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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우리문화칼럼

한국신화를 살리기 위한 제안

by 竹溪(죽계) 2007.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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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화의 체계화방안 연구

 

신화는 주인공인 신의 유래와 위력 등을 인간의 언어로 풀이해서 말하는 이야기다. 신은 신화를 통해 인간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서 인간에게 다가오고, 인간은 신화를 통해 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믿으면서 신에게 다가서게 된다. 그러므로 신화는 신과 인간이 서로의 의사를 주고받는 매개체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신화는 신과 인간의 중간에 서서 둘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자인 司祭에 의해 노래나 이야기로 口演되는데, 신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지만 인간이 지향하는 세계에 대한 생각들을 예술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여러 생각들을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세계관이 반영되는 이유는 한 세계에 대한 구성원 전체의 생각을 가장 폭넓게 담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언어예술인 신화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화는 인간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는 자연을 창조한 신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성원 모두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내용이란 것은 바로 그들이 지향하는 문명에 대한 생각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신화에는 인류가 바라는 문명에 대한 생각이 녹아있다고 보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신화는 동질성을 가진 공동체의 크기가 작았던 고대나 원시사회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욱 다양해진다. 그러므로 신화는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일수록 풍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 민족이 가진 신화는 세계 어느 것보다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역사가 최소한 오천년이 넘는 만큼 그 과정에서 생성된 신화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신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하지 못했다. 지역 단위, 부락 단위, 씨족 단위, 국가 단위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 우리 신화가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고 흩어져 존재한다는 것은 신화의 원형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새로운 문화적 차원의 신화를 형성하는 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구나 문화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현대사회의 커다란 화두로 떠오른 문화콘텐츠는 민족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과 동시에 미래의 인류 문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신화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예술적 특성을 제대로 살려내어 문화콘텐츠로 거듭나게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신화가 문화콘텐츠로 거듭난다는 것은 단순히 문화적인 의미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신화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신화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신화가 로마제국을 거치면서 일차적인 체계화 과정을 겪었고, 다시 중세 유럽의 제국주의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이차적인 체계화 과정을 겪었는데, 서양의 문화와 문명을 이해하는 근간으로 그리스·로마신화가 일컬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그리스·로마신화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의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을 만들어내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어야 하고 연구해야하는 현실에 우리는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화에 대한 연구와 그것에 대한 체계화는 단순한 문화콘텐츠의 차원을 넘어서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우리 신화가 지니고 있는 성격과 특징을 올바르게 파악하여 흩어져 존재하는 민족 신화를 일정한 기준 아래 체계화함으로서 신화가 문화콘텐츠로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신화가 지닌 종류와 성격 등에 대한 고찰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민족 신화에 대한 성격이 밝혀지면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체계화하여 사회 전반에 필요한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신화의 성격과 분류

1. 신화의 성격

신화는 신에 대한 이야기로서 문자가 생기기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口傳되어온 것이기 때문에 구비문학의 범주에 들어간다. 구비문학은 말로 된 것이면서 문자로 정착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크게 노래와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노래는 언어의 고저장단을 특수하게 배합하여 부르는 것으로서 노동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과정에서 노래가 불려지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 노래가 가진 음악적 율동으로 인하여 노동하는 사람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서 일을 해야 할 경우 노래를 신호음으로 활용할 수 있다. 셋째, 노래가 지닌 주술성으로 인하여 먹이의 대상이 되는 자연물의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노동현장에서 불려지는 민요에는 신호음으로서의 기능과 주술적 기능이 강조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동과정에서 주로 불려지는 노래에 비해 여가시간에 주로 口演되는 이야기는 그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음악적 율동이 없는 일상언어로 구연되는 이야기는 서사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갈등구조를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여가시간에 이야기를 구연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첫째, 노동과정에서 소모된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하여, 둘째, 사회 구성원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며, 셋째, 우주와 인간에 대한 자연스런 교육을 하기 위함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가과정에서 주로 구연되는 이야기는 크게 神話, 傳說, 民譚으로 나누는데, 신화는 부족 혹은 민족 단위로, 전설은 지역단위로, 민담은 광역단위로 전승되는 특징을 지닌다. 신화는 초월적인 시·공을 중심 되는 무대로 삼는데 이것은 인간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세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아닌 인간과 신의 관계로 모든 것을 파악하던 신화시대에 있어서 자연은 신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이해는 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그것이 상상력에 근거한 상징으로 가득 찬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에 등장하는 초월적인 시·공의 세계는 인간이 바라는 것이 되며, 만들어야할 문명의 세계가 된다. 이런 점으로 비추어볼 때 신화가 문명의 어머니이며, 과거뿐만 아니라 아주 먼 미래에도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화가 문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말은 단순히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신화에서 말하는 여러 상상의 세계들은 그것을 만들고 즐기는 구성원 전체가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생활 속에서 구현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의 양 측면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중을 마음대로 나는 것, 몸을 마음대로 바꾸는 변신술, 우주를 향한 끝없는 도전, 여러 형태로 그려지는 땅속의 세상, 정신세계의 감각적 대상화물인 귀신을 비롯한 靈的인 성격의 여러 종류의 괴물 등은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세계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현실화 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늘을 날고자 했던 바람은 비행기로 실현됐고, 몸을 바꾸는 변신술은 유전자공학으로 그 길을 열어가고 있다. 또한 귀신을 비롯한 괴물은 영화를 비롯한 영상물로 만들어져서 문화 속에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신화의 인간이 살아가는 마을이나 도시로 재현되는데, 신화 속의 공간들은 생활 속에 재현되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수많은 유적들이 신화 속에 등장하는 것들을 삶의 공간 속에 재현해 놓은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신화가 실제 생활 속에서 활용되는 것은 비단 이것뿐이 아니다.

 

신화 속에 녹아있는 民族意識의 원형적인 모습, 九折羊腸 같이 기복이 심한 인간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지혜, 신들의 영웅적인 삶을 통한 교육적 효과, 자연에 대한 이해와 활용의 기술, 신화 속 상상의 세계를 활용한 다양한 모습의 문화콘텐츠, 신화 속 주인공들의 일화나 말을 통해 형성되는 표현의 다양화 등 인간의 삶 속에서 신화가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거의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화에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하나로 만든 인류의 삶 전체가 녹아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전체에 대한 이해와 연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성격을 지니는 신화는 생활환경과 민족적 특성에 따라 개별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의식의 원형이 살아 숨 쉬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신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질적 성격을 바탕으로 분류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신화의 분류

