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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같은문화다른문화

아사쿠사마쯔리를 찾아서

by 竹溪(죽계) 2006.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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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자마쓰리(三社祭り)            

 

 

아사쿠사는 일본 서민문화의 총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데, 여기에서 일년에 한번씩 마쯔리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아사쿠사 마쯔리는 산자마쯔리라고 하는데 아래와 같은 일정에 따라 행사가 진행된다.

매년 5월 중순에 행하여지는 산자마쓰리는 에도 3대 축제의 하나로 꼽히며 이때는 아사쿠사 전체가 열기로 들끓다고 하더니 그말을 진실로 실감할 수 있었다.

 

5월 18일은 신에게 고하는 그들만의 행사여서 우리가 참석해도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이틀째인 19일도 찾아가긴 했으나 비가 오락가락하는 탓이었는지 아무런 행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셋째날인 20일 본격적인 마쯔리행사인 오미코시 행렬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神과 人間 이 하나가 되고 너와 내가 한 통속이 되어 그야말로 경계가 무너지고 없어져버려 일체라는 딴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멋진 행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쯔리가 있는 한 일본의 혼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부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드는 것도 어찌 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우리나라도 마을축제든, 나라의 축제든 정부가 주도적으로 많은 경비를 투자하여 진행한다면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하는 소망이 일었다.

                          

平成18年三社祭日程 

 

5月18日(木曜日)

午後 7時00分 本社神輿神霊入れの儀

 

5月19日(金曜日)

午後 1時00分 大行列 出発 東廻り(雨天中止)

編成: お囃子屋台・金棒・鳶頭木遣り・総代・各町役員・びんざさら舞 芸妓連の手古舞・組おどり・白鷺の舞・屋台

順路: 柳通り~馬道通り~雷門通り~雷門~仲見世~浅草神社

午後 2時20分 無形文化財びんざさら舞 浅草神社拝殿 奉納

午後 3時00分 無形文化財びんざさら舞 神楽殿奉納(雨天中止)

 

5月20日(土曜日)

午前10時00分 例大祭式典

午後12時30分 氏子各町神輿連合渡御(観音本堂裏広場に勢揃い)

午後 2時00分 浅草町三ヶ町本社神輿渡御

午後 3時00分 奉納舞踊 神楽殿 浅草観光振袖学院

 

5月21日(日曜日)

午前 6時00分 本社神輿宮出し

午前 8時30分 本社神輿各町渡御

午後 3時00分 奉納舞踊 神楽殿 東京浅草組合

午後 8時00分 本社神輿宮入り

 

아사쿠사지 정문 맞은편으로 길을 건너면 관광공사가 있다. 아사쿠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설명들을 수 있는 곳이고 자료도 찾아볼 수 있다. 오미코시의 자세한 모형도도 얻을 수 있는 행운도 있었다.

 

관광공사 정문 위에 있는 시계는 매 시마다 인형들이 나와서 멋진 연출을 한다. 오늘은 시간이 맞지않아 보지 못했다. 지난 번에는 볼 기회가 있었는데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작은 센스가 주는 기쁨인 셈이다. 정문앞에 인력거  세대가 주차해 있었다. 밉지않을 정도의 호객행위를 하는 인력거꾼은 아사쿠사의 또다른 명물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시승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특히나 인력거 꾼들은 자기 일에 대한 나름대로의 긍지가 있어 보였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아사쿠사 정문에 있는 커다란 등이다. 雷門이라고 써 있다. 아마도 아사쿠사의 신이 벼락의 신이 모양이다.

평상시에는 기다랗게 내려져 있는데 오늘은 마쯔리가 있는 날이어서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여 위로 올려져 있다. 관계자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雷門을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나카미세거리다. 일본의 느낌을 가장 강렬하게 받을 수 있는 작은 선물가게와 먹거리가 관광객을 즐겁게 한다.

