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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觀看天下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는다(漱石枕流)

by 竹溪(죽계)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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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다(漱石枕流)

3세기 무렵 중국에서는 魏吳蜀으로 나누어졌던 삼국시대가 끝나고 잠시 천하를 통일한 것이 였다. 그러나 오래되지 않아 司馬炎에 의해 위가 멸망하면서 새로운 왕조가 등장했으니 바로 이었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면서 다시 쪼개져 남북조시대가 열린다. 이런 혼란의 시대를 魏晉南北朝時代라고 하는데, 너무나 자주 바뀌는 왕조와 오랜 전쟁으로 사람들이 지치기 시작하면서 老壯과 같은 道家思想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산속에 은거하는 竹林七賢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나라 시대의 인물 중에 孫楚라는 사람이 있었다. 글재주는 뛰어났지만 너무나 의기양양하여 세상을 우습게 여기는 성향이 있었다. 그가 젊을 때 세상을 떠나 산속에 은거하려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인 王濟에게 세상을 피해서 숨어 사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그것에 대해 상의했다. 세상을 떠나 은거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에, ‘돌을 베개로 삼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한다라는 뜻을 가진 침석수류(枕石漱流)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렇게 말을 해야 할 것을 순간적으로 실수하여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漱石枕流)’고 말했다.

이 말은 들은 왕제가 말하기를,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 것이나 돌로 양치질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이에 손초가 말하기를,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것은 許由의 고사처럼 세상의 더러운 소리를 들은 귀를 씻겠다는 것일세(逸士傳에 의하면, ‘요임금이 왕위를 허유에게 물려 주겠다고 말을 하자 친구인 巢父너는 자신을 스스로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어 그런 말을 들었다라고 하면서 책망하였다. 허유가 맑은 물로 귀를 씻고 눈을 닦은 후에 말하기를, “저번에 탐욕스러운 말을 들었으니 내가 친구를 저버렸구나.” 그 후 평생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는데, 손초가 이것을 원용하여 말한 것이다), 또한 돌로 양치질을 한다는 것은 수많은 말을 하여 더러워진 그 이빨을 갈아버리겠다는 것이라네라고 하면서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둘러댔다(孫子荊年少時欲隱, 語王武子 當枕石漱流 誤曰漱石枕流. 王曰流可枕 石可漱乎. 孫曰所以枕流, 欲洗其耳, 所以漱石, 欲礪其齒. 逸士傳曰 許由為堯所讓 其友巢父責之. 由乃過清泠水洗耳拭目 曰 向聞貪言 負吾之友).

 

여기에서 나온 사자성어가 바로 수석침류(漱石枕流)인데, 당연히 침석수류(枕石漱流)의 잘못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손초의 억지 주장에서 만들어진 漱石枕流가 후대로 오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지기를 싫어하여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되었으니 대단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사자성어에는 견강부회(牽强附會), 아전인수(我田引水), 추주어륙(推舟於陸), 지록위마(指鹿爲馬)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 시대에도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漱石枕流 같은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이상의 내용이 일반적으로는 이루어진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손초의 이 변명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생각해 봐야 할 것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급작스럽게 둘러대노라고 한 말이 대단히 문학적인데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돌로 양치질을 한다는 수석(漱石)은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손초의 설명처럼 이빨을 갈아서 연마해야 할 정도로 세상에서 이상한 말을 많이 했다는 것이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유적임과 동시에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가서 닿을 수 있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피해 은거하여 사는 사람의 생활을 이보다 더 비유적으로 나타내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데다가 너무나 정확한 표현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후대 사람들은 은거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사자성어로 枕石漱流보다 손초가 실수로 만들어낸 漱石枕流를 더 많이 활용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대단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거나 지기 싫어하여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라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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