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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땅이름문화사

땅이름 문화사(3)-밀양(密陽)

by 竹溪(죽계)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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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문화사(3)-밀양(密陽)

경상남도 남쪽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 변에 자리하고 있는 밀양은 신라 때부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던 곳이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가야와 마주하고 있는 국경 도시였기 때문이다. 한자로는 빽빽하다, 촘촘하다, 편안하다 등의 뜻을 가지는 과 태양, 햇볕 등의 의미를 지닌 이 합쳐진 말이지만 그 표현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뜻은 이런 정도가 아니라 훨씬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무척 흥미롭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서에 의하면, 밀양 지역은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이라고 불렸던 국가의 지역 중 한 고을로 추정된다. 이것을 근거로 미리미동국 자체가 밀양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미리미동국이란 이름이 붙은 곳으로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경상북도 의성 지역), 고미리동국(古彌離彌凍國-경상남도 고성 지역) 등도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리미동국이 곧 밀양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고 할 수 있다.

밀양에 대한 정확한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삼국사기󰡕인데, “밀성군은 원래 신라의 추화군(推火郡)이었는데, 경덕왕이 밀성(密城)으로 고쳤다라고 했다. 밀성군이라는 지명은 조선 말기까지 사용되다가 1895년에 밀양군으로 바뀌었으며, 지금은 밀양시로 되었다. 밀양은 추화(推火)라는 이름으로부터 지명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것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이해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된다.

추화는 이두(吏讀) 표기로 보는데, ‘는 밀다, 밀어 올리다, 받들다 등의 뜻으로 해석한 다음, 이 뜻을 근거로 해서 우리말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이 글자의 뜻에서 을 취한 다음 이것을 미르()’로 보아 로 해석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또한 ᄫᅳᆯ()’이라는 뜻을 가져왔다고 보는데, 이것은 들판을 의미하는 ()’이 변한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해석하면 밀양은 물 들판’, 혹은 물 벌판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는 뜻을 취하고, ‘은 소리를 취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같은 말을 글자로 표기할 때 아무런 원칙도 없이 뜻과 소리를 오락가락하면서 했을 정도로 당시 사람들이 우둔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주장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추화라는 지명은 신라 경덕왕 때에 밀성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물 들판이라는 뜻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경덕왕은 신라의 지명 대부분을 한자로 바꾸었는데, 아무렇게나 하지 않고 원래의 뜻을 최대한 살려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주장은 억측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다시 추화(推火)로 돌아가 보자. 지금도 밀양에는 추화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있고 그곳에는 추화산성이 있는데, 시내에서 2킬로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추화산은 밀양의 진산인 화악산에서 동남으로 뻗어 내린 줄기의 마지막 봉우리로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쳐지는 어름에 있어서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곳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신라의 서울인 경주까지는 막힘없이 들어갈 수 있으니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신라는 이곳에 산성을 쌓아 가야의 침략에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손 수)’(새 추)’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글자로 몸 안에 있던 힘을 손으로 내보내 물체를 앞으로 가게 하거나 움직이도록 한다는 뜻을 기본으로 한다. 가 이런 뜻을 기본으로 하는 이유는 (새 추)’에 있는데, 새는 앞으로만 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손으로 밀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추진(推進), 추천(推薦) 등에 가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두(吏讀)에서는 뜻뿐만이 아니라 소리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추화는 뜻이 아닌 소리를 취한 것이라고 보이기 때문에 한자의 뜻만으로 풀이하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말에서 의 발음은 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로 표기되었으며, 중국어에서는 토이()’로만 발음된다. 그런데, 앞으로 간다는 뜻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글자인 (새 추)’의 중국어 발음이 주이이기 때문에 ’, 혹은 라는 소리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다 우리말에서 거센소리이므로 기본적으로는 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 ‘라는 발음은 훈민정음이 만들어지면서 에서 분화되어 거센소리인 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 고려나 신라 등의 시대에 어떻게 발음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없어서 정확한 것을 알 수는 없지만 ’, 혹은 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을 점쳐 볼 수는 있는 것이다.

는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여 높은 온도로 빛과 열을 내면서 타는 것을 지칭하는 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중세국어에서는 ᄫᅳᆯ로 표기되었는데, 이것이 로 바뀌었다가 로 되었다. 推火에서는 뜻을 가져와서 로 한 것인데, 이것이 앞의 와 결합하여 이 탈락하고 +’, 혹은 +()’의 형태로 되었다. 그러므로 추화는 이라는 뜻을 가지는 표현을 나타내기 위한 이두 표기가 된다. 고어에서는 위()으로 표기했는데, 여기에서 이 탈락하면서 가 되고, ‘과 결합하면서 지붕으로 되기도 한다. 推火’, 혹은 지붕의 모양을 가진 물체에 대한 우리말을 이두로 표기한 것이 된다. 그래서 추화산은 집 모양의 뫼()’가 된다.

공중에서 촬영한 추화산의 사진을 보면 커다란 지붕 모양으로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 추화란 지명은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집이라는 존재는 크고 높은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므로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땅이름이 된다. 추화를 집, 혹은 지붕 모양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놓고 보면 경덕왕 시대에 밀성(密城)이라는 지명으로 바꾼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추화라는 이름은 신라 경덕왕 때에 이름이 밀성으로 바뀐 이래 고려, 조선, 근현대를 지나면서 밀주, 밀산, 밀성, 밀양 등으로 바뀌는 변화를 겪었는데, ‘이라는 글자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밀양의 땅이름이 가지는 어원과 역사적, 문화사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 대한 분석이 필수가 된다.

우리말로는 빽빽하다, 촘촘하다, 숨기다, 몰래, 은밀한 곳 등의 뜻으로 해석되는 (편안할 밀)’(뫼 산)’이 아래위로 결합한 형태이다. ‘은 집(-집 면) 앞에 무기를 든 사람들이 엄중하게 지키는 곳이란 뜻으로 편안하다, 은밀하다, 중요하다 등의 뜻을 가지는 글자이다. 즉 이 글자는 크고 높으며 편안하고 아늑한 집을 지칭하는 것이 된다. ‘의 원래 글자이기도 하다.

의 아래에 을 넣어서 산 모양이 집처럼 생겨서 넓고 높으며, 편안하고 아늑하고 비밀스럽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경덕왕 시대에는 그런 곳에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담장을 세워서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의 안쪽을 지칭하는 을 붙여서 밀성이라고 땅이름을 붙였으니, 우리말이 가지고 있었던 원래의 뜻을 그대로 잘 살려서 고친 것이ㅏ고 할 수 있다. 密州라는 지명도 있었는데, ‘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사는 큰 고을이라는 뜻이니 한층 격이 높아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 , 양기 등의 뜻으로 해석되는 이 지명으로 쓰일 때는 산의 남쪽, 강의 북쪽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땅이름에 쓰인 이 글자는 모두 이런 뜻으로 해석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울을 지칭하는 漢陽(한양)은 한강의 북쪽이요, 한산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 된다. 밀양은 밀산, 혹은 추화산의 남쪽, 밀양강의 북쪽에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 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지혜를 모아 만들어낸 땅이름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지켜온 선조들의 혜안이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밀양이란 땅이름이 가진 문화사적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이 이름이 얼마나 자연 친화적인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