오늘은 정말 발다딜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사쿠사 신사에 제례가 있음을 알리는 등이 보인다. 안내책자를 들고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 외국인의 표정이 재미있다.

 

중문을 들어서려는데 여행 안내원인듯한 여성을 보았다. 사람이 무진장 많은날이니 일행을 놓치면 정말 큰일이다. 대부분의 단체 관광객은 일본어를 하지 못하니 더욱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축제에 왔다가 어려움을 당한다면 그야말로 낭패가 될 것이다.

 

아사쿠사지 본전 앞의 향로이다. 신도들이 피워놓은 향의 연기로  雷門 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며 안으로 끌어당기는 강렬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존재다. 처음에는 머리가 아팠는데 지금은 향내음이 싫지않다. 인간의 후각은 이래서 믿을 수 없다고 하는거다.

 

마쯔리를 시작하려면 아직도 한 시간 가량이나 남았지만 벌써 아사쿠사지 본전 앞의 계단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아래 쪽 계단에 모여 앉았고 서성대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나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 덕택에 사진찍기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계단위에서 아래를 보면서 한 컷!

 

일본의 버선은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네 발가락만을 갈라놓아서 염소발처럼 생겼다. 그 위에 짚신을 신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있는 짚신과는 모양이 많이 달랐다. 바닥은 그런데로 촘촘하게 짜여졌는데 발등은 엉성하게 새끼줄을 엮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아사쿠사 마쯔리는 산자마쯔리라고도 한다. 산자마쯔리의 상징 문양이 보여서 찍었다.

 

오미코시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오미코시가 오기 전에 먼저 악사가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귀여운 여자아기가 북을 치고 있었고 피리를 부는 악사도 함께 탄 구루마가 들어왔다. 지붕에는 아사쿠사지에 속한 마을 이름이 붙어 있었다.

 

오미코시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알 수없는 열기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사이를 비집고 들어섰다.

 

 첫 번째 오미코시가 도착했다. 화려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신을 모신 가마다.

오미꼬시는 한자로 神輿라고 쓰는데, 여기에는 아주 재미있는 의미가 있다. 神은 가미이고, 輿는 코시이니 가미코시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 미코시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는 한자어로 身이기 때문에 몸이라는 뜻이 된다. 즉 神輿의 발음인 미코시는 몸을 옮기는 것, 상여가 된다. 우리말의 상여가 일본에 건너가서 이러한 신여가 되어 축제의 도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오미코시가 본전 앞에 당도하자 사람들이 기쁘게 맞이하고 있다. 이 날을 위하여 각 마을마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드리며 기다려 왔는지를 느낄 수 있을정도로 사람들의 표정이 간절하다.

 

산자마쯔리라는 깃발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줄지어 들어서는 오미코시의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일본의 삼대 마쯔리 중의 하나라는 간다마쯔리에서는 커다란 오미코시 한개밖에 보지 못했고 사람들도 아사쿠사마쯔리에 비할바 아니었다. 잘못된 정보가 아니었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아사쿠사의 산자 마쯔리는 장대하고 규모가 엄청났다.

 

사람들과 오미코시가 한데 어울려 그 경계를 잃어가고 있는 광경은 정말 보기에 좋았다.

 

각 마을마다 오미코시를 만들어 아사쿠사지 본 전 앞으로 인도한 후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것이다.

 

본 전 앞에 다다르자 두 손을 번쩍 들어 오미코시를 하늘을 향하게 한다. 함성도 함께 하기 때문에 굉장히 다이나믹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본전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머물려는 마을사람들의 순진한 욕심덕택으로 정체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복을 기원하는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가장 간절하고도 순박한 본능인 것을 어찔 할 것인가?

 

그러나 혼자만 오래 복을 받을 수는 없는 법. 아쉽지만 본전에서 발길을 돌려 왼쪽으로 나아가게 된다. 뒤이어  들어오는 오미코시를 생각해서...