어떤 대상이 가진 본질적 성격을 바탕으로 그것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나누는 것이 분류다. 그렇기 때문에 분류는 대상이 가지는 본질과 분류하는 사람의 연구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분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준을 세우는 것인데, 올바른 분류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이어야 한다. 분류가 연구자의 연구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여 자의 주관성에 의해 기준을 설정하게 되면 그것은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분류가 아니라 연구자의 생각에 따라 대상이나 현상을 나누어 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올바른 분류라고 할 수 없다. 대상이나 현상이 가진 성질에 의해서 분류의 기준이 설정되어져야한다는 것은 분류의 기준이 사물이나 대상의 본질적인 측면을 잘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연구하기 위하여 그것을 분류한다는 것은 그것이 가진 본질을 올바르게 파악하여 인간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류의 기준은 어디가지나 객관적인 것에 의하여 설정되어야 하며, 논리에 의해 검증되어 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기준은 주관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며, 이러한 분류 기준을 가지고 행한 분류도 객관적이라는 평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사물이나 현상은 그것이 가진 본질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모여주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분석과 종합이라는 우회적인 방법을 통하여 그것을 개념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물이나 현상을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이나 현상들이 가지고 있는 분질적인 측면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대상에 대한 분석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분석된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대상의 본질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사물현상 모두에게 대해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물현상이 개념적으로 파악되었다고 하여 그것이 곧바로 체계성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수많은 개념들을 동시에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대상들을 비슷한 성질을 가진 것끼리 묶어 줄 필요가 있게 되는데, 여기에 바로 분류의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분류는 대상이 가진 본질적 측면을 잘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준에 의하여 분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화에 대한 분류 역시 이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는데, 이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세우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위에서 이미 살펴본 신화의 성격을 바탕으로 할 때, 신화의 본질은 신화 인간을 이어주는 가교 구실을 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신화는 한편으로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이 인간에게 말을 거는 수단이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화가 발생하는 인간의 삶인 신화 환경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생론적 입장에서 본 신화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화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에 신화의 가장 중요한 본질로 보아야 한다. 신화의 본질적 성격이 이렇기 때문에 신화를 분류함에 있어서 이 점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를 분류함에 있어서 첫 번째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기준은 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된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신화의 본질적 성격은 내용을 중심으로 한 것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화는 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말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형성하는 알맹이인 내용이 다음으로 중요한 성격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을 본질적 성격의 하나로 보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신화가 지니고 있는 서사적 성격 때문이다.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고, 신에게 가까이 가는 방법은 서사 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어를 통해 신의 위대성을 인간에게 전달하고,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짧은 형태의 서정 보다는 전기적 형태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서사가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에 신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서사의 형태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사는 갈등을 기본 구조로 하면서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말하는데, 신을 주인공으로 하며, 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신화가 바로 서사에 속한다. 그러므로 서사는 신화의 알맹이인 내용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신화를 분류함에 있어서 두 번째 기준으로 서사적인 성격을 꼽을 수밖에 없게 된다. 첫 번째 기준인 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신화의 발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신화가 지닌 기능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두 번째 기준이 되는 갈등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신에 대한 이야기는 내용적 성격에 근거를 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세부적인 분류 기준이 더 필요하겠지만 우리 신화의 체계화를 위한 분류라는 본고의 연구목적에 맞도록 여기서는 위의 두 가지 기준으로 신화의 큰 줄기만을 분류하는데 그치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인류문명은 바로 무한대를 향한 것이 중심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벨탑, 우주를 향한 도전 등은 모두 무한대를 향해 나감으로써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인류의 꿈을 이루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의 인류문명은 무한소를 향한 것이 중심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생명체에 대한 탐구, 바이러스 등을 대상으로 한 미세세계에 대한 규명 등이 앞으로의 인류문명을 이끌어 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세세계에 대한 탐구가 얼마나 진전될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밝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인류문명의 이러한 진행과정을 미리 말해주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신화다. 신화는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해왔고, 앞으로 이룩해야할 것들에 대해 때로는 상징을 통해, 때로는 구체적인 모습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신화가 지닌 놀라운 성격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신화 속에 나오는 것 중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들이 있다. 서유기에는 구름이 나타나고, 건국신화에는 하늘을 나는 마차가 있다. 그리고 아랍신화에는 양탄자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이것은 하늘을 날고 싶은 인류의 생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것이 결국 현대사회의 비행기로 실현된다. 또한 알라딘의 마술램프나 서유기에 등장하는 마법의 항아리 등은 거인이나 괴물을 연기나 물로 만들어서 그 속에 넣었다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만드는데,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컴퓨터로 실현되었다. 또한 하체는 말의 몸이고, 상체는 인간의 몸인 괴물이나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들은 앞으로의 유전공학을 통해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이처럼 신화는 맹아적 혹은 상징적 모습으로 인류 문명의 미래를 모두 담아내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볼 때 신화는 문명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들은 대부분이 이미 신화에 형상적으로 나타나 있었고, 인류의 문명은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신화는 위에서 제시한 두 가지 기준을 근거로 할 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하늘로 표현되었던 끝없이 펼쳐진 우주의 거대함에 대한 것을 신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는 거대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땅속 세계로 표현되면서 생명이나 물질을 이루는 한없이 작은 세계 대한 것을 중심내용으로 하는 거소신화가 그것이다. 거대신화는 거대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메크로(macro)신화라 할 수 있는데, 천지창조계통과 천신강림계통의 신화 등 씨족이나 마을, 나라를 세운 건국신화는 모두 여기에 넣을 수 있다. 매크로 신화는 천지창조와 함께 민족 단위의 국가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발달하였는데, 현대사회에서도 국가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신화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현대사회까지의 문명이 발달한 과정을 보면 신화에 등장했던 여러 현상들이 실현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늘을 날면서 공간적인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든지, 우주를 정복하여 인류의 행복을 찾아보려 하는 것 등은 모두 거대함을 통하여 신에게 다가가고 인류의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대신화는 인류 문명의 요람으로 작용하면서 현대 사회를 형성한 근본이 되니 거대신화가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사에 끼친 영향을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거소신화는 미세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마이크로(micro)신화라 할 수 있는데, 땅속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중심으로 하는데, 물질이나 생명체를 이루는 한없이 작은 구성요소들의 세계를 신화라는 상징으로 나타낸다. 지금까지의 인류문명은 바로 무한대를 향한 것이 중심을 이루었지만 앞으로의 미래 문명은 무한소를 향한 것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전공학을 중심으로 하는 생명체의 신비에 대한 탐구, 바이러스 등을 대상으로 한 미세세계에 대한 규명, 우주의 구성요소의 성격에 대한 탐구 등이 앞으로의 인류문명을 이끌어 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세세계에 대한 탐구가 어디까지 진전될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밝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인류문명의 이러한 진행과정을 미리 말해주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신화가 된다. 신화는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해왔던 것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물론 앞으로 이룩해야할 것들에 대해 때로는 상징을 통해, 때로는 구체적인 모습을 통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세계에 대한 것들을 예언적으로 알려주는 것 중에는 알라딘의 마술램프나 서유기에 등장하는 마법의 항아리 등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거인이나 괴물을 연기나 물로 변형시켜서 항아리 속에 넣었다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만드는데,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컴퓨터로 실현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한 하체는 말의 몸이고, 상체는 인간의 몸인 신화 속의 괴물이나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들은 앞으로의 유전공학을 통해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미래사회가 만들어 가야할 문명의 발달을 신화의 상상력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화는 어느 지역,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누구나 보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세계적인 분포 현상으로 볼 때 메크로신화가 우위를 보이고는 있는 것을 사실이지만, 마이크로 신화 역시 상당히 넓게 분포한다는 사실도 두드러진다. 아시아대륙의 북쪽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신화는 주로 메크로 계통의 신화가 중심을 이루고, 중동과 인도, 그리고 아시아 대륙의 남부 쪽은 마이크로 계통의 신화가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신화에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군신화, 혁거세신화, 수로왕신화, 주몽신화 등은 모두 북방계통의 신화로써 천손강림형으로 메크로신화에 해당된다. 그러나 제주도의 삼성신화는 신인이 땅속에서 솟아올라 오는 형태인 지신돌출형이나 세상에서 버림받는 존재가 산과 같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산신이 되는 방식의 지모상승형은 마이크로 신화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신화에는 메크로 신화와 마이크로신화가 나란히 함께 존재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세계 어느 민족의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것인데, 이러한 특수성을 우리는 지금까지 잘 인식하기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신화의 큰 분류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 신화를 성격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누어 보고 체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아래에서 제시해보도록 한다. 


