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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우리문화칼럼

매춘부의 일생, 그 시작과 끝

by 竹溪(죽계) 2006.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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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부의 일생, 그 시작과 끝


성매매, 즉 매춘의 역사는 아마도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라 그리고 고려와  조선시대까지의 기생의 역사를 논외로 한다면,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이르러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양의 매춘이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 말 성장한 기생모습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었던 기생제도를 없애고 기생조합이라는 이상한 형태의 권번을 만들면서 전국 곳곳에 유곽을 세워 공창제도를 도입하여 매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일본제국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기생들을 이용하여 일본 내지인들의 관광을 유치하였고, 활쏘기대회나 박람회 등을 개최하여 자신들의 통치에 이용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예기로서의 기생은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며 접대부로서의 매춘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런 과정을 통하여 매춘은 우리 사회에 점점 깊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6.25 전쟁 후에는  미군이 주둔한 부대 주변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지촌 같은 것을 통해 매춘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었다.

 

 

활쏘는 기생의 모습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도 매춘을 하는 사람들의 주요 지역들이 만들어졌는데, 예를 들면 서울 청량리의 588번지 일대, 하월곡동 88번지 미아리텍사스 일대, 수유리텍사스 일대, 부산의 완월동 일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여성이 중심인데, 그 조직과 시장은 엄청나게 큰 것으로 보인다.


7,80년대에는 일명 호스티스 영화라 하여 「영자의 전성시대」를 필두로 「별들의 고향」,「꽃순이를 아시나요」 등의 생계형 매춘 영화가 수십 편씩 제작되어 당시의 사회를 핍진하게 그려냈던 시기도 있었다. 이렇듯 매춘은  영화나 매스컴 등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춘을 하는 사람들이 그 생활을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을 맺는지에 대해서는 연구되거나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싫거나 좋거나 우리 사회의 문화현상으로 존재하는 매춘에 대해서는 아무도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매춘부의 일생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는지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려고 한다.


글쓴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볼 때 매춘부의 일생은 크게 다섯 단계 정도로 나누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직업으로서의 매춘기 둘째, 술집작부와 다방레지로서의 매춘기 셋째, 결혼을 위한 매춘기 넷째, 뱃사람들과의 매춘기 다섯째, 포주로서의 마감기가 그것이다.


이제 아래에서 이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 직업으로서의 매춘기


이 시기를 보면 나이로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이며, 위에서 말한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매춘을 하는 때이다. 육체적으로 가장 아름다울 때이기도 한 이 시기는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의미 있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어렵고 고달픈 생활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주위 여러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이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가 계시는 가정에 물질적 도움을 주기도 하고, 포주에게 사랑을 받기도 하며, 단골손님과의 사랑도 가능한 때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둥서방이라는 남성의 생계를 책임지기도 하는데, 기둥서방과는 평생을 약속한 사이가 아닌 계약관계이기 때문에 오래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들과의 관계는 매춘부가 매춘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간 동안만 유효한 것이 된다.


그들의 인생에서 이 시기는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번 돈을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속한 포주에게 갚아야할 돈을 비롯하여 자신을 지켜주면서 곁에서 붙어사는 기둥서방 생활비를 비롯하여 고향에 보내는 생활비 등을 제하고 나면 자신은 라면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매춘부가 된 사연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60·70년대까지나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만 해도 무작정 상경소녀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생계형으로 매춘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진 재주와 학벌이 없었던 그들은 좋은 곳에 취직은 할 수 없으니 자신의 몸을 파는 일을 해야만 자신과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춘부가 지닌 이러한 애환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일명 <영자송>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노래에 나타나고 있다.


“영자야 내 동생아 몸 성히(성히 성히 성히) 잘~ 있~느냐. 여기에 있~는 이 언니~는 여대생이 아니란다. 여기에 있~는 이 언니는 청~량리 하고도 오팔팔에서 몸을 파는 나룻배란다. (짜~자 짠~짠 짜자자자 짠~짠)” 자신의 집에 있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노래는 자신을 여대생으로 알고 있는 고향의 여동생과 부모를 향한 메아리 없는 절규나 마찬가지다.