 

신을 부르는 종이로 만든 깃대를 앞세우고 오미코시가 들어오고 있다.

 

오미코시의 행렬과 구경하는 사람들이 뒤범벅되었지만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사쿠사 전체를 관장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神과 人間이 하나가 되고,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며 나라와 국경을 넘어서 그 경계가 없어져버리는 축제가 마쯔리다. 아사쿠사지는 점점 용암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깃발 뒤에는 마을을 대표하는 유지들이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을 한 채 따라오고 있었다.

 

오미코시의 행렬은 끝도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비슷해보이지만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오미코시는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원시적인 끈끈함을 남기고 있는 듯 보였다.

 

오미코시의 행렬은 아주 느리게 이어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을을 수호해주고 마을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오미코시를 정성을 다해 운반하고 있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오미코시를 메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다양하다. 심각하기도하고, 즐겁기도하다. 각자 상황이야 다르겠지만 그들이 메고 온 것은 정작 삶의 고단하고 어려운 짐이 아니었을까? 이제 본전앞에 오미코시를 힘껏 들어올림으로써 자신들의 삶의 무게는 덜어지는 카다르시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리라.

 

자~ 힘내자. 어기엉차! 가마를 들어올리자! 神이시여! 우리와 우리마을을 축복하소서!

 

神을 즐겁게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삶의 고단함에서 해방되는 은혜를 입게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미코시는 밀려오고 그렇게 밀려가고 있었다. 아사쿠사지를 마구 흔들어 놓는 사람들의 함성이 바람같다.

 

오미코시는 남쪽에서 나카미세를 통과하여 중문으로 들어서는 것과 동쪽에서 아사쿠사신사 방향을 통하여 들어서는 것, 그 두 곳에서  아사쿠사 본전 앞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내가 앉은 바로 그곳이 두 지점의 교차점이었기 때문에 양쪽을 잘 볼 수 있었다.

 

힘들고 고단한 길을 잘도 왔다. 이제 본전앞에 왔으니 박수를 치자! 함성과 박수로 기쁨을 나타내는 마을 사람들.

 

힘껏 오미코시를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자!  간절한 기원을 담은 팔들의 행진. 카메라에 이런 장관을 담지 않을 수 없지...관광객 아저씨의 촬영하는 모습도 오미코시와 하나가 되어 버린다.

 

일본의 마쯔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방인은 모르지...그래도 호기심많은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까마득한 옛날 자신들의 조상들이 섬겼던 神들에 대한 향수가 솟아오르지 않았을른지 모르겠다.

 

너무도 멋진 오미코시를 핸드폰에라도 담아가야겠다^^* 고 생각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이 모습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미코시를 메고 오는 내내 발을 구르고 노래 비슷한 것을 흥얼거린다. 뒤따르는 마을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기운을 북돋아주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말이 아닌 몸으로 서로를 인식하는 가장 원시적인 그것이 사람과 사람을 묶어주고 우리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오미코시위에 자신의 마을이름이 선명하다.

 

각 마을의 오미코시 앞에는 악단이 등장한다. 신이 가시는 길에 노래가 없어서야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미코시의 행렬이 이러다간 끝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을 엮어주는 마쯔리가 오늘 뿐 아니라 일상속에서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일상을 넘어섰으되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지않는 일본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질서가 돋보였다. 이날만은 일본인은 정말 일본인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구경하는 우리는 아침 10시부터였지만 자신의 마을에서 오미코시를 메고 왔던 이들은 너무도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지쳐보이지않았다. 어쩌면 神이 주시는 힘인지도 모를일이다.

 

오미코시를 치우치지않게 메려면 가마를 멘 사람 모두가 마음이 맞아야한다. 자신을 버리고 우리로 묶여질때 가마는 평안을 찾을 것이고 아사쿠사 본전 앞에 무사히 당도하게 될 것이다.

