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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재미있는 우리말

며느리의 어원

by 竹溪(죽계) 2007.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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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의 어원에 대하여

 

최근 여성부라는 국가기관에서에서 가족 호칭에 나타난 여성비하적 표현이라는 주제 아래 우리가 쓰는 말 중에 남존여비사상에 근거를 둔 용어를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게 할 수 있는 호칭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켐페인을 벌인다는 글을 보았다.

 

이 단체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 가운데, “며느리”에 대한 해석이 특히 눈에 띈다. 이 단체의 주장에 의하면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아들에 딸려서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라고 하면서 철저한 남존여비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며느리”란 말의 어원과 그 말이 생겨나게 된 사회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며느리”라는 말의 뜻에 여성비하적 의미가 전혀 없고, 오히려 여성 존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며느리”의 뜻이 여성비하적이라고 하면서 모 사회단체에서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말 어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두 권의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저서에서 하는 “며느리”에 대한 해석이 설득력을 가지기 힘든 주관적인 것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우선 사회단체에서 인용하고 있는 두 주장을 살펴보도록 한다.

 

“며느리는 며늘/미늘/마늘+아이의 구조로서 그 기원이 되는 며늘이란 말은 덧붙여 기생한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즉 며느리는 내 아들에게 딸려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라는 뜻으로 철저한 남존여비 사상에서 비롯된 호칭어입니다. 같은 어원을 가진 며느리발톱이란 말도 있는데, 이는 짐승이나 조류의 발뒤꿈치에 붙어 있는 쓸모없어 퇴화된 기관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우리말의 속살, 천소영, 창해)

 

“15세기 문헌 표기도 오늘날과 같은데 사투리인 메나리, 메누리 등에서 메(진지,밥)+나르(다)+이로 분석됩니다. 따라서 며느리의 어원은 시집식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제사 때 음식(제삿밥+메) 나르는 일을 도맡아 한다는 뜻에서 진지를 나르는 사람입니다.”(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백문식/삼광출판사)

 

여기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사회단체에서 인용하고 있는 두 개의 글에 의하면 “며느리”라는 말은 ‘더부살이 하면서 남성에게 붙어서 기생하는 존재, 혹은 시집식구들에게 밥이나 만들어 나르는 사람’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며느리”라는 표현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인용에서 주장하는 며늘/미늘/마늘이 기생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기록이 어떤 문헌에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주장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며느리”의 ‘리’를 ‘아이’로 해석하는 것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주장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주장은 어원에 대해 상당히 가깝게 접근했으나 마지막 해석에서 사회문화적 배경을 무시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한다.

 

“며느리”를 ‘메’와 ‘나리’로 분석하면서 ‘메’를 ‘진지’ 혹은 ‘밥’으로 해석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느리’를 ‘나르다’로 해석하면서 이 주장은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리’ 혹은 ‘느리’는 ‘나르다’로 형태변화가 되거나 해석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며느리”의 어원은 무엇일까?

 

우리 문헌에서 아들의 부인이란 뜻으로 “며느리”란 말이 보이는 기록은 조선 후기의 사설시조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시키면서 며느리를 미워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푸념을 읊은 시조 작품에 등장하는 표현에는 ‘며나리’ 혹은 ‘며느라기’로 나온다.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며느리”의 오래된 명칭은 ‘며나리“ 혹은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 쓰고 있는 ’메나리‘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대어 “며느리”의 원형은 ‘메나리’로 볼 수 있게 되는데, ‘메’는 현대어에서 ‘며’로, ‘나리’는 ‘나리’ 혹은 ‘누리’, ‘느리’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며느리”의 원형인 ‘메나리“는 ‘메’+‘나리’가 되어서 ”메를 내려 받는 사람“이 된다. 여기서 ‘메’는 신에게 바치는 음식 중에서 밥을 가리킨다. 지금도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세가 많은 어른들은 밥을 가져오라는 말 대신에 “‘메’를 올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제사는 매우 오래된 행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메’가 얼마나 오래된 표현인가를 알 수 있다. 또한 이 ‘메’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밥을 가리키는 ‘메시’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메’가 오래된 어휘라는 방증 자료가 되기도 한다.

 

제사는 신에게 음식을 올려서 신을 즐겁게 함으로서 가족의 번창과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가 중심을 이루는데, 가정의 제사가 커지면 부락 단위로 하는 동제사가 되고, 그것이 커지면 부족제가 되며, 그것이 더욱 커지면 국가적 행사인 천제가 된다.

 

한 가정에서 제사를 모시면서 조상을 숭배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이 번창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손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제사를 잘 모셔야 함은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제사를 모시는 중심인물이 바로 “며느리”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제사를 모신다는 말 속에는 표면적인 의미보다 더 깊은 이면적인 의미가 있다. 제사를 모신다는 것은 자손들이 조상을 숭배하는 일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손을 많이 생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손을 생산하는 것은 여성이 하는 일이므로 제사를 모신다는 말 속에는 자손을 생산한다는 의미를 함께 가질 수밖에 없다. 즉, 자손을 생산하는 주체인 사람이 제사를 받드는 주체가 되고, 그런 의미에서 ‘메’를 ‘내려 받는’ 사람이 곧 “며느리”인 셈이다.

 

인류가 사회나 가정을 제대로 꾸려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것 중에 일차적인 것은 가정을 보전할 자식을 생산하는 것이고, 이차적인 것은 유기체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먹이의 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선조들은 한 가정을 자식의 생산을 주관하는 부분과 먹이의 생산을 주관하는 부분으로 나누어서 운영했는데, 자식을 생산하고 조상을 모시는 일은 여성이 담당하고, 먹이를 생산하여 가족을 먹이는 일은 남성이 담당하도록 했다.

 

특히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전통사회에서는 자식을 생산하여 길러내는 일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잘 안 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조상신을 비롯한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올려서 그들의 음덕을 받는 일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가정의 어머니는 제사장이 하는 일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격 숭배 행위인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음식이고, 음식 중에서도 밥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어받아 가정을 이끌어갈 존재가 바로 아들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관계로 “며느리”라는 말은 한 가정의 제사장을 이어받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메나리”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며느리”의 어원이 자식 생산의 주체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명확해지면 이것이 여성비하의 표현이 아니라 남녀평등, 나아가서는 가정이 여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대변해주는 여성숭배와 존경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자식의 생산이 인간의 생산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우리 선조들이 여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서 쓴 “며느리”라는 말이 이처럼 잘못 해석된다는 것은 심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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