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생의세계/매창

비운의 기녀시인 매창의 사랑

by 竹溪(죽계) 2005. 12. 22.
728x90
SMALL

고전문학기행 - 비운의 기녀시인 매창(梅窓)의 사랑



  개인적 정서 표현이 중심을 이루는 시조는 조선조 사대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사랑과 이별이 예술로 승화되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로는 기녀(妓女)들의 것이 많다. 그것은 기녀가 살았던 신분적 질곡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한이 응어리진 까닭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예술적 능력이 중요시되었던 기녀들의 삶의 방식과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황진이, 홍랑, 한우, 매창 같은 기녀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중 전라도 부안의 지방 기녀였던 매창은 풍류시인이면 누구나 만나고 싶어할 정도로 시(詩)를 잘 지었다. 그녀는 당대 최고 시인이었던 유희경과 사랑을 나누었고, 그 당시 최고의 문호라 할 수 있었던 허균과도 교분이 깊었던 사람이었다.

 

 

  38살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버린 매창은 부안의 아전이었던 이탕종의 딸로 1573년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글을 배웠고, 아버지가 돌아간 후에는 기생 신분이 되었다.

 

  어린 나이로 현감에게 수청을 들었으나 버림을 받은 후 홀로 지내다가 유희경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유희경과 이별한 후 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정서를 이렇게 노래했다.

 

“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 시조는 봄의 이별과 가을의 만남이 자연현상과 반대로 묘사되고 있어서 그 예술적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소생의 계절인 봄은 만남의 시간이고, 죽음의 계절인 가을은 이별의 시간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반대로 설정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별의 슬픔은 예술로 승화시키고, 바람과 낙엽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정서는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과 낙엽을 따라 천리에 오가는 꿈은 영원한 사랑의 꿈이 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유희경과 이별해 있는 동안 당대의 대문호인 허균이 그녀를 만났고, 허균 역시 그녀를 사랑해 10년 넘게 사귀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허균과 매창의 관계는 유희경과의 관계와는 다른 정신적인 사귐이었다.

 

   허균이 매창에게 참선을 권하는 내용의 글을 자신이 쓴 기록에서 밝히고 있는 점으로 보아 허균과 매창은 정신적인 사랑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매창은 그토록 사랑했던 유희경을 만나보지 못하고 홀로 병마에 시달리다가 1610년에 쓸쓸히 세상을 떠나게 되고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그로부터 13년 뒤에 부안의 아전들이 중심이 되어 그녀가 남긴 시(詩) 중에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58편의 작품을 모아 개암사라는 사찰에서 <매창집>을 펴내게 된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에 부안 사람들이 매창을 기리는 묘비를 세웠으며, 그 묘소는 초동들이 해마다 벌초를 했다고 하니 매창은 부안 사람 모두의 영원한 연인이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지금도 ‘매창이뜸’으로 불리는 부안의 공동묘역은 수천 평에 이르는 ‘매창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소중한 문화유적지로서 훌륭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가 즐겨 찾았던 곳으로 보여지는 상소산(上蘇山)의 서림(西林)에 있는 금대(琴臺)의 혜천(惠泉)이란 샘물 옆에는 1974년에 세운 ‘매창시비’가 함초로히 서있다. 배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봄날에 술 한 잔을 손에 들고 매창의 유적지를 찾아보는 것 역시 우리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LIST

'기생의세계 > 매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창 관련 자료  (0) 2006.11.06
허균과 매창  (0) 2006.10.30
매창의 시짓기  (0) 2006.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