 

본전앞에 당도한 오미코시를 정성껏 들어올리며 자신과 가족과 마을사람들을 그리고 일본을 지켜달라는 발원을 올리는 것이리라. 카메라에 담는 것은 비단 그들의 모습만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작은 오미코시는 고도모미코시라고 한다. 마을 아이들을 위하여 만든 것이고 아이들이 가마를 운반하게 된다. 어른들은 곁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한다. 어릴 때부터 공동체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훌륭한 발상으로 생각된다.

 

나카미세와 신사를 통해 두개의 가마가 동시에 도착했다. 손을 들어 멈추기를 요구하자 질서는 금새 잡혀갔다. 신을 모신 사람들 사이에는 다툼이 있을 수 없다.

 

우리도 왔어요. 비켜주세요~~~고도모미코시를 메고 온 아이들의 표정이 사랑스럽다.

 

오미코시는 사방으로 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멜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앞에서 인도하는 그룹과 옆에서 따라가는 그룹, 그리고 뒤에서 힘을 받쳐주는 그룹이 호령에 맞추어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우리나라 상여과 거의 같다.

 

같은 방향을 향해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다 보면 마을사람들은 공동체의 강한 결속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미코시를 모시는 일에 남녀와 노소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구별도 구분도 없어져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마을사람들이 내뿜는 열기가 신의 마음을 분명 움직이고야 말 것이다.

 

나카미세거리 상인들의 오미코시다. 아사쿠사를 올 때마다 그 거리를 지나다보니 이제는 크게 낯설지 않다.

 

인간이 신을 부르고, 신이 인간에게 화답하며 어울림으로 공존하는 세계가 이 곳에 있었다.

 

마을의 유지들이 진지하고도 힘차게 오미코시 앞을 인도하고 있다. 깃발과 마을 어른들과 그리고 오미코시를 인도하는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는 구성원들인 것이다.

 

현대의 문명을 잠시 접어두고 핍진하게 살았던 그 시대로 돌아가 보는 마쯔리... 이것은 세계 어느 민족에게나 있었던 그런 원시적인 행사일 것이다.

 

사람도 신을 인정하고 섬기며 살았고, 신도 사람을 인정하고 복과 화를 관장하며 살았던 시절.... 그때로 돌아가서 마을사람들은 오미코시에 올 한 해도 신을 노엽게 하지 않으며 잘 살 수 있기를 염원하는 기원을 담아 힘차게 들어 올린다.

 

각 마을마다 자신들의 정성을 담아 모신 오미코시를 어깨에 둘러매고 발자욱을 뗄때마다 신과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지겠지.

 

오늘보니 일본남자들은 삭발이 유난히도 많은 것 같다. 난 삭발한 남자는 모두 야쿠자인줄 알았는데 말이다. 점잖아보이는 아저씨도 오늘은 파격적인 차림으로 오랜만에 자유와 호탕함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듯 보인다.

 

오미코시를 따르는 사람은 비단 마을사람들뿐이 아니다. 관광객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화되어 오미코시를 따른다. 그들도 마음가득 기원을 담아낼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라도 자신들의 태고적 신앙을 떠올렸을까?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오미코시의 행렬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상여가 나가는 모습을 연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논두렁 밭두렁 사이를 만장을 펄럭이며 꽃상여가 지나가면 상여꾼이 불러대는 상여소리가 구성지고 슬퍼서 공연히 눈물이 핑돌던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이들은 상여소리처럼 구성진 노래는 부르지않지만 발을 굴러 땅을 치면서 독특한 기합소리를 내면서 행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오미코시를 메고 행진을 할 때 이들이 함께 맞추어서 부르는 구령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소리는 왔소, 왔소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말의 왔소 혹은 왔다와 같은 뜻으로 한반도에서 신이 건너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상여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를 위한 것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오미코시를 모시는 마을 사람들이야 당연히 현세의 축복을 빌기 위한 것이리라.