III. 한국신화의 종류와 체계화방안

우리나라의 신화를 살펴보면 세계 어떤 민족의 신화보다 양적으로도 풍부하며, 예술적 상상력의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이스·로마신화라는 것이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새롭게 체계화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동양을 침략과 약탈의 대상으로 생각하여 자신들의 우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졌는데, 서양경제사, 서양철학사, 서양문화사 등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서양철학사를 보면 어느 한 민족이나 나라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해당시대의 최고 철학자들의 이론을 서양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 묶어서 서술했고, 경제사 역시 해당시대의 최고 경제대국을 중심으로 이 민족에서 저 민족으로 옮겨 다니면서 서술하고 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동양은 공동의 적이었고, 약탈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장점을 모두 모아 체계화함으로써 우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동양의 민족들은 아예 하지를 않았는데, 서양과 같은 제국주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랜 시간에 걸쳐서 동양의 여러 나라들은 식민지로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현실은 경제와 힘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현대사회에도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문학은 다음 세대들의 생각을 지배하기 위한 최고의 도구로 작용하는 것인데, 이런점을 간파한 서양인들은 신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설화들 역시 본래의 것을 굴절시키고 왜곡하여 동양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데, 헨젤과 그레텔을 못살게 굴었던 마귀여자는 실제에 있어서는 헨젤과 그레텔에 의해 억울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요리사였다고 한다. 즉, 요리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하여 헨젤과 그레텔은 요리사 여인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자였던 것이다. 이런 것들이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새롭게 재창작되면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들로 다시 꾸며져서 제국 침략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신화 역시 예외일 수가 없었다. 서양의 수많은 민족들에게 여러 종류의 신화가 존재하지만 우리들에게 알려진 것은 오직 그리스·로마신화뿐이라는 사실을 잘 생각해보아도 이러한 현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흥미 있는 사실은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자 침략의 의도로 재구성되었던 신화가 훌륭한 문화콘텐츠로 자리하게 되면서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종류의 영화들과 기타 문화상품들, 역시 제국주의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기독교 역시 세계로 확산되자 성경이 훌륭한 콘텐츠 소재로 작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많이 늦기는 했지만 우리 신화를 새롭게 구성하여 미래의 문화콘텐츠 상품으로 개발할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신화가 어떤 양상으로 존재하는지를 올바르게 분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하는 분류는 위에서 제시한 기준을 근거로 하여 대분류는 거대신화와 거소신화로 하고 소분류는 신화의 내용상 특징을 기준으로 삼았다.

 

1. 한국신화의 종류

1) 巨大神話

가. 천지창조신화

천지창조신화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에 의해 우주가 만들어지고, 혼돈하던 시대를 거쳐서 지금과 같은 세상이 되었다는 내용의 신화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소별왕·대별왕’, ‘미륵과 부처’ 등을 천지창조신화라고 할 수 있다. ‘천지왕본풀이’로 이름 붙여진 ‘소별왕·대별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하늘의 천지왕이 땅위로 내려와서 총맹부인과 동침을 하고 돌아갔다. 그 뒤 총맹부인은 아들 형제를 낳았는데, 형은 대별왕, 아우는 소별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형제는 무럭무럭 자라나 아버지를 찾아가려는 생각으로 천지왕이 남기고 간 박씨를 땅에 심었다. 형제가 심은 박씨는 싹이 나고 자라서 줄기가 하늘까지 뻗어 갔다. 형제는 그 박 줄을 타고 아버지를 찾아가니, 천지왕은 형인 대별왕에게 이승을 다스리게 하고, 아우인 소별왕에게 저승을 다스리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소별왕은 저승보다는 이승을 탐내서 수수께끼, 꽃 가꾸기 등의 내기를 억지로 하자고 하여 이기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기로 하자는 제안을 형에게 하였고, 온갖 속임수로 이겨서 이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승에 내려와서 보니 해와 달이 둘씩이나 뜨고, 나무와 짐승들이 말을 하고, 귀신과 인간의 구분이 없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화가 많고 역적과 도둑이 들끓었으며, 사람들 간의 간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이에 소별왕은 형인 대별왕에게 이승의 질서를 바로잡아 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동생을 가엾게 생각한 형은 활로 해와 달을 하나씩 쏘아 없애서 하나씩만 남기고, 소나무껍질가루를 뿌려 짐승의 혀를 저리게 해서 나무와 짐승들이 말을 못하게 하였으며, 인간과 귀신의 무게를 달아 보아서 백근이 넘는 것은 인간으로 하고, 백근이 안 되는 것들은 귀신으로 그냥 두어서 귀신과 인간을 구분지어 주었다. 형인 대별왕은 여기까지만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 후에도 인간세상인 이승은 질서가 바로잡히지 않고 바로잡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질서가 완전히 잡히지 않고 어느 정도의 무질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본풀이 신화는  천지가 어떻게 생겼는가는 보여주는 이야기로 하늘과 땅의 분리, 이승과 저승의 분리, 인간과 나머지 존재의 분리 등과 자연의 질서에 대한 것들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오랜 전승과정을 거치면서 무속신화의 하나로 정착된 것으로 보이는데, 제주도, 서울, 함경도 등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천지창조신화는 이 외에도 ‘미륵과 부처’에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들은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천지의 창조에 대한 세계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거대한 우주가 어떻게 생겼으며, 그 질서가 어떻게 해서 잡혔는가를 보여주는 이 신화는 우리 신화의 가장 꼭대기에 자리할 수 있는 거대신화라고 할 수 있다.

 

나. 천신강림형 건국신화

우리나라 건국신화의 대부분이 천신강림형에 속한다. 단군신화, 해모수신화, 주몽신화, 박혁거세신화, 가야국신화 등 나라를 세운 인물에 대한 신화는 천지창조 이후의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자에 대한 신성성을 강조하고 확인받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그러므로 천신강림형 건국신화에는 신성성이 매우 강조되는 현상을 보인다. 우리나라 건국신화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檀君神話를 살펴보도록 하자.

