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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내리는 익선동 거리

by 竹溪(죽계)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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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내리는 익선동 거리

조선 제24대 군주인 헌종이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떠나자 강화도에 유배 가서 살고 있던 이변(李昪)을 모셔와 덕원군으로 삼고 보위를 이으니 그가 바로 철종이다. 철종은 영조의 증손이면서 자신의 아버지인 이광을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으로 추봉하고 종로구 누동(樓洞) 지역에 사당을 만들었다. 누동은 다락우물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매우 깊은 우물이 있어서 이다. 이 우물은 위는 좁지만 아래는 넓어서 마치 다락 같다고 하여 지명으로 되었고, 다락골, 혹은 다락우물골 등으로 불렸다. 이 지역에 만들어진 전계대원군의 사당은 규모가 매우 큰데다 양옆으로 날개처럼 생긴 회랑(翼廊)이 늘어서 있었다. 그래서 동네 이름이 익랑골, 궁골, 궁동 등으로 불렸는데, 익동으로 되었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서울인 한성부를 5(동남서북중)52방으로 나누어 관리했는데, 이때 중부에 소속되었던 8방의 하나가 바로 정선방(貞善坊)이었는데, 이것이 관할하던 지역이 바로 익동이었다.

이렇게 내려오던 지명과 방의 명칭이 이상하게 합쳐져서 행정 지명으로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20세기 초였다. 모든 것을 일본식으로 바꾸려 했던 그들은 익동의 ()과 정선방의 ()을 합쳐서 익선동이라고 했었는데, 1945년 이후에도 그것을 고치지 않고 그냥 써서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 지역을 익선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전형적인 고 주택지역으로 근래까지 매우 낙후한 곳이었는데, 2018년 한옥보전지구로 지정되면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하다가 이듬해부터 레트로, 뉴트로 등의 열풍과 맞물리면서 시간을 거슬러 가는 거리로 부상하면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송해 거리를 경계로 하여 동쪽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되었고, 서쪽은 어르신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되었다. 참으로 묘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어제(830)는 대학 동창 세 사람과 가을비 내리는 익선동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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