 

오늘, 그리고 한달을, 일년을 잘 살아내기를 소원하는 소박한 바람을 안고서 저렇듯 수많은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고 정해진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질서를 잡기위해 왔을 경찰관 아저씨의 모습에서도 긴장감은 찾을 수 없다. 아사쿠사 밖의 세상을 놓아버린 듯한 무심한 얼굴이 보기에 좋았다.

 

어떤 마을은 본전앞에 도착하면 오미코시를 번쩍 들어올리기도 하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두 손을 들어 신의 도착을 알린다. 같은 일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남녀가 거의 밀착상태로 가마를 운반하고 있다. 유교가 들어오지 못한 일본에서야 남녀의 구별이 지엄하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으로 민망해서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메이지 유신 이전만 하더라고 소수의 귀족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서민들은 훈도시에 통으로 된 웃웃만을 입었다고 한다. 그 때를 재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참으로 보기가 민망하였던 것은 바라보는 나 일 뿐.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조상들이 생활했던 모습을 후손인 자신도 그대로 하는 것 뿐일 것이다.

 

젊은이들의 모습과 표정에서 일본인의 혼을 읽었다면 지나친 것이었을까? 거리낌없이 자신들의 조상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을 보는 것이 왠지 살짝 두렵기까지 하는 것은 무엇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일본 혼과 제국주의를 내가 혼동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아사쿠사 본전 앞을 통과했던 오미코시가 모이는 곳이다. 본전 바로 뒤에 있는 공터이다. 장소가 좁아서 앉았을 수도 없다. 나무와 인간 모두가 직립인 상태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조금 휴식을 취해야한다. 그래야 해가 질때까지 마을 곳곳을 돌면서 행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오미코시의 행렬로 어지러운 밖과는 대조적으로 본전안은 참배하는 사람들이 경건하게 발원하고 있었다. 세상의 바깥쪽과 안쪽처럼 같은 장소에서도 전혀 다른 상황과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기이한 생각이 든다.

 

늦은 점심을 먹고 부랴부랴 아사쿠사 본전 앞에 당도하니 벌써 오미코시가 나가고 있었다. 입장할때와 마찬가지로 악대가 먼저 출발한다.

 

악사들의 반주에 맞추어 오미코시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아사쿠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을 어른도 깃발을 높이 들고 앞장선다. 이제 신사를 떠나 다시 마을로 돌아가야한다.

 

아사쿠사를 떠나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몇날 몇시간인지 기억조차 아물거린다. 우리마을 오미코시가 가장 돋보이기를 소원하며 온갖 치성을 다했던 시간들을 지금 이순간은 생각나지도 않는다. 정성이 모자라지는 않았을까 저어될 뿐이다.

 

그래도 神은 알아주실 것이다. 우리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되는 마음으로 자신을 모시려 했는지를....

 

神에게 드리는 정성이 소홀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마음처럼 神도 자신을 섬기는 인간을 향해 좀 더 많은 축복을 내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종일 뙤악볕과 먼지 그리고 구슬땀과 살았지만 고단하지도 피곤하지도 않다. 오늘은 일본의 축제이며 우리마을 사람 모두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이라도 놓치면 안되니까...카메라와 핸드폰에 기억을 붙잡아 둔다.

 

너무 꼭꼭 껴서 다니니까 정말 힘드네....한 여자가 힘들어서인지 거의 울 것 같은 상황이다. 그래도 나머지 사람들은 힘이 넘쳐난다.

 

중문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인간 세상이다.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중문앞에서 본전쪽을 향하여 한 컷! 오미코시는 이제부터 마악 퇴장의 행진을 시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중문에서 본전 앞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오미코시 행렬이 시작되었던 오전이나 퇴장하는 오후나 사람들에게 나오는 열기와 비릿한 생선내음같은 싱싱함은 그대로이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꼬마들도 고도모미코시를 열심히 운반하고 있다. 아직 어깨가 약하니 멜 수는 없고 들고 간다. 저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오미코시를 운반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조금 큰 아이들은 어깨에 오미코시를 메고 간다. 키가 들쑥날쑥이고 힘도 그러하니 오미코시가 뒤뚱뒤뚱 오리걸음이다. 아이들이 메고 가는 오미코시의 神도 아기神일까?