 

 “옛날에 桓因의 庶者인 桓雄이 하늘 아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의 꼭대기에 있는 神檀樹 아래에 내려와 神市를 열었으니 이 분이 환웅천황이다. 風伯, 雨師, 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면서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 일을 맡아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神雄에게 사람 되기를 소원하였다. 이 때, 神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얻어서 먹었다. 곰은 三七日 동안 몸을 삼가자 여자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범은 능히 몸을 삼가지 못했으므로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 사람이 된 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檀樹 아래에서 아이 갖기를 소원했다. 이에 환웅이 임시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그녀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단군이라 하였다.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는데, 중국의 堯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나라 이름을 朝鮮이라 하였다. 또 도읍을 白岳山의 阿斯達로 옮겼다. 그 곳을 弓忽山 또는 今彌達이라 한다. 그는 일천오백 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周의 武王이 왕위에 오른 己卯年에 箕子를 조선에 봉하므로 단군은 藏唐京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山神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일천구백여덟이었다.”

 

신화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최초 국가인 조선을 세운 단군은 하늘의 가장 높은 神인 환인의 손자가 된다. 그러므로 단군은 하늘 신이 내려와서 낳은 자식이며, 조선은 하늘 신이 내려와서 세운 하늘국가가 된다. 천지가 창조된 후 우리 민족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나라인 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는 그 내용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하늘 세계의 질서가 땅에서 재현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뿌리인 조선은 하늘나라를 인간세상으로 옮겨놓은 신의 나라가 된다. 신화에 흐르는 이러한 민족의식은 高句麗에서 그대로 계승된다. 지금 우리는 고구려라고 읽지만 의미상으로 볼 때 발음은 고구리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때 ‘麗’는 ‘곱다’는 뜻이 아니라 ‘걸리다’는 뜻을 가진 ‘리’가 되어서 고구리라는 이름은 ‘하늘에 걸려 있는’이라는 뜻으로 ‘하늘 민족이 세운 나라’라는 뜻을 가지기 때문이다. 단군신화와 주몽신화의 이러한 천신강림형 건국신화는 이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신라와 가야의 건국신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와 가야를 세운 ‘수로왕’ 역시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로 알의 형태를 빌어서 태어남으로서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마찬가지로 신의 인격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는 천신강림형 건국신화는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절대왕권 확립시기의 신화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신화적 보편성을 확립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천신강림형 건국신화의 주인공은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이기 때문에 무한한 우주의 신의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거대신화의 대표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계통의 신화는 천지창조신화의 바로 아래에 위치할 수 있는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氏族神話

씨족신화는 성씨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 지닌 신성성을 강조함으로서 자신의 씨족이 위대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신화이다. 그러므로 씨족신화는 나라를 세운 주인공에 대한 신화인 천신강림형 건국신화에 비해 신성성이 대폭 약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국가가 생겨나고 절대왕권이 성립되면서 그 아래로 편입되어 귀족으로 귀속된 씨족 집단의 신화가 나라를 세운 신화보다 신성성이 더 강조될 수는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기 때문인지 씨족신화의 대부분은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존재로 그려지기 보다는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서 나타나거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경주 김씨의 시조신화라고 할 수 있는 ‘알지신화’를 보도록 하자.

 

“永平(177) 3년 경신 8월 4일에 瓠公이 밤에 월성 西里를 가다가 큰 광명이 始林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자주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까지 뻗쳤는데, 구름 속에 황금색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는데, 그 빛은 그곳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또한 궤가 있는 나무 밑에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이 모양을 왕께 아뢰자 왕이 그 숲에 가서 궤를 열어보았더니 그 속에 사내아이가 있어 누웠다가 곧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혁거세의 故事와 같으므로, 혁거세가 알지라고 한 그 말을 따라서 閼智라고 이름을 지었다. 알지는 곧 우리말의 아기를 말함이다. 사내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라와 뛰놀고 춤추었다. 왕은 길일을 가려 태자로 책봉했으나 알지는 뒤에 婆娑王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등극하지 않았다.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金씨라 했는데, 알지는 熱漢을 낳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首留를 낳고 수류는 郁部를 낳고, 욱부는 俱道를 낳고, 구도는 未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올랐으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에서 시작되었다.”

 

신라는 박·석·김의 세 성을 번갈아가면서 왕으로 모시면서 고대국가의 터전을 닦았는데, 세습이 확립된 것은 김씨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므로 김알지는 비록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신라 김씨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씨족신화의 형태를 띠는 김알지신화에 이르면 이미 신성성이 상당히 약화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짐작할 수 있으나 하늘과의 감응 현상이 축약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김알지신화’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영웅에 가까운 존재를 보여주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씨족신화는 건국신화에 비해 신성성이 약화됨과 함께 전승의 범위 또한 축소되면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세속화한 신화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씨족신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신라의 육부를 이루는 손씨의 시조가 되는 ‘孫順埋兒’도 신적인 위력을 대부분 상실한 상태에서 인간적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씨족신화는 하늘과 관련이 있는 거대신화의 범주에 들지만 건국신화에 비해서 신성성이 약화되어 있는 만큼 이것은 건국신화 보다 하위의 갈래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라. 英雄神話

영웅신화는 건국신화나 씨족신화에 비해 신성성이 더 약화된 이야기다. 주인공의 출생에 있어서도 꿈을 통해 현몽하는 것으로 징조가 나타나고, 어떤 경우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가 밝혀지지 않은채로 영웅적인 면모만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영웅신화는 절대왕권이 확립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味鄒王와 竹葉軍’에서처럼 나라를 지키는 행위를 하거나 나쁜 잡귀를 물리치기도 하며, 해와 달을 생기게 하거나 사라지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역사적인 사실과 신화적인 상상력이 결합한 형태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를 보도록 한다.

 

“제8대 阿達羅王 즉위 4년 정유에 동해 바닷가에 延烏郞과 細烏女가 부부로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가 바다에 가서 海藻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오기에 올라탔더니 연오를 실은 채 일본으로 가버렸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말하기를. “이는 비상한 사람이다.” 하고는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날이 저물어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바닷가로 가서 찾다가 남편이 벗어놓은 신을 보고 그 바위에 올라가니 바위는 또한 그 전처럼 세오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보고 놀라서 왕께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세오를 貴妃로 삼았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의 빛이 없어지니 日官이 말하기를. “해와 달의 정기가 그 전에는 우리나라에 있었으나 지금은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이런 괴변이 일어났습니다.”고 하는 것이었다. 왕은 使者를 일본에 보내 두 사람을 찾아오게 하였다. 연오가 말하기를.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이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妃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해와 달이 다시 나타날 것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단을 주었는데, 사신이 돌아와서 왕께 그대로 아뢰었다. 연오가 가르쳐 준대로 비단으로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다시 나타나서 그 전과 같아졌다. 그 비단을 왕의 창고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貴妃庫라 하며,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迎日縣 또는 都祈野라 했다.”