 

출처 : 다음 photo viewer(http://movie.daum.net/movieInfo?mkey=1462)


매춘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로 이런 사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차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떠돌게 되니 이때부터 이들의 인생은 부평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구구절절한 사연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수입이 많을 때는 그래도 괜찮은 상태라 할 수 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말이 있듯이 젊고 아름다운 몸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더구나 잘 먹지도 못하는 생활을 하면서 혹사를 당해야 하는 이들의 육신은 일반인들에 비해서 몇 배 빨리 노쇠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더욱 슬픈 것은 나이가 조금만 들면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곳을 찾는 손님들은 되도록 어린여자들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이미 환갑을 지났다고 하여 더 이상 그 바닥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연이 직업으로서의 매춘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니 그 때부터는 그곳을 떠나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둘째, 술집 작부와 다방 레지로서의 매춘기

 

방만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모양


20대 중반을 넘기면서 직업적인 매춘의 세계에서 밀려난 매춘부들은 한 단계 낮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 술집의 작부(酌婦)로 옮겨가게 된다. 술을 따라주면서 장단을 맞추고, 몸을 팔아가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이들의 삶인데, 문제는 손님의 수준이 매우 떨어진다는 데 있다.


직업적으로 매춘을 할 때는 돈을 받고 성관계만 하면 되었지만 술집의 작부는 술 마시는 손님들의 온갖 푸념과 행패를 다 견뎌야 하기 때문에 보통 고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술을 같이 마셔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체력이 아니고서는 이 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술집작부로서의 매춘기는 길게 갈 수가 없고, 짧은 시간에 끝을 내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된다.


더구나 술집의 손님들 역시 일반적으로 어린 사람들을 찾기 때문에 이들이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 짧은 시간을 견딘 이들이 다음으로 옮겨가는 곳이 바로 다방이다.


다방은 차를 취급하는 곳인데, 삼국시대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현대식 다방은 일제시대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최근까지도 서민들의 삶과 함께 해 오다가 198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서서히 힘을 잃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역사를 가지는 현대의 다방은 그 종류가 상당히 많은데, 그 중에서 커피를 배달하거나 티켓을 끊는 곳이 문제의 장소가 된다. 커피를 배달하거나 티켓을 끊는다는 것은 매춘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 직업적인 매춘의 현장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있어서는 더 없이 좋은 직업 현장이 된다. 얼마 전 상영되었던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의 전도연을 보면 상황이 좀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다방은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중소도시나 면소재지가 있는 농촌 마을까지 깊숙하게 들어가 있으므로 선택의 폭이 다소 넓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하여 이곳이 그들에게 안정된 안식처를 제공해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여관 같은 데서 커피 배달을 시켜서 매춘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나 티켓을 끊어서 매춘을 요구하는 사람들 역시 한 살이라도 나이가 어린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찾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가면 이곳에서조차도 점차 밀리게 되기 마련인 것이 이들 매춘부들의 삶이다.


다방레지에서도 밀려날 때가 되면 20대 말기 정도의 나이에 이르는데, 손님도 점차 줄어들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평생을 위해서도 안정된 자리를 잡거나 결혼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 동안 살아온 삶이 고향이나 부모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앞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된다. 결혼을 위해 이들이 선택하는 것이 바로 휴전선행이다.


셋째, 결혼을 위한 매춘기


1945년 이후 38도선을 중심으로 하여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는 아직까지 합쳐지지 못한 상태에서 대치된 상태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대치된 상태라는 것은 군사적 대치상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휴전선 부근에는 엄청난 숫자의 군부대가 밀집해 있다.

