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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문학으로영화보기

'살인의 추억'에 대한 감상평

by 竹溪(죽계) 200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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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와 역사성을 잘 연결시킨 수작 "살인의 추억"

 

  살인의 추억은 우리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죽은 자만 있는 연쇄살인사건인 화성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그것을 통하여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거의 코미디 수준인 형사들의 세계를 다룬 일종의 공포물인 블랙코미디 영화인 것이다. '살인의 추억'을 이 정도의 수준에서 보면 시원하고 긴장감 넘치는 정도의 짜릿함은 충분히 맛볼 수 있다. 그렇게 감상될 수 있도록 이 영화는 만들어졌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은 그것만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 아니다. 이 영화에는 우리들에게서 잊혀져가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과 지금도 끝나지 않은 역사적 진실들이 가미되어 있다. 아니 이러한 것들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심각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심각한 것을 블랙코미디의 틀에 담아 잘 짜여진 영상예술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면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담아내고 있는지에 대해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이 영화에서 첫 번째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제목이다. 왜 살인의 추억이라고 했을까 하는 점인데, 화성 연쇄살인 사건만을 말하려고 했다면 다른 제목이 붙어야 더 어울릴 것으로 생각된다. 범박하게 말한다면 공포의 살인 같은 것들이 잘 어울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제목을 감독은 살인자가 가지고 있을 살인에 대한 기억을 추억이라는 매우 감상적인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 어떻게 살인이 추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과연 감독은 이 제목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 제목에서 감독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살인자는 그것을 살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지금도 추억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왜 살인자가 살인을 추억으로 느낀다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을까? 이것을 풀어내지 못하면 이 영화의 절반은 놓치는 셈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경찰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행동들과 말하는 것의 8할 정도는 욕설인 그들의 대화방식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경찰은 너나 할 것 없이 폭력을 서슴없이 행사하는 사람들이며, 의사소통의 대부분이 욕설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물리적인 폭력이고 하나는 언어적인 폭력인데, 이 두 가지는 기억 속에서는 가물가물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보고 들었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것들을 어디서 많이 보고 들었을까? 이런 현상들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 속에 분명히 있었던 것들인데, 시간이 상당히 흐르다 보니 우리들이 잘 느끼지 못할 뿐인 어떤 것이다. 구둣발과 주먹과 총성이 역사의 한 장면으로 장식되고 말마다 욕설이 난무하면서 지금의 우리 생활 속까지 파고 들어와 있는 그런 것들이 언제 어디에서 있었던 것일까? 그런 것들이 과연 그냥 우리가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블랙코미디 수준의 것일 수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폭력과 욕설 등을 우리는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난무하던 시대를 겪어왔고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느 때의 현상이었겠는가? 이것을 생각해내지 않으면 이 영화의 의미는 상당 부분 감소되고 말 것이다.

 

    세 번째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것으로 연쇄살인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시국문제에 대한 장치들이다. 최루탄이 등장하고 고문을 한 경찰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 당시의 지도자 내외가 등장하는 장치들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장치들은 현상적으로 등장하면서 영화에서 활동하는 형사들의 생활 속에 그대로 베어 있어서 더욱 흥미를 돋구고 있다. 형사들의 말과 행동이 바로 그 당시의 사회 현상을 그대로 드러내주면서 영화의 소재로 다루고 있는 살인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시국적인 사안들과 맞물려 돌아가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결정적인 단서가 될만한 증거를 잡았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해독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에 보내서 그 결과를 기다리게 된다. 미국에서 온 회신은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과 증거물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을 범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한 마디에 발로 뛰면서 엄청나게 고생했던 우리 형사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사람은 캄캄한 굴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남기면서 말이다. 비록 주먹구구식이긴 하지만 길고 긴 시간에 걸쳐서 수사를 해서 범인의 윤곽을 잡았던 우리 형사들은 미국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이러한 장치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이것 역시 감상자인 우리들의 몫이 아닐 수 없다.