 

영웅신화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라와 백성을 지키거나 구하는 행위를 주 내용으로 한다. 창세신화와 건국신화, 그리고 씨족신화 등의 주인공들은 모두 성공하는 반면 영웅신화의 주인공은 실패하기도 한다. 위에서 살펴본 ‘연오랑·세오녀’에서 주인공은 일본의 왕이 되었으며, 신라에 해와 달의 빛을 되살려 놓은 존재이니 성공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춤과 노래로 疫神을 물리쳤지만 부인과 나라는 구하지 못한 ‘處容’ 등은 실패한 영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영웅신화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신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능력의 범위가 상당히 축소되어 있는 관계로 새로운 세상이나 나라를 창조하거나 세우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들을 잘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신적인 능력을 인정받는 그런 존재가 된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영웅신화는 신성성이 약화된 대신에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신화이기 때문에 앞에서 살펴본 여타 신화의 하위의 위치에 자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마. 地母上昇形神話

지모상승형신화는 인간세상에서 버림을 받았거나 실패한 사람이 죽어서 신으로 모셔지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신화이다. 주로 산을 지키는 산신령이나 고개를 지키면서 사람을 보호하는 신으로 모셔지면서 사당의 형태를 통해 숭배를 받는 신에 대한 이야기다. 이러한 계통의 신화는 주로 민간에서 섬겨지는 것으로 무속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속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민족 신앙인데, 신의 능력을 빌어서 인간을 괴롭히는 나쁜 것들을 물리쳐주는 일을 하는 무당이 하는 일정한 신격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대사회의 무당은 제사장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유학을 정치이념으로 하는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무당의 신분은 천민이 되고, 무속은 민간신앙으로 정착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무속행위는 무당에 의해 행해지는데, 여성이 중심을 이루며, 무속신화의 주인공은 무당이 모시는 신이 된다. 무당이 모시는 신은 천지를 창조한 絶對神으로부터 인간의 몸으로 죽어서 신이 된 영웅적 인물이나 어릴 때 한을 품고 죽은 童子神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는데, 위에서 살펴본 ‘천지왕본풀이’의 주인공은 절대신이라 할 수 있고, 강릉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버림을 받았지만 자라서는 신라의 국사가 되었다가 대관령 산신령이 된 범일국사나 어린 나이로 영월로 유배가서 억울하게 죽은 단종대왕 등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또한 신라 때 사람인 박제상의 부인으로 일본을 바라보다 돌로 굳어져서 망부석이 되면서 치술령의 산신이 된 ‘박제상부인’의 신화 역시 이런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백두대간인 태백산과 소백산을 중심으로 민간마을과 여러 무당들에 의해 폭넓은 범위에서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단종신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단종은 아버지인 문종의 뒤를 이어 조선조 여섯 번째 임금이 되었으나 삼촌인 수양대군에 의해 반강제로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 유배된다. 영월에서 유배생활을 보내던 단종은 자신에게 내리는 사약을 가지고 오던 금부도사들이 약을 강물에 던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이 죽을 결심을 한다.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몸종을 시켜서 개를 한 마리 잡아오게 한 단종은 문지방에 구멍을 뚫고 명주 줄을 넣은 다음 자신은 개의 목에 줄을 걸어서 잡고 있겠다고 한 다음 몸종으로 하여금 줄을 당기게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몸종은 바깥에서 열심히 당겼는데, 개가 죽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만 하라는 명령이 없어서 들어가 보니 개 대신에 단종이 목을 매서 죽어 있었다. 이렇게 하여 죽은 단종은 시신을 치우지 말라는 세조의 명령에 따라 추운 강가에 버려진 채로였다. 단종이 승하하기 하루 전날 밤 영월에 사는 최익한이란 사람이 한 꿈을 꾸었는데, 곤룡포와 면류관을 쓰고 흰말을 탄 단종께서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최익한은 어디를 가시느냐고 여쭈었더니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간다고 하였다고 한다. 최익한은 어린 나이에 홀로 유배 온 단종을 자주 찾아뵙고 산머루나 다래 등도 따다드리면서 말동무를 했던 선비였다. 최익한이 꿈속에서 보았던 모습을 그대로 그려서 지금도 단종의 영정으로 쓰고 있다. 강가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은 영월의 호장인 엄흥도였다. 눈이 와서 추운데다가 달도 없는 캄캄한 밤중에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서 지금의 장릉 자리에 매장을 하고 전라도 지방으로 도망가서 숨어살았는데, 350여년이 지난 후에 영월 엄씨의 시조가 되었다. 단종이 죽자 왕을 모시던 궁녀들도 모두 강물에 뛰어들어 죽었는데, 궁녀들이 빠져죽은 동강의 절벽을 낙화암이라 부른다. 태백산 산신령이 된 단종은 그 후로 영월과 태백산 주변의 백성들에 의해서 신으로 모셔지게 되었는데, 신통력이 어찌나 좋은지 여러 무당들도 단종을 자신의 몸주신으로 모시게 되었고, 영월에서 태백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마을마다 단종을 모시는 사당이 수도 없이 지어졌다.”

 

단종은 제도권의 권력에서 밀려나 버려진 채로 불쌍하게 목숨을 버린 존재였다. 죽어서 산신령이 되어서 모셔졌다고 하더라도 단종은 엄연히 유한한 생명을 지닌 인간이었으므로 단종신화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떠받드는 민간이나 무당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전승되는 것이 된다. 인간이 죽어서 신으로 받들어지는 경우는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첫째, 고귀한 혈통을 타고 나거나 출생이 기이한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행동이나 그런 삶의 궤적이 있어야 한다. 셋째, 뛰어난 능력을 지닌 영웅이지만 때를 잘못 만나 실패한 존재여야 한다. 넷째,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훌륭한 행동과 삶의 궤적을 가진 존재여야 한다. 이상의 조건을 갖춘 인간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해서 신으로 모셔짐으로서 지상에서 비교적 높은 곳인 산에 머무는 산신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마을을 보호하는 신이 되거나 무당에 의해 몸주신으로도 모셔지게 되니 이러한 계통의 신화는 지모상승형신화가 되는 것이다.

 

2) 巨小神話

가. 地神突出形 建國神話

지신돌출형 건국신화는 땅속에서 신인이 나와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다스리는 이야기다. 이런 계통의 신화는 아랍과 인도 등을 중심으로 발달한 거소신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반도라는 위치 때문인지 대륙계의 천신강림형 건국신화와 남방계의 지신돌출형 건국신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인다. 우리신화에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우리민족의 신화가 세계 어떤 신화보다 폭넓은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거소신화의 전형인 지신돌출형 건국신화는 남방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제주도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후백제를 세운 견훤신화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남방에는 지신돌출형 신화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아래에서 제주도의 ‘三姓神話’를 살펴보도록 하자.