 

작은아이, 큰 아이가 섞여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도...이 오미코시는 참으로 어려운 행진을 하고 있는 중이다. 꼬마여자아이의 힘겨워하는 표정이 앙징맞다.

 

신사앞을 지나 오미코시가 떠나고 있는 중이다. 가고 오는 것이야 시간에 따라 순서에 따라 그리된다 할지라도 발원하는 마음과 축복하는 마음은 흐르지말고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아사쿠사 본전앞을 통과해야한다. 아사쿠사의 큰 神에게 오미코시의 神이 하직인사를 해야할 것이 아닌가?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봐두어야지...사람들도 관광객들도 오미코시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사람과 사람을 엮고, 神과 사람을 엮고, 과거와 현재를 엮어내었던 마쯔리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들의 민망한 시선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던 일본 남자들의 모습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세상에서 말하듯 친절하고 상냥한 예스맨으로서의 일본인은 결코 아니었다.

 

자신들의 현재와 자신들을 있게 한 과거를 송두리째 보듬어안고 세상을 향해 일본인임을 드러내려하는 고집스러움을 읽어내며 난 또 한차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자~ 좀 더 힘을 내자. 아무래도 여자분들은 조금 힘이 부친 듯. 마을 어른이신듯한 분이 힘을 보탠다. 

 

멀리 신사 앞마당에 있는 무대에서 악사들이 연주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꼬마들이 운반하는 오미코시도 연주의 리듬을 타고 휘청거린다.

 

기모노를 입은 여자아이도 오미코시를 어깨에 멘다. 큰 아이는 어깨를, 작은 아이는 팔을 들어 神을 모신 가마를 정성을 다해 모시고 있다.

 

神을 모시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이야 알 수 없는 일이지....행복한 모습으로 웃고 있는 소박한 사람들은 보는 사람 모두를 따라 웃게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마을이 최고야!!!! 이 마을 사람들은 유난히도 훈도시에 웃옷만 입은 아저씨가 많았다. 얼굴에 웃음도 가득했으며 발도 얼마나 힘차게 구르는지 먼지가 뽀얗게 일어날 지경이었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어린 꼬마들이 운반하는 고도모미코시이다. 아이들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관광객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꼬마들.

 

오미코시를 운반하는 사람들의 발굴림으로 인해 신사는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누구하나 얼굴을 붉히지않는다.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를 주었을까? 분명 평상시와는 사람들이 많이 달랐다. 불평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神이 떠나가시는 마당에 악기의 연주가 없을 수 없다. 북소리와 피리소리가 오미코시의 행진하는 소리와 어울려 세상속에서 세상밖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정말 아름답고 웅장한 오미코시다. 산사람과 죽은 사람을 갈라놓았던 우리나라의 상여와 神과 사람을 하나되게 하는 오미코시가 왜 같은 것으로만 여겨지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어쩌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죽은 조상은 神이 되는 것이라 여겼던 우리나라에서도 상여는 사람과 神을 하나로 엮어주는 매개체였었다.

 

사실 최근까지만 해도 상여놀이라는 것이 있어서 사람이 죽으면 행상을 하기 전날 밤에 상여를 메고 동네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놀이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공동체는 모두 무너지고 이러한 축제는 사라지고 말았다. 언제쯤 이런 축제를 되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미코시가 떠나가면서 아사쿠사지의 마쯔리는 막을 내렸다. 사람들도 오미코시와 함께 아사쿠사지를 떠나간다. 오미코시는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서 神의 자리에 좌정할 것이고,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삶을 똑같은 방식으로 이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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