에서는「시다(아래서 일하는 사람)」라는 말이 쓰였다. 볼우물을「에주보」라 했고「무뎃뽀(막무가내)」라는 일본말이 TV에서 그대로 흘러 나왔다. 1970년대에 유행한 참새시리즈를 살펴 본다.

「 부부참새가 앉아 있다가 총에 맞았다. 그런데 세 마리가 죽었다. 그 이유는?
「암컷은 임신 중」.........
여러 마리의 참새가 앉아 있다가 포수를 보자 모두 날아갔는데 그 중 한 마리는 두리번거리면서 날아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골이 비어서」
전선에 앉아 있는 참새를 포수가 쏘려고 하는데 참새가 쉬를 했다.
포수「넌 팬티도 안입고 다니냐」
참새 「포수는 쉬할 때 팬티 입어?」
참새가 가장 무서워 하는 장소는?
「여자가 셋 모인 장소」
참새 세 마리가 전선에 앉아 있다가 한 마리는 맞아 떨어졌다. 두 마리의 참새가 「이제 짝이 맞게 됐군」
포수가 한 눈을 감는 이유는?
「애꾸눈」
참새 세 마리가 전선에 앉아 있다. 포수가 총을 쏘았는데 빗맞았다. 그러나 한 마리의 참새도 날아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 마리는 골이 비고 한 마리는 귀머거리고 한 마리는 간덩이가 부어 있다.」
포수가 총을 쏘는 것을 보고 참새가 무서워하지 않고 있다가 맞았다. 그 이유는?
「포수가 한 눈을 감고 있어 윙크하는 줄 알았다.」
전선에 두 마리의 참새가 앉아 있다가 암컷이 포수의 총에 눈을 맞았다. 수컷이 하는 말?
「너 윙크 예쁘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참새시리즈에는 피해받는 서민들의 의식이 강해 피해자에 대한 동정을 엿볼 수 있으며 피해자의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가해자에 대한 저항의식을 강조한다고 보겠다. 참새가 포수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일종의 오기일 수도 있다. 총을 쏘는 것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다가 맞는 이유를 포수가 한눈을 감은 것을 윙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이는 가해자들의 기만적인 면을 풍자하고 있다.
포수가 총을 겨눌 때 한 눈을 감는 것을 애꾸눈으로 풍자한 것은 가해자에 대한 병적인 면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병신 육갑한다」라는 속담과 연결되는 것이라 하겠다. 암컷의 눈에 총을 맞는 것을 보고 수놈이「너 윙크 예쁘다」라고 풍자한 것은 부부간의 윤리의식과 인간성의 파괴현상을 엿볼 수 있다.
총소리를 듣고 날아가지 않은 이유가 골이 비고 귀머거리이고 간덩이가 부어 있다고 한 것은 자학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언론이 통제되고 군인문화에 대한 저항과 이에 따르는 자학이라 하겠다.
특히 1970년에 시인 김지하(金芝河)가 야당기관지에「오적(五賊)」이라는 시를 써서 큰 화제와 물의를 일으켰다. 오적이란「국회의원, 장차관(長次官), 장성(將星), 고급공무원, 재벌」들을 일컬음이었다.
1974년에는 이른바 일본에서의「김대중 납치사건」이 국내외에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다음으로 1970년대에 유행했던 약어(略語)를 살펴보기로 한다.

「 현모양처
「현저하게 히프모양이 양쪽으로 처진 사람」
절세미녀
「절간에서 세들어 사는 미친 여자」
개성미
「개같은 성미」
종빙고
「종강을 빙자한 고고파티」
영세민
「영리하고 세련된 민주시민」
지랄하다
「지적이고 발랄하다」
선구자
「선천성 구제불능성 자기 상실자」
노약자석
「노련하고 약삭 빠른 사람이 앉는 자리」
형사
「형편없는 사기꾼」
귀빈
「귀찮은 빈대
」 바보
「바라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
오물
「오늘의 물주」
졸업
「졸지에 실업자가 되는 것」
동문서답
「동대문에 서 있으면 답십리가 환히 보인다」」

약어의 특성은 반어 또는 반어법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귀빈은「귀찮은 빈대」고 바보는「바라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과 같이 반어법이 특징이다. 이것은 현실을 역설적인 면으로 보는 젊은이들의 현실인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약어에서 가장 많이 발달한 것은 이성관계, 음식관계 그리고 학교생활에 관한 말들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사상과 주의가 바뀌게 되면 언어도 전통적인 것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앞서 든 광복 후에 생겨난 말들은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언어도 전통적인 힘을 잃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르신, 삼강오륜, 효자, 열녀, 예절, 도덕, 정의, 진실, 윤리, 양심 등의 말들이 탈색되어 가고 있다 하겠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가「오는 말이 거칠어야 가는 말이 부드럽다」로 바뀌어 경직된 사회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남녀 칠세 지남철」「장부일언이 풍선껌」등은 유교적인 전통과 사회의 진실성이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것을 표출하고 있다 하겠다.
「핵가족」이라는 말은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붕괴를 의미하고 있다.「고속도로, 일일생활권」등의 말들은 지역의 차이를 좁게, 가깝게 했다.
언어가 사회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건강한 전통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건강한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하겠다. 인간의 행동은「인간의 언어」에 의해 유도되고 있기 떄문이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주술적인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형성하고 감정을 유발시키며 의지의 행동을 인도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과 성격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세상에 관하여 논할 때 말의 성질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말이 된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앞서 든「폭력, 비민주적, 부정적인 요소」를 지닌 언어들을 하루 속히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제거해야 언어적인 면에서 사회발전을 돕고 정화하는 길이 될 것이며 전통적인 것을 계승하는 길이 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보다 건강하고 활기 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출처 : 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8-10-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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