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문화사 –양구(楊口)
강원도 양구군은 파로호와 소양호 사이에 있는 곳으로 춘천의 동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과 동쪽, 남쪽은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북쪽은 큰 호수로 연결되는 매우 특이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양구라는 이름은 고구려 시대나 그 이전부터 그렇게 불렸는데,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 지명은 신라, 고려, 조선을 지나면서도 뜻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글자 표기만 약간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양구라는 지명은 이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한 땅이름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정도다. 양구라는 지명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땅이름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인데, 아직도 그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양구군에서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한 지명 유래는 다음과 같다. “양구군은 고구려 시대에 요은홀차(要隱忽次)라 하였는데 신라 제35대 경덕왕 16년(757)에 양록군(楊麓郡)으로 고쳤으며 고려 때에 양구현(楊溝縣)으로 고쳤다. 선조 25년(1592) 새로 부임한 감사가 금강산에 이르는 길목의 첫 고을인 이곳을 지나다가 함춘(含春) 땅의 아름드리 수양수림(垂楊樹林)을 보고 이 고을을 양구(楊口)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까지 불려 오고 있다.”
이 설명은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하나는 고구려 시대부터 양구(楊口)라는 지명으로 불렸는데, 그 사실을 숨기면서 요은홀차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고, 둘째는 양구는 금강산 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송강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을 보면 서울에서 원주, 춘천 등을 거쳐 철원과 김화 방향으로 길을 잡고 있다. 양구를 거쳐서도 금강산으로 갈 수는 있었겠지만 중요 통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는 수양 버드나무 숲을 보고 양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口(입 구)가 지명에 들어갔는지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어떤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면서 완전히 허구인 이런 설명은 역사 기록을 조금만 살펴보았더라도 이와 같은 황당한 이야기를 지어내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양구군은 고구려 시대의 정식 명칭이 양구군(楊口郡)이었고, 요은홀차(要隱忽次)라고도 했다. 신라가 한반도의 주인이 된 후에는 양록군(楊麓郡)으로 되었다가 고려시대에는 양구현(楊溝縣)으로 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양구현(楊口縣)으로 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때부터 지금까지 양구군(楊口郡)이란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고구려 시대에 지어진 땅이름이 지금도 정식 이름으로 쓰이고 있는 셈인데, 이처럼 하나의 명칭이 오랜 세월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다 고구려 시대부터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혀 바뀌지 않고 쓰인 것이 있으니, 바로 楊(버들 양)이라는 글자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楊이 양구라는 땅이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바뀐 글자들은 口(입 구), 麓(산기슭 록), 溝(봇도랑 구) 등인데, 모두 물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양구라는 지명의 참뜻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楊을 보자. 이 글자의 뜻은 일반적으로 버드나무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게 말하면 갯버들이라는 뜻이다. 버드나무의 한 종류이지만 물가나 물속에서 잘 자라는 특성을 보인다. 갯버들은 나무줄기가 붉은색을 띠고 있으면서 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식물이기 때문에 수양(水楊), 포류(蒲<浦>柳) 등으로도 부른다. 그러므로 지명 등에 이 글자가 쓰이면 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 되어 많은 물이 있는 공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뜻이 확장되기도 했다.
楊은 木(나무 목)과 昜(볕 양)이 결합한 형태이다. 昜은 태양을 나타내는 陽의 원래 글자인데, 산을 뒤로하면서 물과 맞닿아 있는 기슭으로 볕이 잘 드는 물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楊은 햇볕이 잘 드는 물속이나 물가에 자라는 나무를 지칭하게 되어 갯버들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다가 점차 그 뜻이 확장되어 물이 풍부한, 물이 넘실거리는 등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땅이름으로 쓰인 경우는 모두 이런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口(입 구)를 보자. 일반적으로 쓰이는 뜻은 음식을 먹는 입을 가리키는데, 원래는 산과 산 사이의 좁은 곳을 흘러 내려온 시내(川)가 좀 더 넓은 곳으로 나가는 구멍, 혹은 물길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이 글자는 공간과 공간의 경계를 나타내면서 들어갈 때는 입구가 되고, 나올 때는 출구가 된다. 사람의 입은 안과 밖의 경계이며, 안은 좁고, 밖은 넓은 공간이 된다. 그래서 口를 입이라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 입이라는 뜻이나 경계라는 뜻이나 모두 일정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무엇인가가 나오거나 들어가는 곳임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따라서 口는 닿아있다는 뜻과도 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고구려 시대부터 써 왔던 楊口라는 땅이름은 졸졸 흐르던 시내(川)가 물이 많은 곳으로 나가는 물기슭의 공간이라는 뜻이 된다.