 

휴전선 모습(국방부 공개자료 )

 

휴전선이 아닌 후방에도 군부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전선에 있는 군부대는 늘 긴장상태에 있으며, 외출과 외박이 엄격하게 금지된 곳이다. 군대는 물론 나라를 지키는 임무가 중심이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가장 혈기왕성한 시기의 청년들이 모여 있는 남자들만의 조직으로 엄청난 금욕생활을 강요당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가장 정력이 강한 사람들에게 금욕을 요구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군대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서는 나이와 미추를 가리지 않고 치마만 둘렀으면 모두 여자로 본다고 할 정도다. 그러므로 군대에서 부르는 노래는 거의가 성적인 노래이다. 군대의 이러한 상태를 잘 보여주는 노래로 <홀애비나라>라는 노래가 있다.


“여기는 별천지 홀애비나라 언제나 씩씩한 홀애비나라 오늘은 훈련 내일은 외출 모레는 땡깡 여기는 별천지 홀애비나라 우리 마누라 키가 작아 싹싹하기는 그만인데 부엉이 눈깔을 뜰때면 자동차 헤드라이트 못당해 예스 오케이 나는 좋아 예스 오케이 나는 좋아 ....(생략)”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전의 군대에서는 음식에 정력감퇴제를 섞어 놓았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었다. 두부에 그것을 섞었다고도 하고, 콩나물국 같은 것에도 그것을 섞었다고도 하였다.


특히 비상용 건빵을 먹은 뒤에 보면 봉지의 마지막에는 별모양을 닮은 사탕이 들어 있는데, 그것을 깨 보면 그 속에 노란 약 같은 것이 있고, 그것이 바로 정력감퇴제라고 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것은 버리고 사탕만 먹기도 하였다.


성적 욕구가 강제적으로 억제된 군인들은 이성에 대한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지게 되는데, 직업전선에서 밀려난 매춘부들은 결혼 대상으로 이보다 더 좋은 상대는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런 관계로 나이가 든 매춘부들은 휴전선 근방의 군부대 근처의 다방에 레지로 취직하여 군인들을 상대로 하여 영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는 매춘이 목적이 아니라 결혼이 목적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는 일을 되풀이하게 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주로 3개월을 주기로 하여 휴전선 부근의 다방 레지는 교체가 되는데,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두 줄기의 흐름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휴전선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아가는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아가는 그룹이 그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노리는 상대는 나이가 어려서 아직 결혼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일반 사병이 아니고 직업군인으로 가장 낮은 계급에 있는 하사관급 군인들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물론 다르겠지만 15-20년전 까지만 해도 하사관급 직업군인들은 사회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워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생활력이 강한 매춘부 출신의 여성을 아내로 더 적합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든,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든 휴전선 155마일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적절한 상대가 나타나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자리에 정착하여 평생을 마치게 되는데, 이런 사람은 아주 복 받은 매춘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넷째, 뱃사람들과의 매춘기


휴전선 155마일을 한 바퀴 도는데도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곳에서 결혼에 실패한 사람은 눈물을 머금고 다시 후방의 직업전선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서 이들이 향할 곳은 해안가의 항구도시나 섬 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짧게는 몇 개월씩, 길게는 몇 년씩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고된 작업을 했던 외항선원들과 섬의 뱃사람들을 상대하는 매춘의 길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


뱃사람들은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상대보다 거친 것이 사실이지만 몸도 마음도 늙고 지친 상태의 매춘부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고단한 과정을 거쳐 오면서 드디어는 매춘부로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 동안 수없이 겪어온 엄청난 경험들과 몸에 배일대로 배인 인생살이 지혜를 이용하여 포주로서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포주로서의 매춘기


청춘과 시간을 바쳐서 익혀온 인생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작한 새로운 직업은 바로 매춘을 알선하고 매춘부를 팔아넘기는 일을 하는 포주가 된다. 포주는 고리대금업자와 비슷한 방법을 동원하여 매춘부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 놓는다고 하는데, 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들이 바로 매춘부 출신들이어서 그 세계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춘부가 살았던 이러한 삶은 실재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 동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하나의 현실이기 때문에 그냥 넘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늘 해 보곤 한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지만 또한 우리가 보듬고 가지 않으면 안 될 문제이기 때문에 가슴을 더욱 짠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 사용된 그림 사진은 글쓴이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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