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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재미있는 우리말

고개 어원

by 竹溪(죽계) 2026.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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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고개에 대한 뜻을 찾아보면, “()나 언덕 따위를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비탈진 곳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 설명으로만 보면 고개라는 말은 이쪽 지역에서 너머에 있는 지역으로 넘어서 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런 풀이가 과연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말에서 고개라고 하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마주하는 공간으로 생선의 등처럼 생긴 낮은 등마루라는 어감이 아주 강한데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에서는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드러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비탈진 곳은 골짜기 전체를 포함하는데, 이런 표현이 과연 합당한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고개라는 말이 15세기 무렵부터 문헌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한자로 된 외래어가 아니고 우리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이 말은 순우리말, 한자어, 우리가 만든 한자어 중 하나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는데, 어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에서 고개의 어원을 찾으려는 시도에는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고개라는 말은 모가지와 같이 잘록하게 되어 있는 까닭에 목을 의미하는 목앗이 변해서 된 것이라는 주장, 둘째, 고개는 가 합쳐진 형태인데, 이것은 곧(), () 등과 어원이 같다고 보아 을 뜻하는 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견해, 셋째, 사람의 목 뒤쪽이나 앞쪽을 나타내는 고개와 같은 말인데, 어근인 (, )’가 붙었다고 보는 견해 등이 그것이다. 이 주장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가지가 왜 고개로 되었는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없는 데다가 이 왜 고개로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또한 ()’이 왜 로 되었으며, 속을 의미하는 가 붙은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전혀 없다. 이런 점들로 볼 때 우리말에서 어원을 찾으려는 시도는 확실한 근거와 이유 등을 제시하지 않는 한 정설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자어에서 어원을 찾는 것은 고개와 비슷한 뜻을 가지는 한자 표현을 찾아야 하는데, 발음하는 소리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중심으로 할 때 谷崖(곡애)’ 정도가 가장 근접한 어휘로 생각된다. 이 말은 산과 산 사이의 움푹 들어간 곳에 절벽처럼 잘려 나간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라는 뜻인데, 다른 공간에 비해 낮거나 비어 있어서 사람을 비롯한 여러 생명체의 통행이 가능한 곳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우리말의 고개라는 말이 가지는 뜻과도 일정한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을 우리말로 발음할 때는 받침이 과 연철이 되면서 고개로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빙성이 높다. 그러나 한자어에서 이 표현은 골짜기에 있는 산 절벽(山壁)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하므로 고개보다 훨씬 넓은 의미와 용도를 지니고 있어서 고개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기가 어려운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우리말에는 중국 한자어에는 없지만 우리에게만 있는 한자어 글자와 표현들이 여럿 있다. 예를 들면 ()’을 우리말 한자어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글자인 ’, 흙 위에 물이 있는 논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논 답)’ 같은 글자와 더불어 대단하다대단大段으로 표기하는 이두(吏讀) 등에서는 한층 다양한 형태의 표현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말에서 한자로 되어 있다고 해서 모두 중국에서 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한층 더 분명하게 짚어낼 수 있다.

고개를 순우리말이라고 가정하면 그 어원도 순우리말에서 찾아야 하는데, 근거가 되는 자료 같은 것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데다가 추정해 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현전하는 문헌 자료에서는 고개라는 뜻으로 기록된 한자어 표현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高介이고 다른 하나는 古介이다. ‘高介15세기인 세종 시대부터 나타나고 古介는 가장 빠른 것이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인데, 17세기 이후에는 여러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런 점으로 볼 때 高介가 먼저 쓰이고 있었던 상황에서 조선 중, 후기에 이르면 古介로도 표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두 가지 모두 중국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표현이라는 점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우리식 한자어 표현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高介는 글자의 뜻으로 풀이하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고개의 의미와 거의 일치한다. ‘(높을 고)’는 위와 아래 사이의 거리라는 의미를 기본으로 하는데, 높이, 높은 곳 등의 뜻을 가진다. ‘(낄 개)’는 원래 좁다, 끼다 등을 기본적인 뜻으로 하는 (좁을 협)’과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 나중에 확장되어 사이, 양쪽의 가운데, 중간 등의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高介는 높은 것과 높은 것의 가운데, 혹은 사이라는 의미가 되어 그 뜻이 고개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古介는 뜻으로만 봐서는 어떤 추정도 불가능하므로 이것은 소리만을 빌려서 표기하는 이두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汝矣島(너븨섬)’와 같은 땅이름 등에서처럼 이두식 표기는 지금도 우리말 속에 살아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추정은 논리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고개라는 우리말은 한자어의 뜻을 살리면서도 우리말 방식의 표현을 만들어서 쓴 선인들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기발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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