고구려는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假借)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는 이두(吏讀)를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양구는 이두 표기로 요은홀차(要隱忽次)라고 했다. 요은+홀차의 형태로 되어 있는 이것은 앞엣것이 楊을 나타내고, 뒤엣것이 口를 의미한다. 중국어에서 要(요긴할 요)는 야, 혹은 야오 정도로 발음되는 글자인데, 야로 발음 날 때는 평성이고, 요로 발음 날 때는 거성이다. 楊은 평성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要는 평성의 소리를 취하여 ‘야’가 되어야 한다. 이두에서 隱(숨을 은)은 받침을 표기하는 글자로 쓰인다. 그러므로 이 글자는 위의 것은 제거된 상태에서 ‘ㄴ’을 표기하기 위한 것으로 된다. 우리말에서는 ‘ㅇ’으로 대표될 수 있는 받침이 ‘ㄴ’, ‘ㅇ’, ‘ㅁ’으로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要隱은 ‘얀’, ‘양’, ‘얌’ 등으로 될 수 있는데, 대표 발음을 꼽는다면 역시 ‘양’이다.
중국어에서 忽(문득 홀)은 후, 호로 발음되는데, 모두 평성이다. 우리말에서 ‘ㅎ’과 ‘ㄱ’은 목청을 좁혀 숨을 내쉬면서 그 가장자리를 마찰하여 나는 것으로 소리가 나오는 위치와 발음의 방법이 거의 같으므로 ‘후’는 ‘구’와 ‘호’는 ‘고’와 통하여 쓸 수 있다. 次(버금 차)는 평성과 거성으로 발음되는데, 여기서는 거성을 취했다. 거성은 ‘ㅆ’, 혹은 ‘ㅈ’를 높고 짧게 발음하며, 평성은 ‘ㅆ’를 길고 평평하게 발음한다. 그러므로 홀차는 홎, 홏, 훚, 훛, 혿, 훋, 홋, 훗 등으로 될 수 있다. 여기에서 ‘ㅎ’이 ‘ㄱ’으로 대체되면 ‘곶’, ‘궂’ 등으로 되면서 口와 비슷하거나 같은 소리로 발음될 수 있다.
‘忽次’와 ‘口’는 같은 소리인데, 후대로 오면서 한자의 뜻으로 땅이름을 정하면서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양구는 신라 시대에는 양록(楊麓)이라고 했는데, 양구와 비슷한 뜻이다. ‘麓(산기슭 록)’은 산의 비탈진 것이 끝나서 평평한 곳으로 이어지는 공간인데, 우리말로는 ‘기슭’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산기슭’이라고 하지만 바다나 강 따위의 물과 닿아있는 땅을 지칭하기 때문에 ‘물기슭’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신라 때의 양록이라는 지명 역시 양구와 마찬가지 뜻이 된다.
양구는 고려시대에는 楊溝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 역시 비슷한 뜻이다. ‘溝(봇도랑 구)’는 넓이 1.2미터, 깊이 1.2미터 정도 되는 물길(水路)을 지칭하는 글자인데, 보에 가두어 놓았던 물을 논이나 밭에 대거나 빼게 만들어 놓은 도랑으로 별로 크지 않은 시내 같은 것이다. 농사를 위한 물길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물이 흐르는 길이라는 점에서는 시내(川)와 같은 뜻을 가지는 글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楊溝 역시 고구려 시대의 땅이름과 같은 뜻이 된다.
고구려 시대, 아니면 그 전부터 그렇게 불렸을 것으로 보이는 양구라는 지명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땅이름에 깃들어 있는 문화적 특성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종합하여 양구라는 지명이 가지는 의미를 정의하면, 넓고 많은 물과 맞닿아 있는 공간이 되어 우리말로는 ‘물기슭’, 혹은 ‘기슭’이라는 뜻이 된다. 지금 양구군의 중심 지역이 서북쪽으로는 파로호와 맞닿아 있고, 다른 방향으로는 산과 닿아있는 평지라는 점만 보더라도 그런 뜻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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