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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땅이름문화사

땅이름문화사(30)-홍천

by 竹溪(죽계) 2026.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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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문화사(30)-홍천(洪川)

동쪽은 양양, 북쪽은 춘천, 서쪽은 가평, 남쪽은 횡성과 맞닿아 있는 홍천은 산과 물이 아주 잘 어우러진 고장이다. 백두대간 서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지 산악 지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산과 계곡이 많다. 산과 계곡이 잘 발달한 곳이므로 물이 풍부하여 강을 이루니 사람들이 물길을 따라 삶의 터전을 일구어 살고 있다. 예로부터 풍속이 순후(淳厚)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고구려 시대부터 공식적으로 붙여진 땅이름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홍천의 고구려 때 땅이름은 벌력천(伐力川)’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735)에 녹효(綠驍)로 고쳤고, 고려 현종(顯宗) (1018)에 지금의 지명인 홍천으로 고쳤다. 문헌 기록으로 볼 때 벌력천이란 땅이름이 가장 오래된 것인 데다가 후대의 지명에도 그대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이므로 이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현재까지 남아 전하는 고구려 때의 땅이름은 대부분이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어서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식(吏讀)으로 되어 있는데, 벌력천이란 지명 역시 이두 표기인 것으로 보인다.

땅이름을 표기하는 이두에서 은 보통 가장 끝에 오는데, 넓고 평평한 땅을 뜻하는 우리말 (벌판)’을 나타내는 것으로 많이 쓰였다. 서라벌(徐羅伐), 달구벌(達句伐), 사벌(沙伐) 등에서 이런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어떤 경우는 불(), 부리(夫里) 등의 뜻으로도 쓰여서 마을이나 사람이 모여 사는 지역()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골벌(骨伐) 같은 지명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이 모여서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으니 그 쓰임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땅이름 표기의 맨 앞에 있고 뒤에 다른 글자가 올 경우는 그 쓰임이 달라진다. 이때에는 뒤에 오는 말을 꾸미면서 뜻을 한정시켜 분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므로 소리를 빌려서 표기하는 방식(音借)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뒤에 오는 글자와 함께 연결하여 그 용도를 올바르게 헤아려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벌력천이란 땅이름에서는 뒤에 오는 것이 이므로 이와 결합 된 표현의 일부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 력)’’, ‘리억’, ‘리크등으로 발음될 수 있는 것인데, 현대 우리 말에서는 을 표준 소리로 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이두로 쓰일 때 이 글자가 어떻게 발음되었는지는 함부로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훈민정음이 창제될 당시나 그 후 조선 시대가 끝날 때까지도 받침이 지금처럼 분명하게 구분되어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의 구실은 아주 미약했거나 받침 자체가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받침이 쓰였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으로 확신하기도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므로 이 글자는 앞과 뒤에 쓰인 다른 글자와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풀이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내 천)’은 이두식 지명이나 한자식 지명 표기 등에서 전국적으로 매우 폭넓게 나타나는 것인데, 물가에 있는 넓고 평평한 곳으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거나 시내보다는 크고 강보다는 작은 물줄기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였다. 춘천(春川), 제천(堤川, 堤州), 연천(漣川) 등의 지명에서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伐力川伐力을 꾸미면서 한정하여 그 뜻을 분명하게 만드는 구조이므로 伐力을 따로 살펴보아야 한다. ‘伐力에서 ’, ‘’, ‘등의 소리로 발음될 수 있다. 우리말에서 은 얼마든지 혼용될 수 있는데, 땅이름에서도 이것은 그대로 통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ㄷ과 ㅈ, ㄱ과 ㅇ 등도 마찬가지이며, 받침에서는 ㄴ, , ㅇ도 서로 넘나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伐力川을 기반으로 해서 한자 지명으로 바꾼 시기가 신라 경덕왕 때인데, 이때 伐力으로 바꾸었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도록 한다.

伐力에서 ’, 혹은 로 봐야 한다. 우리말에서 은 통해서 쓸 수 있기 때문인데, 뒤의 과 이어지면서 이렇게 소리 나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이 표현에서 ’, 혹은 리어로 발음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다른 것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앞의 과 연결해서 유용하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 혹은 로 볼 경우 이 말은 퍼러’, 혹은 퍼리가 된다. , ‘伐力퍼러’, 혹은 퍼리의 소리를 빌려서 쓴 음차 이두 표기가 되는 것이다.