 

탐라에는 태초에 사람이 없었다. 이곳에는 하늘의 기운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기이하게 빼어난 한라산이 있었는데, 그 산이 신령한 화기를 내려 북쪽 기슭에 있는 모흥이라는 곳에 삼신인을 땅속에서 솟아나게 하였다. 삼신인이 태어난 곳을 毛興穴이라 부르는데, 땅 속에서 솟아 나왔다 하여 三姓穴이라고도 한다. 위쪽 구멍은 高乙那, 왼쪽 구멍은 良乙那, 오른쪽 구멍은 夫乙那가 솟아난 곳이다. 이 신인들은 고씨, 양씨, 부씨 등 세 성씨의 시조이시며 탐라국을 개국하셨다. 이 분들의 생김새는 매우 크고 도량이 넓어서 인간사회에는 없는 신인의 모습이었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 동쪽 바다를 보니 자주색 흙으로 봉한 木函이 파도를 따라 올라오는 것이었다. 세 신인은 그 나무상자를 따라 가서 함을 열어 보았는데, 그 속에는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이 있었고, 그 옆에는 자주빛 옷에 관대를 한 使者가 있었는데, 공손히 인사한 후 옥함을 열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푸른 옷을 입고 미모가 출중한데다 기품이 단아한 공주 세 사람이 좌석을 정하여 같이 앉아있었고, 또 소와 말 그리고, 오곡의 종자를 싣고 있었다. 사자가 두 번 절하고 엎드려 말하기를 ???저는 동해 碧浪國의 사자입니다. 우리 임금님이 세 공주를 낳으시고 나이가 성숙함에도 배필을 정하지 못하여 한탄하던 차에 하루는 紫宵閣에 올라 서쪽 바다를 바라보니 자주빛 기운이 하늘에 이어지고 상서로운 빛이 영롱한 가운데 명산이 있었고, 그 명산에 삼신인이 강림하여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배필이 없음으로 이에 저에게 명하여 세분 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배필을 맞는 예식을 갖추어 큰 나라를 세우는 창업을 성취 하시옵소서???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동쪽 하늘로 사라졌다. 이에 삼신인은 제물을 정결하게 갖추고 목욕재계한 후 하늘에 고하고 각기 세 공주와 혼인하여 연못 옆 동굴에서 신방을 차리고 생활하니 인간의 시작이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이 신화는 지금의 제주도인 옛 탐라국의 건국신화이다. 땅속에서 신인이 솟아났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미세세계를 통해 보여주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계통의 거소신화는 앞으로 인류문명이 나가야할 바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된다. 유전자공학으로 일컬어지는 미세세계를 향한 인류의 문명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앞으로 엄청난 발전을 거듭할 것으로 보이는데, 지신돌출형 건국신화는 인류문명의 미래를 앞당겨서 보여주는 상징으로 보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러한 유형의 신화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신화에도 나타난다. 땅 속에 사는 신령한 지렁이가 밖으로 나와서 인간인 여성과 혼인하여 나라는 세운 영웅인 견훤을 낳았다는 것이니 탐라국 건국신화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문화는 남쪽의 해양을 통해 유입된 고서신화 계통의 문화와 북쪽의 대륙을 통해 유입된 문화사 공존하는 상태라는 것을 인정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신화를 통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는 신화가 가진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신화는 하나의 부족이나 민족 등의 사회집단이 만들어낸 가장 발달한 형태의 상징물로서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세계관과 사회환경 등 그들의 삶 전체가 녹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볼 때 신화가 유입되었다는 사실은 그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한반도로 유입되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여러 현상과 이유들로 볼 때 제주도를 중심으로 하는 지신돌출형 건국신화는 천신강림형 건국신화와 더불어 우리 신화를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라는 사실과 함께 우리 신화만이 가질 수 있는 개별적 특수성 또한 강하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자료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 地下國怪物神話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지하에도 일정한 형태의 나라가 있으며, 그곳에는 괴물의 형태를 한 신적인 존재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어느 민족의 신화에서든 지하에 사는 신적인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손진태에 의해 지하국대적퇴치설화로 이름 붙여진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옛날 땅속에 사는 아귀라는 괴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땅위로 올라와서 왕의 공주 셋을 잡아가버렸다. 공주를 잃은 왕은 공주를 찾아오는 사람과 공주를 혼인시키겠다고 한다. 한 장수가 공주를 구하겠다고 하는데, 신선의 도움으로 지하국에 들어가서 속임수와 용기로 아귀 괴물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한다. 그러나 그 장수는 땅위로 올라오려다 부하들의 배신으로 다시 땅 속에 갇히게 되는데, 다시 신선의 도움으로 땅위로 올라오게 된다. 궁중으로 돌아와 보니 자신의 부하들이 공주를 구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 왕은 공주들과 함께 잔치를 열고 있는 중이었다. 장수는 왕 앞에 나아가 사실대로 고한 다음 배신한 부하들을 처벌하고, 공주와 결혼했다.”

 

괴물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해온 주인공이 공주와 결혼해서 잘살았다는 방식의 이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여기서 설정된 지하세계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세계와는 차이가 있는 中陰界 같은 곳이다. 땅위의 세상과 땅속의 세상을 이어주는 가교 구실을 하는 곳으로 주로 산 속이나 동굴 속으로 공간이 설정되고, 여기에는 신통력을 지닌 괴물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사는 괴물은 신통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지혜나 속임수를 당해내지 못하는 존재로 등급이 상당히 낮은 신에 해당된다. 이들은 주로 죄를 지어서 하늘의 신에게 버림을 받아서 귀양 온 존재이기 때문에 땅 위에 사는 인간에 대한 적개심이 많은 편이다. 지하국 괴물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이 신화들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몸 속 같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생각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마이크로 세계에 대한 개척정신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 部落神話

마을은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게 된 농경문화에서 최소한의 사회공동체로서 대단히 중요한 구실을 하던 조직이었다. 개인이나 가정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공동으로 하는 조직도 마을이었고, 교육이나 경제활동 등의 거의 모든 생활이 마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문화에서 마을은 첫째, 경제공동체, 둘째 문화공동체, 셋째, 혈연공동체, 넷째, 이념공동체 등의 구실을 하면서 구성원들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마을을 형성한 구성원들은 침략, 질병, 재해 등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내서 보존하면서 발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구성원들이 함께 힘을 합치기만 하면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엄청난 피해를 몰고 오는 천재지변이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 등은 자신들의 힘으로 쉽게 물리칠 수 없었다. 현대사회처럼 과학이나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이런 재해나 질병들이 모두 신의 노여움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마을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여러 형태로 신을 즐겁게 하였다. 풍성한 祭物을 준비하여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마을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자연물이나 동물 등에게 의탁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어서 숭배하는 부락신의 형태는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데, 산, 바위, 연못 등의 자연물이나 나무, 바위, 뱀, 호랑이, 두꺼비 등의 동식물이 있는가 하면 상상의 동물에서부터 산신령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양상의 존재로 나타난다. 이러한 부락신화들은 신계에 있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하늘신이거나 강림한 신이 아닌 토템적인 성향을 지닌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락신들은 절대자로서의 신이라기보다는 그 절대신의 부림을 받는 아래 등급에 속하는 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부락신의 이런 성격을 보면 신이 관장하는 공간의 범위가 신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민족단위로 형성되고 전승되는 천지창조신화나 건국신화 등은 절대신이거나 절대신의 아들 정도가 되는데, 이는 그 신을 섬기는 공간적 범위가 민족이나 국가 단위로 매우 큰 반면 지하국의 괴물이나 부락을 지키는 수호신 등은 절대신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라. 鬼神神話

