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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일상/2023

한강 하류의 유적

by 竹溪(죽계) 202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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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겨울 초입에 靑山四友는 한강의 서쪽 하류 지역의 유적을 답사했다.

 

20세기에 들어와 한강에 다리가 놓이면서 나루터의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조선시대까지는 나루터가 강을 건너는 데에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한강에는 여러 개의 나루가 있었는데,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공암 나루(孔巖津)는 색다른 의미를 가지는 유적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공암 나루터 바로 옆에는 양천 허씨의 시조가 탄생했다는 신화를 가진 허가바위, 혹은 孔巖(구멍 바위)이 있으며, 이 나루에서 강을 건너던 형제가 황금을 물에 던진 전설이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許宣文)은 가야 김수로왕 30세 손으로 이 바위 구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강 바로 옆에 있는 바위 구멍이었지만 산업화에 밀려 지금은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다. 고려말의 사람이었던 이조년(李兆年), 이억년(李億年) 형제는 우연히 길에서 황금을 얻었는데, 공암나루에서 강을 건너는 도중에 형제의 우애를 유지하기 위해 황금을 강물에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공암나루 앞의 강을 투금탄(投金灘)이라고 한다.

 

공암나루 바로 옆에는 광주바위가 있다. 주변이 매립되면서 공원으로 되었고, 연못 가운데에 돌산이 있는 모양이 되었다. 옛날 한강에 홍수가 났을 때 경기도 광주에 있던 바위가 사라졌다고 한다. 바위를 찾던 광주에서는 양천 강변에 그 바위가 있는 것을 보고는 소유권을 주장하며 비용을 내라고 했다. 양천 현감은 탑산에서 나는 싸리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어서 광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이 바위가 필요 없으니 다시 가져가라고 한 다음부터 빗자루도 보내지 않게 되었고, 그 바위 이름만 광주바위로 불렀다고 한다.

 

공암 나루터에서 서쪽으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궁산(宮山)이 있다. 원래는 성산(城山)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궁산으로 되었다. 이곳에는 옛날 성터가 있다. 산 이름도 그래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언제의 성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에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뿐이다. 산 정상의 동쪽 기슭에는 소악루(小岳樓)라는 정자가 있다. 조선시대의 인물인 이유(李渘)가 말년을 보내기 위해 지었던 정자이다. 악양루에 빗대어 소악루라고 이름을 붙였다.

 

양화대교 남단에는 개화산(開花山)이 있는데, 이곳에는 아주 특이한 유적이 하나 있다. 약사여래로 보이는 고려시대의 석불상인데,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은진미륵처럼 모자 같은 것을 쓴 석불상도 있지만 과거 선비들이 쓰던 갓 모양으로 된 모자를 쓴 모양은 보기 힘들다. 그리고, 불상의 눈, , 입 등의 모양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본 불상과는 사뭇 다르다. 고려말, 조선 초기 정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바로 앞에 있는 삼층석탑이 고려후기의 양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겸재 정선이 그린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는 개화사라는 이름으로 그려져 있다.

 

네 번째로 답사한 곳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낙건정(樂建亭)터였다. 낙건정은 17세기 말 18세기 초의 인물인 金東弼이 은거하면서 지은 것이다. 樂建은 송나라 때 문인인 구양수(歐陽修)思潁詩에 나온다. ‘몸이 건강해야 비로소 즐겁게 되니, 늙고 병들어 부축받기를 기다리지 말라(及身强健始爲樂莫待衰病须扶携)’에서 따온 말이다.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낙건정이지만, 그 언덕에는 찻집이 들어서 있다. 어떤 곳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행주산성의 바로 서쪽 기슭에는 귀거래정(歸去來亭)도 있었지만 이것 역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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