 

    다섯째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범인으로 몰리는 사람들이다. 백광호와 공장의 노동자 등은 모두 살인자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형사들에게 당하기만 한다.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엉뚱한 말을 내뱉어서 범인으로 몰릴 뻔하기도 한다. 그리고 살인자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살인자를 직접 말하지 못하면서 가슴과 머리 등을 사정없이 짓이기는 형사에게 막대기에 박힌 녹슨못으로 상처를 입히는 정도의 행동밖에 하지 못한다.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겨우 다리 하나 정도 잘라내는 고통밖에 주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범인으로 몰릴 뻔한 사람이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살인자를 눈앞에 두고도 잡지 못하는 형사들과 선량한 사람들, 그들 모두는 시대의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정작 살인자는 잡지 못하고 살인자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정도의 상처 정도밖에 입히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그 범인은 어릴 때 누군가에 의해서 불에 던져져서 얼굴에 화상을 입었으며 살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인 그는 열차라는 거대한 힘과 부딪쳐 목숨을 잃고 만다. 그 사람이 어릴 때라면 연쇄살인 사건의 배경이 되는 시대로부터 이십 수년 전일 것이다. 그 때 그 사람을 불 속에 던져 넣었던 사람이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이다. 그 범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은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되면서도 그 살인범을 범인이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이 점을 풀어내야만 형사와 범인용의자의 행동이 이해되게 될 것이다.

   

 여섯째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살인 사건이 있는 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현재의 2003년으로 오게 되면서 살인의 현장에서 만난 소녀가 하는 말의 의미이다. 형사직을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살인 사건 담당자에게 소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며칠 전에도 여기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자신이 옛날에 했던 일이 생각나서 왔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의 사건 담당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묻는다. 그랬더니 그 소녀는 그냥 평범하게 생겼어요 아주 평범하게요. 라고 말한다. 사건 담당자에게는 너무나 큰 소름 끼치는 좌절을 안겨주었던 살인 사건이 살인자에게는 추억으로 남아있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소녀에게는 감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 있었던 사건 정도로만 인식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살인 사건은 피부로 와 닿는 어떤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것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서운 살인자였지만 이제는 무섭지도 않은 그런 존재이며, 살인자 자신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가끔 그곳에 가보는 그런 정도의 것에 사건 담당 형사는 모든 것을 걸고 뛰어 다녔던 것이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그러나 어쩌랴! 잊혀져 가는 것이 현실인 것을. 그래도 우리는 그 때의 살인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소녀의 입을 통해서 감독은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상의 것들을 눈여겨보면서 영화를 보고  그 의미를 파악한 다음 차례로 연결시켜 보면 짜릿한 전율과 함께 엄청난 공포가 밀려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쇄살인사건, 그것의 시작은 살인의 대부격인 초기의 살인자에 의해 저질러졌는데, 시기상으로는 어린아이를 불에 던지는 일을 저질렀던 1960년 초반이다. 그 때 살인을 시작한 살인자는 그 후로 계속해서 살인을 했으며, 그것을 살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해야할 일로 생각하고 지나간 것을 하나의 추억으로 여긴다. 그것이 1980년대로 이어지면서 욕설과 폭력이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화성에선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엄청난 충격과 공포로 밀려왔던 그 살인사건은 미국이라는 과학선진국에서 보내온 종이 문서 하나에 의해 해결할 수 없는 미궁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역사 속에 영원히 묻혀 버리게 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3년 그 살인자는 우리 곁에 살고 있으면서 아주 평범한 사람인양 생활하고 소녀에게 조차 조금도 거부감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소녀에게는 그 살인자가 공포로 다가오지 못하고 평범한 일상의 존재로 인식되게 된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죽은 자는 있어도 죽인 자는 없는 연쇄살인 사건, 그리고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연쇄 살인 사건, 미국에 의해서 면죄부가 주어진 살인 사건을, 이제는 우리에게 잊으라고 강요하면서 하나의 추억으로 즐기도록 해준 살인사건을,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살인자가 살인 현장을 다시 찾을 것처럼 느껴지는 살인 사건을, 총에 맞을 뻔하기는 했지만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이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살인자의 뒷모습만을 보여주어야 하는 살인 사건을, 미치도록 잡고 싶었지만 결코 범인을 잡을 수 없었던 살인 사건을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통해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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