사람이나 동물 등 살아있는 생명체는 정해진 수명이 있는데, 그 중에서 어떤 존재가 수명대로 살다가 죽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경우에는 죽은 혼백이 한을 품게 되고 귀신이 되어서 이승을 떠돌면서 산 사람을 괴롭히거나 한을 풀어달라고 애걸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귀신 중에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여성의 혼백인 처녀귀신이나 결혼하지 못하고 총각으로 살다가 죽은 남자의 혼백인 몽달귀신이 가장 무섭다고 하는데, 이러한 처녀귀신과 관련된 신화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최치원의 ‘쌍녀분설화’를 보도록 하자.

 

“최치원은 12세에 당에 유학하여 과거에 장원하고 漂水縣尉가 되었다. 어느 날 표수현 남계에 있는 초현관에 놀러갔다가 쌍녀분이라는 무덤을 보고 石門詩를 지어주고 외로운 혼백을 위로했다. 시를 짓고 관에 돌아오자 달이 밝고 바람이 좋은데 문득 아름다운 여자가 손에 붉은 주머니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녀는 시를 지어준 무덤에 살고 있는 八娘子와 九娘子가 보답하는 선물이라며 글귀가 쓰인 붉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주머니 뒤쪽에 쓰인 글에 그와 가까이 심사를 터놓고자 하는 뜻을 전하므로 기뻐하여 취금이라는 그 여자에게 답시를 써 보냈다. 취금이 시를 가지고 사라지자 잠시 후 문득 향내가 나며 두 여자가 손에 연꽃을 들고 들어왔다. 그가 꿈인가 놀라고 기뻐하며 시를 짓고 어디 사는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들은 표수현 초성의 鄕豪인 장씨의 딸로서 언니가 18세, 아우가 16세였을 때 각각 소금장수와 차장수에게 정혼하였다. 두 낭자는 이 혼처가 불만스러워 우울하게 보내다가 요절했으며, 오늘 최치원을 만나 심오한 이치를 논하게 되어 다행이라 하였다. 그가 무덤에 묻힌 지 오래인데 어찌 지나는 영웅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붉은 소매의 여인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비부뿐이었는데, 오늘 다행히 수재를 만나 기쁘다 하였다. 세 사람은 서로 술을 권하며 달과 바람을 시제 삼아 시를 짓고 시비 취금의 노래를 들으며 즐겼다. 최치원이 좋은 짝을 만났으니 인연을 이룸이 어떠냐고 하여 세 사람은 한 이불 아래 襁過之情을 나누었다. 날이 새자 두 낭자는 놀라며 천년의 한을 풀었다고 사례하며 시를 지어주니 최치원이 눈물이 흐르는 줄 깨닫지 못하였다. 뒷날 이곳에 오게 되면 거친 무덤을 살펴 달라 부탁하고 두 낭자가 사라지자, 그는 무덤으로 달려가 두 사람을 애도하는 장시를 지었다. 뒤에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여러 곳을 주류하다가 마지막에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다 죽었다.”

 

屍愛說話로도 불리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죽은 귀신의 혼백이 산 사람의 눈앞에 나타나서 살아있는 인간처럼 행동하면서 자신이 품은 원한을 푸는 그런 방식이다. 이런 귀신신화는 이 외에도 경상도 밀양의 ‘아랑설화’를 비롯하여 전북 남원의 ‘薄色說話’와 ‘萬福寺樗蒲記’이 등장하는 귀신이야기 등 아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특히 굶어죽거나 얼어죽거나 하는 등 참혹하게 죽은 사람의 혼백과 동물이나 식물 등이 한을 품고 죽어서 된 귀신, 그리고 질병을 일으키는 온갖 잡스런 神物들을 雜鬼라고 하는데, 이러한 잡귀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것들이 원하는 바를 해결해주는 방식의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인공 신물들의 성격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귀신과 잡귀 등은 지상에 거주하는 다른 신들보다 한층 아래 층위의 것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이 가진 성격에 따라 각각의 자리 매김이 주어진다면 신화의 큰 틀 안에서 중요한 구성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마. 도깨비神話

도깨비는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한 잡된 귀신의 하나인데. 비상한 힘과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이나 심술궂은 짓을 많이 하는 존재로 정의된다. 일반적으로 도깨비는 자연물이 오래되어서 신령스런 존재로 된 것이거나 사람이 오랫동안 쓰던 물건 중에서 인간의 피가 묻은 다음 들판 같은 곳에 버려지면 그것이 둔갑하여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도깨비는 시퍼런 불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남성을 홀리기도 하며, 씨름꾼으로 나타나서 씨름으로 시합 할 것을 제의해오기도 한다. 또한 어떤 경우는 사람의 꾀에 속아서 인간에게 아주 유익한 일을 하기도 하고, 무엇이나 주문대로 만들어내는 방망이를 가지고 있기도 한 존재가 바로 도깨비다. 이러한 도깨비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우주 만물에게도 모두 혼백이 있다고 믿었던 우리 민족의 靈魂觀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지만 인간에게 늘 당하는 신물인 도깨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군상 만큼이나 다양한 형태와 복잡한 성격을 지닌 존재이다. 도깨비는 비록 인간 보다 아래에 속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신물에 대한 이야기이기인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신화로 보아야 할 것인데, 상위 그룹에 있는 어떤 신화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신화의 체계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는 구성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바. 저승神話