퍼리’, 혹은 퍼러푸리로 발음되기도 하는데, ‘퍼렇다’, 혹은 퍼러ᄒᆞ다의 어간이다. 현대어에서 퍼렇다는 다소 탁하면서도 어둡게 흐리다는 뜻으로 풀이하는데, 중세 국어에서는 청록색(靑綠色)퍼러ᄒᆞ다라고 했다. 두보(杜甫)의 시집을 우리말로 풀이한 것으로 1481년에 편찬된 두시언해(杜詩諺解)에서 뭇 나뭇의 끝이 퍼러ᄒᆞ고다듬지 않는 돌(雜石) 그림자는 비스듬히 서 있네(葱靑衆木梢, 邪竪雜石痕)”라고 한 것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총청(葱靑)이 청록색, 혹은 녹색을 의미하기 때문에 퍼러ᄒᆞ고로 풀이했다.

청록색, 녹색 등은 기본색을 두 개 이상 섞어서 만들어낸 간색(閒色)인데, 파랑()과 노랑()의 중간에 해당하는 색이다. 나뭇잎의 색을 말할 때 주로 사용하는데, 나아가 뫼()의 색을 지칭할 때도 쓰인다. 두시언해에서는 山靑花欲燃이라는 구절을 뫼히 퍼러ᄒᆞ니 고지(꽃이) 블 븟난닷도다(불붙은 것 같도다)’라고 한 것에서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퍼리다’, ‘푸리다’, ‘퍼러ᄒᆞ다’, ‘퍼렇다등은 모두 녹색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등에서 홍천 지역을 伐力川縣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 자체로 땅이름을 나타내기 위한 이두 표기로 되어 앞의 伐力이 뒤의 을 꾸며줌으로써 뜻이 한층 명확해지는 주어, 혹은 중심어가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은 뜻을 가져와서 표기하는 훈차(訓借) 이두가 되어 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伐力川푸리내’, 혹은 퍼리내가 된다. ‘伐力川은 신라 경덕왕 대에 녹효(綠驍)로 바뀌는데, 고구려 땅이름을 그대로 살려서 표기한 한자 지명이다.

8세기 무렵 신라에서는 전국 지명을 모두 한자 표현으로 변경했는데, ‘伐力川綠驍로 바꾸었다. ‘은 실에 물감을 들인다는 것에서 시작된 글자인데, 나중에 청색과 황색의 중간색인 초록이란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무의 초록 잎, 산의 색깔, 물 빛깔 등을 나타낼 때 주로 쓰는 글자가 된다. ‘(날랠 효)’는 말이 머리를 힘차게 내두르며 달린다는 뜻을 기본으로 하여 좋은 말을 나타내는 뜻을 기본으로 하도록 만들어진 글자이다. 후대로 오면서 의미가 확대되어 용맹하다, 날래다, 거세다 등의 의미로도 쓰였다. 우리말로는 푸리 내(푸른 내)’라는 뜻을 가진 녹효는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이 늘 초록색을 가진 강이 되어 흐르는 특성을 보여주는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홍천 지역은 지금도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언제나 물이 풍부하고 맑은데, 아주 오랜 옛날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니 녹효는 이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한 땅이름이 된다.

신라 때부터 땅이름으로 쓰이기 시작한 綠驍는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고 조선 시대 후기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지금은 양수리에서 합치는 두 갈래 물길을 북한강, 남한강이라고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북한강은 녹효수(綠驍水), 남한강은 황효수(黃驍水)라고 불렀다. 녹효수는 산과 산 사이에서 물이 흘러나오므로 늘 푸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황효수는 평야 지역을 흘러가므로 비가 많이 오면 누런색으로 거세게 흐르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 경기도 여주(驪州)의 옛 지명이 황효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다.

북한강의 조선 시대 이름인 녹효수라는 말이 홍천의 신라 때 땅이름에서 왔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그만큼 산과 물이 많고 아름답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고려 현종 때에 지금의 지명인 홍천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신라 때의 지명인 녹효는 강 이름으로 살아남으면서 북한강의 본질적 성격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명칭이 된 것이다. 홍천강은 지금도 굽이굽이 돌면서 여러 사연을 만들어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홍천이라는 지명은 伐力川이나 綠驍등에 비해 상당히 직설적이어서 사람들이 이 지역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형성자(形聲字)(함께 공)’이 좌우로 결합한 것인데, ‘는 의미를 나타내고, ‘은 소리를 담당한다. 또한 은 여러 사람들(스무 명)이 함께한다는 뜻을 기본으로 하면서 크다()’는 의미로도 확장되어 과도 통해 쓰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서 은 넘칠 정도로 많다, 풍부하다, 홍수, 크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홍천이란 지명에서는 과 결합하면서 물이 넘치는 지역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글쓴이의 개인적인 견해인지는 모르겠으나 홍천이라는 지명보다는 녹효라는 땅이름이 이 지역의 본질적 특성을 더 자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땅이름에 얽힌 역사적, 문화적 사연들을 중심으로 할 때 홍천을 우리말로 풀이한다면 푸리 내혹은 물만골정도로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홍천이라는 고장의 특성을 잘 반영할 수 있는 풀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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