인간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유기체이기 때문에 한 번 태어난 이상 누구나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죽는다는 것은 육체의 움직임이 멈추면서 숨이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육체는 죽어도 정신은 죽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지면 그 영혼은 차원이 다른 세상으로 간다고 믿어서 그 영혼이 가는 세상을 여러 형태로 상정하여 수많은 종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후 세계에 대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생각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범위를 넓혀가면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일정한 지역이나 부족이나 민족적 신화의 범주로 머물러 있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훨씬 정교한 형태로 발전하여 체계화함으로서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한 것들도 있다. 신화의 형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든 종교적 형태로 승화한 것이든 모두 사후세계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물질적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세상과는 다른 것으로 그려진다. 예를 들면 시공을 초월하여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든지, 모습을 마음대로 바꾸는 변신이 자유롭다든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다든지, 형체가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든지 하는 것들을 꼽을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가는 그곳을 저승이라고 하는데, 위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기본으로 하여 영혼의 주인공이 살았던 이승에서의 삶과 연결시켜서 만들어지는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덧붙여진다. 이승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남을 많이 도와준 일을 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다시 얻어서 행복하게 살고, 이승에서 도둑질이나 강도질 등의 나쁜 짓을 많이 하거나 올바르지 못한 마음이나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사람의 영혼은 저승세계에 가서 심판을 받은 후 지옥으로 가서 이승에서 보다 훨씬 더한 고통을 영원히 당하면서 살게 된다는 식의 내용 전개가 그것이다. 그리고 저승에는 사람들의 영혼을 조사하고 판결을 내리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어서 이들의 영혼을 일일이 심판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승이야기로 만들어지는 설화는 모두 신화계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심판관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 모두 신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고, 신의 세계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승신화는 땅속 세상으로 지칭되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기 어려운 어떤 세상, 즉, 마이크로세계에 대한 것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승신화는 신화 중에서 가장 아래에 속하는 종류의 이야기라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 외에도 우리에게는 한층 다양한 종류의 신화와 신들이 있다. 작은 언덕이나 시냇물에까지도 그것을 지키고 사는 신들이 있는가 하면 집을 지키는 신에서부터 부엌이나 화장실을 지키는 신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생활을 이루고 있는 주변 환경의  모든 존재가 물질의 세계임과 동시에 신의 세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서 각각의 구실을 하고 있듯이 이러한 신들도  우리 문화 체계 안에서 일정한 자리 매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사라지면서 우리 문화가 가진 특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 신화의 체계화가 요망되는 때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2.한국신화의 체계화 방안

위에서 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세계 신화의 존재양상은 크게 보아 거대신화와 거소신화로 양분되어 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반도라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북방계와 남방계의 문화가 결합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가 이처럼 남방계와 북방계가 합쳐지다 보니 문화현상의 하나인 신화 역시 북방계에서 들어온 거대신화와 남방계에서 들어온 거소신화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 신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을 아마도 세계에 유일무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것들을 그대로 방치해둔 상태로 살면서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체계화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 21세기의 세계는 문화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문화적 특성을 제대로 살린 자리매김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된다. 우리 문화를 체계화하여 거대한 문화과학으로 키워내는 일이 앞으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할 때, 신화의 체계화는 다른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전제로 하면서 미흡하나마 우리 신화의 체계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우리 신화를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일정한 관계를 형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적·수평적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모든 신에게 일정한 층위를 정해야 한다. 가장 높은 단계의 신에서부터 가장 낮은 단계의 신에 이르기까지 순서를 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해서 그것에 맞는 순서를 정하는 일은 먼 미래에 우리 신화를 세계적 수준의 신화로 키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천지창조를 신화의 원초적 모습으로 본다면 그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가 가장 높은 신이 될 것이고, 가장 높은 신을 주신으로 할 때, 신이 하는 구실에 따라 순서가 정해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하늘의 명을 받아  하늘 아래 세상으로 내려오거나 올라와서 우매한 인간을 다스린 신들이 그 아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 신들은 반인반신적인 존재로서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왕래할 수 있는 층위의 신이 될 것이다. 이러한 순서에 의해 신들의 순서가 정해지면 다음으로는 신화를 체계화하기 위한 좀 더 구체적인 단계로 나가야 한다.

 

우리 신화를 체계화하기 위한 두 번째 단계는 높낮이가 정해진 신의 순서에 따라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구조화해야 하는 일이다. 구조는 사물·현상을 이루는 틀을 말하는 것으로 구조에 의해 내용의 의미가 창조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구조는 개별성을 만드는 끊어짐과 와 특수성을 만드는 이어짐이 변증법적으로 결합한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구성요소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하면서도 일정한 관계 속에 하나로 결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이러한 성격을 가지는 구조가 제대로 형성되기만 하면 우리 신화는 거대한 문화적 체계를 이루면서 우리와 세계인의 삶 속에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가장 높은 신에서부터 가장 낮은 신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얼마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연결되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구조에 의해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신화 속에 존재하는 신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성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연결될 수 있느냐에 의해 우리 신화가 세계 신화로 우뚝 서느냐 마느냐가 판가름 날 것이다. 우리 신화의 거대 체계를 형성할 수 있는 구조적 틀이 만들어지면, 다음 단계인 알맹이의 관계 형성의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신화를 체계화하기 위한 세 번째 단계는 신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의 유기적 연결이 될 것이다. 이미 위에서 정해진 위치에 따라 각각의 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정해졌고, 그것을 어떤 틀 속에 넣어서 구조를 형성할 것인가가 정해졌기 때문에 역시 독립적으로 존재해왔던 수많은 신화의 내용들을 일정한 관계 속에 넣어서 매끄럽게 연결시켜야 한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각각의 위치에서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내용들에 대한 가다듬기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단계의 작업은 분산되어 있어서 일정한 체계 안에서는 거칠 수밖에 없는 신화적 상상력을 통일된 관계를 형성한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일이 될 것이다. 내용과 내용의 유기적 연결을 위해서는 문체가 가진 예술적 성격이 매우 중요한데, 이것은 매우 섬세한 행위이면서 신화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예술적 재능이 아주 뛰어난 작가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나면 이 때부터 가장 중요한 단계로 돌입하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신화라 할지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알려서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생활 문화의 차원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그것을 죽은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화를 체계화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체계화한 신화를 문화과학으로 승화시켜 생활 속에 녹아들도록 하는 일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문명의 도구들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문화산업 소재들 중에 신화와 관련을 맺지 않은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단계의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이 단계는 신화의 체계화 작업이 되는 단계임과 동시에 신화가 우리 생활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최종적인 완성 단계라고 할 수 있다.

   

IV. 結論

21세기의 벽두부터 이미 시작된 세계의 문화전쟁은 우리로 하여금 민족문화를 상품화하여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각각 독자적으로 존재하던 수많은 종류의 문화현상들이 세계화되고 표준화된 문화현상들에 의해 잠식당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민족의 문화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체계화 하여 세계적인 상품으로 포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시점에 와있다. 본고는 문화의 세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함과 동시에 세계문화와 당당히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그런 수준으로 우리 문화를 키워내기 위해 신화의 체계화 방안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분석한 우리 신화의 성격과 종류, 그리고 체계화 방안 등은 우리 신화를 세계의 신화로 만들기 위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이제 겨우 시험적인 단계밖에 되지 못하는 방안의 大綱을 제시한 정도밖에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신화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예술적·철학적 의미를 모두 해석해 내어 삶 속에 녹아있으면서 생활의 일부가 된 살아있는 신화로 거듭나도록 함과 동시에 우리 신화를 세계 속의 신화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민족적 차원의 거국적인 노력이 보태져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할 때만이 필자가 위에서 제시한 한국 신화의 체계화가 완성되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신화가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각광받게 될 것이다. 우리 신화에 대한 좀 더 활발한 연구와 그것을 세계의 신화로 살려내기 위한 시도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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